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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 패권경쟁 ④]국제 재판 무시는 강대국의 전통?… 영ㆍ미ㆍ러도 무시 전력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중국은 12일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 대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에 대해 즉각 “수용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강대국이 이처럼 국제재판ㆍ중재를 무시하는 것은 중국이 처음이 아니며, ‘흔해빠진’ 일이라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지적했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영국과 아프리카 동쪽 섬나라 모리셔스 간 다툼에 대한 PCA의 판결이다. 당시 두 나라는 인도양 차고스 제도의 어업권을 놓고 다퉜다.

차고스는 1960년대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모리셔스의 일부였으나, 영국은 이들 섬을 모리셔스에서 떼어내 영국령 인도양 지역(BIOT)으로 편입시켰다. 그리고는 미군 공군기지를 건설할 수 있도록 차고스 제도에서 가장 큰 디에고 가르시아 섬의 50년 임대권을 미국 측에 넘겼다. 차고스 주민들은 모리셔스 등으로 쫓겨나야 했다. 영국은 이어 생태계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차고스 일대를 어로행위가 금지되는 해양보호지역(MPA)으로 지정했는데,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차고스 주민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차고스 주민들은 PCA에 제소했고, 결국 지난해 3월 영국이 일방적으로 MPA를 지정한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결정이 나왔다.

푸틴의 정적으로 유코스를 빼앗긴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사진=게티이미지]

그러나 영국은 주민들이 PCA에 제소할 때부터 PCA에 관할권이 없다며 판결을 따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까지도 영국이 판결을 따를 지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2014년에는 러시아가 자국 최대 민간 석유회사였던 유코스의 파산과 관련한 PCA의 판결을 무시한 바 있다. 유코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인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회장이 운영하던 회사다. 러시아 정부는 2003년 호도르코프스키 회장을 사기와 탈세 혐의로 체포해 징역 8년을 선고했으며, 이후 유코스는 거액의 세금 폭탄을 맞고 2006년 파산한 뒤 국유화했다.

이에 전 재산을 날린 유코스의 주주들은 러시아 정부가 손해를 배상하라며 PCA에 제소했고, 2014년 500억 달러(약 57조 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얻어냈다. 그러나 러시아는 한푼도 돌려주지 않았으며, PCA와 별개로 네덜란드 헤이그 지방법원에서 재판을 진행해 올해 4월 배상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헤이그 지방법원은 PCA가 유코스 전 주주와 러시아 정부 간의 분쟁을 중재할 사법적 권한이 없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유코스 주주들은 항소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 측에 PCA의 남중국해 판결을 따르라고 압박하고 있는 미국 역시 국제 질서를 무시하는 일을 일삼아왔다. 이번 남중국해 판결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UN해양법협약(UNCLOS)을 중국은 비준했지만, 미국은 비준하지 않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UNCLOS가 미국의 주권과 국익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번번이 비준이 좌절됐다.

국제재판소의 판결을 묵살한 사례도 있다. 그래엄 앨리슨 미 하버드대 벨퍼 과학ㆍ국제관계센터 교수는 1980년대 중미의 니카라과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미국을 제소한 일을 거론했다. ICJ는 PCJ와 같은 건물에 위치한 유엔산하기구로 국가와 국가 간 분쟁만을 다룬다.

당시 미국 레이건 정부는 니카라과에서 친미 성향의 소모사 정권이 붕괴되고 산디니스타 정권이 들어서자, 경제적 제재 조치를 취하는 한편 항만ㆍ정유시설 등에 직접 공격도 감행하고 친미 성향의 콘트라 반군을 지원했다. 이에 니카라과는 ICJ에 제소했고 1986년 “미국은 다른 나라에 무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다른 나라의 국내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그리고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법상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은 ICJ의 사법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며 ICJ의 결정을 무시했고, 니카라과는 이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가져갔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니카라과는 다시 유엔총회에 호소했고 94 대 3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결의안이 통과됐지만, 유엔총회 결의안은 구속력이 없어 아무 실질적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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