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피플앤스토리] 배우, 장관…그리고 우리가 몰랐던 유인촌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고백컨데 유인촌(65)을 만나기로 한 건, 그와 관련된 기사에 붙은 여전한 악성 댓글들 때문이었다. 8년도 넘은 일이건만, 포털사이트에서 그의 이름을 치면 가장 먼저 뜨는 연관검색어가 ‘유인촌 찍지마’다.

이상한 일이다.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2004~2007), 문화체육관광부 장관(2008~2011), 예술의전당 이사장(2012) 등 지난 10여년간 문화예술 관련 요직을 거친 그지만, 드라마 ‘전원일기’(1980~2002)에서 양촌리 김 회장님(최불암 역) 댁 둘째 아들 ‘용식’이로 보낸 세월은 그보다 훨씬 긴 22년이다.

“네 바퀴보다 두 바퀴를 더 좋아한다”는 유인촌. 검은색 스쿠터를 타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났다. 매일 아침 40~50㎞씩 자전거를 탄다는 그는 큰 공연을 앞두고 체력관리를 위해 자전거 타기를 잠시 쉬는 중이라고 했다.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장관 옷을 벗은지도 5년이나 지났다. 기관에 몸 담던 시절보다 배우 본업으로 돌아온 요즘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유인촌, 그는 자신에 대한 대중의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지난달 29일 오전 대학로 한 카페. 검은색 스쿠터 한 대가 부르릉 소리를 내며 도착했다. 유인촌이다. “네 바퀴보다 두 바퀴를 더 좋아한다”는 그는 매일 아침 6시부터 서너시간 동안 자전거를 탄다고 했다. 팔당이나 양수리까지 40~50㎞를 자전거로 달리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라고. 환갑을 훌쩍 넘긴 배우는 헬멧을 벗으며 멋스럽게 반짝이는 은발을 긁적였다. “아우 뭘 이런 걸 찍어”.

배우 유인촌이 ‘햄릿’(7월 12일~8월 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으로 다시 무대에 선다. 이번이 여섯번째다. 한국 연극계 거목 고(故) 이해랑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역대 ‘이해랑 연극상’ 수상자인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윤석화, 손봉숙, 한명구와 함께 오른다. 유인촌 역시 ‘제10회 이해랑 연극상’을 받았다.

▶자기관리 철저한 배우, 그에게도 아픈 추억이=여름이 한창인데 검은색 목 폴라를 감고 있었다. 본 공연을 열흘 남짓 앞두고 목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잘 때도 풀지 않는다”고.

유인촌은 자기관리가 철저한 배우로 정평이 나 있다. 작품에 들어갈 때면 집과는 담(?)을 쌓고 몰입할 정도.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아픈 추억이 있었다.

“외국 연출가와 함께 국립극장에서 ‘베니스의 상인’을 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 내가 방송 드라마를 3편쯤 하고 있었고, 한참 바쁠 때여서 스케줄 상으로는 도저히 안되는 거였는데 어렵게 연습해서 막을 올렸어요. 5일 공연하는 거였는데, 공연 이틀째 되는 날 모든 (방송) 스케줄이 끝난 거예요. 그 전까진 술자리 회식 한번도 참가 못했는데, 다 끝났으니까. 맥주나 한잔 하자 해서 시작한 게 밤을 샌 거예요.”

동틀 무렵 귀가해 눈을 뜨니 오전 11시. 너무 일찍 회포를 푼 탓이었을까. 공연이 몇 시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치명적이었다. “마이크를 달고 공연한다는 건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남은 3일 공연을 완전히 망쳤어요. 소리가 거의 안 나왔으니까. 외국 연출가에게 너무 창피했어요. 그래도 한국에서 나름대로 톱스타라고 합류한건데. 도망갈 수도 없고 뭘 어떻게 할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때 그 공연에서 나를 본 관객들은 평생 잊지 않을거에요. 저 배우는 자격이 없는 배우라고. 그 이후로는 연습 들어가면 술, 담배 안 하고 생활을 절제하는 게 습관이 됐어요. 일생 일대의 큰 교훈을 얻은거죠.”

그가 얻은 교훈은 “무대 배우는 아무나 못 한다”는 것. “자신을 가장 좋은 상태로 유지해서 관객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큰 공연을 앞둔 배우는 아직도 “목 쉬는 게 걱정”이었다. 

연극 ‘햄릿’으로 무대에 서는 배우 유인촌이 대학로 거리를 걸으며 포즈를 취했다.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또 다시 햄릿, 또 다른 햄릿=사실 그에게 햄릿은 “지금도 하면 안 되는 역할인데 무리를 해서 하는 역할”이다. 여섯번이나 햄릿 옷을 입었음에도 무대는 여전히 긴장과 떨림의 연속이다. “연극계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이 공연에서 잘 하려고 하는 욕심이 배우를 경직시키는 함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모범답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여전하다. 대본 뒷면엔 정자로 필사한 흔적이 빽빽하다.

그가 애초에 원했던 건 “선배들은 단역을 하고 주연은 젊은 사람들 위주로 꾸리는 것”이었다.

“원래 나이 먹으면 주연하면 안 돼요. 관록 있고, 연기 잘 하는 배우들도 나이 먹으면 꽃다운 주연 옆에서 조연하는거죠. 그래야 자신의 역량을 빛낼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나는 지금 무리하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사고가 나는데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공연 기간이 한달 가까이 되는 것도 그에게는 부담이라고 했다. 매번 ‘베스트’ 무대를 만들어야 하는 강박 때문에, “마지막 날, 마지막회 관객에게까지도 실망을 주면 안되기 때문”이다.

여섯번째 햄릿이지만, 그에게는 또 다시 새로운 햄릿이다. 일단 16년만이고, 그 사이 환갑을 훌쩍 넘겼고, 머리엔 하얗게 서리가 내려 앉았다. 그래도 염색 같은 건 하지 않을 생각이다.

“우리의 춘향전처럼, 영국에서도 햄릿은 누구나 다 알잖아요. 그런데 왜 다시 햄릿을 보느냐. 그건 어떤 배우가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보고 싶기 때문이에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말이죠.”

그가 해석하는 햄릿은 크게 두 가지다. 지식인의 나약함을 가진, 행동하지 못하고 고뇌하다 죽고 마는 햄릿과, 더 철저한 복수를 위해 복수를 미루는, 행동하는 햄릿이다. 이번에는 그동안 했던 햄릿의 다층적인 면들을 한 데 녹일 생각이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시(詩)적인 미니멀리즘’. 한 편의 시처럼, 단순하게 압축된 연기로 햄릿을 그릴 생각이다.

“예전에는 말이나 제스처를 좀 더 멋있게 하는 게 중요했어요. 화려한 햄릿을 한 거죠.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나이를 이만큼 먹어서 하는 햄릿이니까. 그런 것들을 다 배제했어요. 내적으로 응축된 힘을 모으는 것이랄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경험이나 그 바닥에 깔려 있는 것들이 표현됐으면 좋겠어요.”

▶“또 공직? 같은 일 두 번 하지 않아”=배우 유인촌의 '삶의 경험'에서 빼 놓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공직생활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초대 장관을 맡은 그는 이창동, 김명곤에 이은 대중문화계 출신 장관으로 기록돼 있다.

‘MB’와의 인연은 1990년 KBS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현대건설 시절의 이 전 대통령 역할을 연기하며 시작됐다. 이후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이던 2004년, 서울문화재단이 만들어지며 첫 이사장 자리에도 앉게 됐다.

이 전 대통령 후보시절에는 한나라당에서 ‘이명박 대통령선거후보 문화예술정책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을, 대통령 당선 뒤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대통령실 문화특별보좌관을 맡았다.

그에게는 ‘찍지마’ 하나로 ‘찍힌’ 공직자가 되기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치적들이 있다. 그를 경험했던 서울문화재단 직원들은 “포장되지 않았지만 의미있는 사업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맨 땅에 헤딩하며 브랜드화한 사업이 많다”는 것. ‘책 읽는 서울’ 캠페인이나, ‘예술연구서적발간 지원 사업’ 등이 그것이다. 특히 재단 직원들은 그를 “털털하고 격이 없고 조건없이 평범하게 직원들을 대하는 대표”로 기억했다.

“서울 골목골목 정말 많이 다녔어요. 향후 10~20년 문화정책을 어떻게 세울지. 그런 경험을 토대로 문화부 일도 했던 거고요.”

장관 시절에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상주 예술단체를 지원하는 정책도 펼쳤다. ‘나눠먹기’식 지원이 아닌, 좋은 작품을 제대로 할 만한 극장에 지원하고자 했다.

또 지역 공연 활성화를 위해 전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현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ㆍ한문연)를 예술의전당과 분리해 독립법인화했다. 각 지역 지자체와 연계해 좋은 작품을 지방으로 보내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었다. 특히 장기적으로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들이 발목을 잡혔다.

“좋은 공연 한 편을 만들기 위해서는 워크숍, 낭독공연, 본 공연, 그리고 학술적인 연구와 출판까지 필요하죠. 외국 유명 오케스트라를 불러오려고 해도 3~5년 전에는 계약을 해야 하고요. 그런데 국회에서는 그런걸 아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현장을 너무 몰랐죠.”

예술의전당 이사장직을 끝으로 공직 생활을 정리했지만, 국회의원, 대학총장, 고문직 제안을 몇차례 더 받았다. 물론 모두 거절했다.

“같은 일 두번하지 않아요. 이제 이런 일은 내가 더 안해도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내 자리로 돌아온 거예요. 더 이상은 내 일 아닌 다른 일에 시간 뺏기고 싶지 않고요. 하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해서 했어요. 두번 할 거 아니니까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거 다 했죠.”(웃음)

배우 유인촌.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나를 보고 싶거든 지방으로 오세요”=배우 본업으로 돌아온 유인촌은 여전히 지역 공연 활성화에 ‘큰 뜻’을 품고 있다. 그러면서 적은 비용으로 쉽게 만들어서 흥행을 할 수 있는 작품만 지방에 내려가는 현 추세를 안타까워했다.

“연극 한 편 내려가려면 몇천만원 드니까. 자꾸 밀리는거죠. 좋은 작품 가야한다고 누군가는 고집있게 지켜내야 하는데.”

그는 배우 본업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한 2년간은 지방 공연을 돌았다고 했다. 부안, 울진, 삼척 등을 돌며 ‘홀스또메르’, ‘파우스트’ 같은 어려운 작품들을 공연했다. 관객 반응은 ‘반전’이었다.

“지방 공무원들이 그러대요. 여긴 트로트 같은 거 해야한다고. 게다가 전직 장관이 오니까 이 친구들이 걱정을 하는거예요. 할머니, 할아버지 관객들 오셔서 떠들까봐 말이죠. 제가 괜찮다고 했어요. 떠들어도 좋다고. 그런데 왠걸. 너무 열심히들 보시는 겁니다. 서울에서도 안 받던 기립박수를 받았어요.”

그는 9월 아시아문화전당에서 광주 지역 배우들과 함께 ‘홀스또메르’를 공연을 앞두고 있다. 11월 예술의전당 ‘페리클레스’ 재공연이 끝나면 내년부터는 서울보다 지방 공연에 더 집중할 예정이다. 바꿔 말하면 “서울 관객들을 괴롭히겠다”는 것. 좋은 공연을 지방에 올려 서울 관객들도 돈 내고 시간 내서 오게 만들 작정이다.

애초에 그를 만나기로 했던 이유. 에둘러 물었다. 화제의 공연에서 주연을 맡고 난 후 반응이 어떻더냐고.

“인터넷은 아예 보지도 않아요. 봐야 도움도 안 되고. ‘연극 복귀 했으니까 곧 TV에도 나올텐데 쉽지 않을거다’라는 평도 있대요? 사람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죠.”

그는 “연극 무대에서 스스로를 완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무대에 선다는 건 수련을 하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씻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고.

“성직자들 중에서도 토굴에서 기도만 하시는 분들도 있고 포교를 하시는 분도 있죠. 무대는 그런거에요. 토굴 속에서 기도하며 수련하는 것. 다른 생각을 안하는 거죠. 모르겠어요. 지금보다 더 늙어 분장이 필요없을 때 그때 TV 드라마에서 할아버지 역할 같은 걸 할 수 있을지. 하지만 기운이 있는 한은 무대에서 나를 완성하고 싶어요.”

그는 “건방진” 포부를 이어갔다.

“예전에는 제가 안방으로 찾아 갔잖아요. 그런데 이제 나를 보고 싶으면 찾아와달라는 거예요. 아무 집이나 내가 들어가지 않겠다는 거죠. 저기 어느 시골 연극무대에 서는 배우 유인촌을 보러 오세요.”

☞유인촌은
1951년생.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출신이다. 만 23세인 1974년 MBC 공채 6기 탤런트 시험에 합격하면서부터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MBC ‘전원일기’를 통해 국민 탤런트 대열에 합류했다. 1990년대 후반 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으로 활동했고, 2000년대에는 환경부 환경홍보사절 및 산림청 산림홍보대사로도 활동했다. 1997년부터 모교인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부에서 조교수 및 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다. 

☞유인촌이 출연한 작품은…
*연극=페리클레스, 홀스또메르, 파우스트, 풍금소리, 느릅나무 그늘 밑의 욕망, 햄릿, 한네의 승천, 오셀로 외
*뮤지컬=빠담빠담빠담,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방송=명불허전, 역사스페셜, 열린음악회, 캠퍼스 음악회, 신화창조의 비밀,토요객석 외
*드라마=장희빈, 고백, 연어가 돌아올 때, 화려한 휴가, 이 여자가 사는 법, 도깨비가 간다, 일출봉, 야망의 세월, 역사는 흐른다, 상처, 최후의 증인, 첫사랑, 조선왕조 500년 풍란, 성난 눈동자, 전원일기 외

☞수상 내역
제10회 이해랑 연극상/ 제34회 동아연극상 연기상/ 제10회 기독교문화대상/ 제7회 김수근문화상 공연예술상/ 제32회 백상예술대상 연기상/ 1987ㆍ1990년 KBS 방송연기대상/ 제8회 영화평론가상 남자연기상/ 제14회 한국방송대상 남자연기상/ 1986년 MBC 방송연기상 최우수상/ 1975년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신인상/ 1975년 MBC 신인연기상 외

amigo@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