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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탕 1.5㎏=송아지 한 마리 농장운영 위해 노예무역 탄생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영국에서는 “수퍼마켓 봉지만 봐도 벌이 수준을 알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식품에도 ‘급’이 나눠지고 있다. 특히, 오늘날 유기농은 우리의 건강과 식문화에 중요한 ‘필수품’이면서도 일종의 ‘브랜드’ 대접을 받고있다.

우리가 지금 즐겨찾는 설탕과 ‘향신료’의 대가 후추도 과거엔 재력을 과시하는 사치품 중의 하나였다. 


설탕은 중세 시대까지만 해도 구하기 힘든 사치품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사탕수수를 구한 유럽 국가들은 달달한 맛을 내는 설탕을 귀한 의약품, 향신료라고 여겼다. 당시 식탁 위에 올려진 설탕은 자신의 부를 상징하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설탕 1.5㎏에 송아지 한 마리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설탕의 인기가 높아지자 유럽은 아메리카 대륙에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을 만들고 노동력을 충원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사들였다. 달콤한 설탕이 악명높은 노예무역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외에도 사탕무 등 설탕을 만들 수 있는 식자재에 대한 개발이 이어지면서 신대륙에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이 대량 속출했다.

후추는 근세 이전까지 ‘검은 황금’이라 불렸다. 오늘날 ‘검은 황금’이라는 별명은 석유에게 돌아갔지만, 로마시대부터 신대륙 개척까지 후추는 유럽민들이 추구한 핵심 조미료 중 하나였다.

제국을 건설한 로마의 귀족과 부자들은 항상 음식에 후추를 뿌렸다. 아무나 먹지 못하는 향신료였기 때문이다. 당시 후추는 인도에서 아랍을 거쳐 들어온 조미료였기 때문에 가격이 금값과 맞먹었다. 주변국이 전쟁에서 패하면 배상금으로 막대한 양의 후추를 요구하기도 했다. 실제로 북방의 게르만족이 수시로 로마를 침공한 서기 408년, 로마를 포위한 서고트 족의 왕 알라리크 1세는 호노리우스 로마 황제에게 황금 5000파운드와 후추 5000파운드를 요구했다.

르네상스 이전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였던 베니스가 유럽의 경제적 중심지가 된 배경에도 후추가 있다. 유럽국가들은 후추를 주 생산지인 인도에서 육로를 통해 아랍까지 운반한 뒤 지중해 바닷길을 통해 수입했다. 이때 운송로로 활약한 것이 베니스다. 베니스는 향후 아랍국가와 후추무역을 독점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었다. 15세기 말 유럽의 패권이 포르트갈과 스페인에 넘어간 배경에도 후추라는 설이 있을 정도다. 당시 포루투갈과 스페인은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데 성공해 유럽과 인도를 직접 잇는 해상운송로를 개척했다.

새롭게 권력을 장악한 포르투갈의 이사벨 공주는 아들 찰스의 결혼식 때 재력을 과시하려고 후추 290파운드를 식장에 쌓아 놓기도 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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