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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근한 사물들로 벌인 거짓된 ‘진실게임’
초등ㆍ중학생들이 둘 이상 모이면 즐겨하는 놀이 가운데 진실게임이란 게 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느니가 게임의 주 내용이다. 그런 유치한 놀이를 고등학생만 되도 하지 않는다. 왜 일까. 게임의 룰을 비켜갈 만큼 약아지기 때문이다.

은희경의 여섯번째 소설집 ‘중국식 룰렛’의 표제작에서 주인공들은 술집에 모여 라벨이 가려진 위스키를 마시며 진실게임을 벌인다. 이들은 현재 대체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상태다. 술집 주인 K는 죽을 병에 걸려있고, 의사인 나는 아내로부터 이혼을 당하고 의료사고까지 낸 최악의 상태다. 더군다나 아내가 지금 술집에 나란히 앉은 남자와 엮여 있다는 걸 어슴프레 짐작하게 된다. 

진실게임은 “당신이 평생 가장 후회하는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지금까지 해야 했던 일 중에 가장 힘든 게 있었다면”“남에게 밝힐 수 없는 사랑을 한 적은?” 등으로 이어지지만 대답은 모두 진실반, 거짓반으로 일관한다. 은희경은 이 진실게임을 왜 꺼내든 걸까.

옷, 수첩, 신발, 가방, 사진, 책, 음악 등 일상생활 속의 사물들을 소재로 삼은 이 소설집에서 작가는 집요하게 이 질문을 이어간다. 소설 속 인물들은 상대방에게 대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현실에 맞춰 자신의 입장과 한계를 정하는 고립되고 단조로운 삶을 살아간다. 소설 ‘장미의 왕자’의 나는 스스로를 포함해 그 어떤 것에도 실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그가 유일하게 집착하는 게 남자의 수트다. 그러나 상대방이 수트를 벗고 반팔 셔츠를 입은 모습을 본 순간, 환상은 무너진다. 작가는 허울좋은 껍데기로 둘러싸인 가짜인생, ‘대용품’이 어떻게 일상에 자리잡고 있는지 보여준다. 행과 불행을 가볍게 넘나들며 운명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작가의 솜씨가 노련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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