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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만 글로벌 거대기업 삼성전자의 실험, 대한민국 일하는 문화를 바꾼다
[헤럴드경제=윤재섭ㆍ최정호 기자]전 세계 156개 사업장에서 10만명이 함께 일하고 있는 글로벌 거대 기업 삼성전자가 파격적인 조직문화 실험에 나섰다. 대기업이 벤처기업의 특성인 ‘빠른 의사결정과 유연한 조직문화’를 위해 호칭과 인사시스템 등에서 변화를 준 사례는 10여년 전부터 있었지만, 전통 제조업부터 첨단 소프트웨어 개발까지 모두를 아우르고 있는 초 거대 기업의 벤처 실험은 시작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28일 호칭 및 연공서열 파괴를 골자로 하는 ‘직무 역할’ 중심 인사 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글로벌 경쟁력 제고와 창의적, 수평적 조직문화 조성을 위해 기존 연공주의 중심 인사제도를 업무와 전문성을 중심으로 하는 벤처기업 형태로 바꾸겠다는 의지다.

외형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평등한 호칭의 사용이다. 입사 20년차 부장과 1년차 신입사원 모두 ‘~님’으로 호칭을 통일한다. 각자 맞고 있는 업무에 대한 전문성을 존중하고, 수평적 업무 교류와 협조가 가능토록 하는 내용이다. 이미 팀장과 팀원의 2원화 체계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만큼, 호칭의 변화는 어렵지않게 자리잡을 수 있다는 평가다. 



실제 11년전 ‘메니저’라는 단일 호칭을 도입한 SK텔레콤이나, ‘프로’로 서로를 존칭하고 있는 삼성그룹 내 제일기획의 선례가 있다. SK텔레콤은 통신회사에서 플랫폼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 3~4인으로 스타트업 캠프를 구성해 자율권을 부여한 뒤 성과에 대해 과감한 보상을 실시해 경쟁력을 제고한 경우다. 이 회사는 또 임직원들에게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가’, ‘ 나는 아직도 검토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노(No)를 노(No)라고 이야기하는가’ 등을 스스로 질문토록 해 업무혁신을 유도하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매니저라는 단일호칭은 직위와 연공서열에 상관없이 ‘자신의 업무에 대해 전문지식과 책임을 가진 담당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구성원 스스로 개인 역량 및 경력 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조직문화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며 “업무적으로도 중간검토 단계 축소로 인해 주니어 매니저들의 주인의식이 향상되고, 부서간 업무협업도 용이해지는 등 창의적, 도전적인 조직문화를 조성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역시 호칭 파괴를 통해 이 같은 조직 문화의 변신을 기대하고 있다.



직원 개개인의 급여와 승진을 결정하는 인사평가 시스템도 바꾼다. 연공서열 중심의 부장, 과장, 사원 등 수직적 7단계 직급 개념을 4단계 ‘경력개발 단계(Career Level)’로 바꿔, 철저하게 실력, 성과 중심의 인사 평가 체계를 갖추겠다는 의지다. 오로지 실력과 성과 만으로 입사 7년만에 30대 임원이 나올 수도 있고, 또 부장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 대리도 삼성전자에서는 일상적인 모습이 될 수 있는 구조다.

삼성전자의 ‘벤처 실험’은 실제 업무 과정에서도 계속된다. 모든 회의는 ‘참석자 최소화, 1시간 Best, 전원 발언, 결론 도출, 결론 준수’라는 원칙 아래 신중하게 진행되고, 보고 역시 과거 직급 순 체계적 보고 대신, 팀장부터 협조 실무자, 임원, 그리고 사장까지 동시에 이뤄진다. 좋은 아이디어는 바로 제품 개발로 이어지고, 또 시장 흐름에 따른 마케팅 전략 변화도 지체없이 가능토록 하는 의사결정의 ‘다이어트’다.

이 밖에 여름철 반바지 출근, 눈치성 잔업과 야근의 철폐, 또 연중 충분한 휴가 문화 정착 등도 내년부터 삼성전자 10만 직원들이 체감하게 될 변화의 또 다른 모습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단순한 IT 기업이 아니라, 반도체와 소자 같은 전통 굴뚝 공장부터, 스마트폰과 다양한 B2B 솔루션 소프트웨어까지 만드는 ICT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다”며 “이 같은 거대 기업의 조직 문화 실험 결과에 따라, 향후 국내의 일하는 문화 자체도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이번 삼성전자의 인사 체계 개편안에 주목했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가 컨설팅 전문회사인 맥킨지와 함께 지난해 6월부터 9개월간 국내 100개 기업, 임직원 4만명 대상으로 조사해 종합진단한 바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에 견줘 국내 기업 10곳 중 약 8곳은 조직건강도가 낮았으며 특히 중견기업의 경우 10곳 중 9곳이 ‘약체’로 평가됐다. 상습적인 야근과 비효율적인 회의, 상명하복식 지시 등 후진적 기업문화가 허약한 조직건강도의 주범으로 꼽혔다.

이와 관련해 대한상의는 “대증적 처방에 나설 게 아니라 비과학적인 업무프로세스와 평가보상시스템 등을 개선해 기업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의는 특히 ”최고경영자(CEO)의 인식과 의지가 기업문화 개선의 핵심 열쇠”라고 꼬집었다.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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