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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가 뭣이 중허냐고”…20대 햄릿·오필리어에 원로배우 둘 ‘완벽접신’
연극 ‘햄릿’ 연습실 가보니


“왜 이렇게들 많이 왔어요.”(손숙)

“부담스러워.”(유인촌)

2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극장 연습실. 연극 ‘햄릿(7월 12일~8월 7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주인공들이 초대받은 불청객(?)의 등장에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주인공 ‘햄릿’ 역의 유인촌은 “연습이니까 틀려도 이해해 주세요”라며 굳이(!) 말했다. 후줄근한 티셔츠에 아무렇게나 구겨진 펑퍼짐한 바지, 검은색 운동화까지, 배우 본업으로 돌아간 전직 장관은 ‘연습복’이 잘 어울렸다.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윤석화, 손봉숙, 여기에 최근 권성덕 대신 합류한 한명구. 9명의 배우들은 검은색 로브(Robe)를 걸쳤다.

박정자의 첫 대사. “춥다. 뼈가 시리게 추워. 넌더리가 난다.”

대사와 함께 제의를 치르듯, 9명의 배우가 극 중 역할로 빨려 들어간다. ‘햄릿’ 5막 중 1막 시연이 시작됐다.

“가재는 게 편이지만 게는 가재가 아니지.” (햄릿)

“날 아버지라고 생각해라.” (햄릿의 숙부 클로디어스 역 정동환)

“고작 한 달,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 동생과 혼인을 하다니!” (햄릿)

숙부와 결혼한 어머니를 탓하는 햄릿의 방황이 이어진다. 동료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손숙과 박정자. 바닥에 주저앉아 두꺼운 안경을 코 끝으로 내려쓴채 대본을 보고 있는 정동환은 마치 도인과 같은 모습이다. 분홍색 매트 위에 방석 2개를 겹쳐 얹고, 그 위에 대본을 올려 놓았다. 연습실 구석 자리가 그의 ‘고정석’이다.

오필리어 역 윤석화의 발랄한 등장. 좌중에서 잠시 웃음이 터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발랄하고 귀엽다. 폴로니어스 역 박정자. 낮은 목소리와 제스처가 남자 역할에 어색함이 없다.

“절대 너의 생각을 발설하지마…발설하지마….” 알 수 없는 미소가 이어진다. 아차, 대사를 잊었다. 이내 “아! 절대 너의 여물지 않은 생각을 발설하지마.”

햄릿이 아버지의 혼령과 맞닥뜨렸다. “그대는 왜 수의를 찢고 다시 뛰쳐 나왔는가.”

정동환은 숙부와 햄릿 아버지의 혼령 역을 함께 맡았다. “복수해다오. 이 억울한 죽음을.”

광기에 사로 잡혀가는 햄릿. “가엾은 넋이여. 잊지 않겠다. 당신의 명령을.” 1막이 저문다.

본 공연까지 20일을 남겨놓고 연극 ‘햄릿’의 배우들은 한껏 고무돼 있었다. 이해랑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역대 ‘이해랑 연극상’ 수상자들이 함께 만드는 이 작품은 기라성 같은 배우들의 조합만으로도 일찍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연출을 맡은 손진책은 “이 멤버로 안 되면 한국 연극 문제 있지 않겠느냐”며 자신하고 있다. 배우들이 말을 잘 듣느냐는 질문에는 “얘기하기 전에 본인들이 다 알아서 한다”고 말했다. 연습 시작은 오후 2시지만 배우들은 10~11시부터 ‘경쟁적으로’ 일찍 나온다고. 60~70대 배우들은 나이도 성별도 초월했다. 은발의 햄릿은 염색을 하지 않을 예정이다.

권성덕은 대본 리딩을 하다가 식도암을 발견했다. 현재 수술을 마치고 입원 중이다. 본의 아니게 하차하게 된 권성덕 대신 한명구가 합류했다. 그 역시 2011년 ‘제21회 이해랑 연극상’을 수상했다.

“20대로 돌아간 느낌이다”라는 56세 막내 배우 한명구의 말에 최근 유행어가 된 영화 속 대사가 겹쳐진다.

“나이가 뭣이 중허냐고.”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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