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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조 심청’이 만든…또다른 ‘두 심청
‘한국창작춤 대모’ 안무가 김매자 씨 ‘심청’작품 전통춤·판소리 결합 재해석…국립무용단과 협업무대

“심봉사 올라가면 조명 켜 주세요. 조명 먼저 들어오니까 이상해.” “끝까지…들어가서면서 끝까지 춰야지. 밖에서 다 보여.” 31일 국립극장에서 진행된 국립무용단 ‘심청’의 드레스리허설 현장. 안무가 김매자(73)는 조명, 음향은 물론, 막 뒤로 사라지는 무용수들의 움직임 하나 하나를 디테일하게 지적하며 막바지 공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한국 창작춤의 대모(大母)로 불리는 무용가 겸 안무가 김매자가 ‘심청’으로 국립무용단과 협업했다. 국립무용단은 김매자의 작품을 새롭게 재정비해 2~4일 국립극장 레퍼토리 공연으로 처음 선보인다. ‘심청’은 김 씨가 우리 춤에 판소리를 접목시켜 2001년 LG아트센터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김 씨는 칠십을 넘긴 나이에도 그동안 계속 심청 역으로 무대에 서 왔지만, 이번에는 국립무용단 단원인 엄은진, 장윤나 씨가 심청 역을 맡게 됐다. 판소리는 국립창극단의 김미진 씨가, 고수는 진도씻김굿 전수자 김태영(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 씨가 맡았다. 



‘심청’으로 희망의 메시지 전하다

“이번에는 심청에 두 명의 무용수를 더블 캐스팅했어요. 작품의 하이라이트가 심청이 인당수에 빠져 죽는 3장 ‘범피중류(汎彼中流)’ 인데, 체격도 표현 방법도 많이 다른 두 사람이 심청이라는 하나의 캐릭터를 연기해요. 두 무용수의 감정이 서로 섞이면서 심청의 복잡한 마음을 표현하는 거죠.”

‘심청’은 춤과 소리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듯 하면서도 엇박자를 내며 묘한 조화를 이룬다. 춤은 소리를 설명하는 부수적인 표현 수단이라기보다 춤 그 자체로 독립적이다.

작품 전반적으로도 극적인 요소보다 상징적인 요소를 강조했다. 눈을 뜬 심봉사가 심청을 끌어안고 울고 불고 하는 장면 같은 것도 과감히 생략했다. ‘열린 결말’이다. 그는 “하나의 서정적인 시(詩)”라고 표현했다. 


“판소리는 비움과 맺음이 일정하지 않아요. 제 박자에 맞는 음악이 아니고 자기 멋대로 맺혀졌다 풀어졌다 하는 거죠. 무용수들 역시 그러한 소리의 틈바구니를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거예요. 비어 있지만 완전히 비어있지 않은 공간. 춤이 없을 땐 소리가, 소리가 없을 땐 춤이 공간을 채우며 서로를 넘나들죠.”

춤, 소리 뿐만 아니라 무대도 볼거리다. 무대에서부터 객석까지 하얀 선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과, 인당수에 띄운 배를 상징하는 원형 구조물 등 상징적인 오브제들이 작품의 시적인 여백과 절제미를 돋보이게 만든다.

“심청은 효(孝)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효는 희망의 모티브예요. 2000년대부터 제 춤의 화두가 ‘밝음’이었어요. 심청의 화두도 밝음으로 가는 길이에요. 그 길을 무대에 만들었어요. 뒷산 오솔길처럼 굽이굽이 밝게 이어진 길은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길이기도 하고, 우리 민족이 갖는 선이기도 해요.”



우리 춤은 우리의 ‘몸짓’에서 나온다

심청 역할을 젊은 무용수들에게 넘기면서 아쉬움은 없을까.

“아우, 제 나이가 칠십이 넘었는걸요. 초연 때도 제가 60대였어요. 제가 했을 땐 저 멀리 서 있는 것만으로, 제 나이만으로도 심청을 표현할 수 있었지만, 젊은 무용수들은 우리보다 테크닉이 강하니까 그걸 발휘할 수 있도록 춤과 구도를 바꿨죠.”

‘김매자 창작춤’의 특징은 우리의 전통 춤사위를 토대로 인간의 몸짓을 무한대의 영역까지 확장시키는 데 있다. 이를 테면 농촌에서 일할 때 아이를 들쳐 업은 아낙네의 몸짓 같은 것에서 춤의 원형을 발견한다.

“단지 고정관념으로서의 우리 춤사위가 아니라 인간이 갖는 보통의 몸짓, 예를 들면 인간이 슬플 때 하는 몸짓 같은 것에서 춤의 테크닉을 만들어내요. 엄마가 죽었을 때 심청의 감정이 그런 몸짓으로 표현되죠. 저는 무용수가 10명이면 10명 다 몸짓이 다른데 그걸 끄집어 내는 데 주력했어요. 제가 안무를 했다기보다 무용수들이 자기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게끔 말이죠.”

김매자 춤은 전통적이면서도 매우 현대적이다. 그의 춤이 우리의 전통 춤인지 아닌지 경계를 구분짓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이것이 전통 춤이냐”는 질문에 그는 “전통적으로 안 보이느냐”며 웃었다.

“전 몸짓을 만들어내고 싶어요. 평소 우리들의 감정에서 오는 몸짓을 강조하고 싶어요. 그것이 또 우리 춤이고요. 살풀이 같은 것만 우리 춤의 언어라고 생각하는데 아니죠. 우리가 우리 춤의 언어를 다양하게 만들어낼 수 있어요.”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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