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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프랑스, 그리고 한국
5월 이른 아침, 프랑스 파리 동역(Gare de l’Est)은 철도 파업으로 어수선했다. 다행히 메츠(Metz)행 떼제베(TGV)에 올랐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열차는 출발하지 않았다. 곧 프랑스어 안내 방송이 나왔다. 열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을 따라 열차를 갈아탔다. 소심한 투덜거림. ‘영어 안내방송조차 해주지 않다니!’ 동행했던 이의 우스개소리. “이 나라가 왜 선진국인지 모르겠다.”

저녁 무렵 파리 동역은 더욱 어지러웠다. ‘반(反)노동법’ 시위와 파업으로 인근 교통난이 극에 달했다. 교통신호는 무용지물이었다. 차도와 인도의 구분 같은 건 없었다. 되레 보행자 적색 신호에 길을 건너는 이가 운전자를 향해 항의의 눈빛을 보낸다. 

기자의 질문. “왜 이렇게 교통신호를 안 지키죠?”

현지인의 말. “프랑스 사람들이 원래 말을 잘 안 들어요.” 그는 “저녁 8시 이후엔 동역 근처에 오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소매치기는 물론, 마약을 팔기 위해 다가오는 이가 있을지 모른다면서.

그러고 보면, 내 나라는 얼마나 살기 좋은가. 물론 시위도 있고 파업도 있고 도심 교통난도 심하지만, ‘말 잘 듣는 게’ 미덕인지라 어지간해선 법과 질서, 도덕과 규율 같은 게 이 곳보다는 더 잘 지켜지지 않나. 어딜가나 잘 터지는 무료 와이파이의 미덕도 있고 말이다.

네 나라, 내 나라를 비교하며 얻은 일종의 안도감은 미술관에서 깨졌다. 체계적으로 잘 갖춰진 미술품 컬렉션. 관람객들은 미술 전시를 보기 위해 긴 줄을 서고, 낯선 중국 작가의 인터뷰 영상을 끝까지 경청한다. 전시장을 찾은 부모들은 미술 작품을 놓고 어린 자녀들과 토론을 한다.

“프랑스 문화예술의 정책적 지향점은 ‘미술의 대중화’이며, 이를 위해 정부가 국립 미술관 컬렉션으로 지방 순회 전시를 연다”는 퐁피두 메츠 관장의 말은 이 나라가 왜 선진국인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문화를 대하는 국가와 국민의 ‘태도’는 오랜 시간 축적된 이 나라의 자산이었다.

다시 내 나라, 한국의 미술관. 

미술품 1점의 진위 논란이 25년째다. 갤러리가 연루된 원로 화백의 위작 사건이 수개월째 경찰 수사 중에 있다. 가수와 화가의 겸업을 자처했던 유명 연예인의 대작(代作) 사건은 많은 미술인들을 좌절에 빠뜨렸다.

“볼 만한 전시가 없다”는 말이 미술계 내에서 더 많이 나오는 요즘이다. 국ㆍ공립 미술관은 ‘대중화’라는 명목으로 흥미 위주, 혹은 기업 홍보 위주의 전시를 열고 있다. 시장의 파이를 대형 경매회사들이 잠식해면서 신진 작가를 등용시켜야 할 상업 갤러리들은 더 이상 전시를 열지 않으려고 한다.

“문화란 민족의 내일을 밝혀주는 빛이며 양식이다.” 드골 정부 문화부 장관이자 소설가였던 앙드레 말로(1901-1976)의 말이다. 문화에서 미래의 빛과 양식을 찾을 수 있을까. 말 뿐 아닌 ‘문화융성’의 시대는 올까. 

김아미 라이프엔터섹션 차장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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