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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魚, 유해물질을 밝히다…‘富의 물길’을 헤엄치다
인간 DNA 84% 닮은 유전자 조작 ‘제브라피쉬’ 유해물질 1000종 파악 가능… 에릭 첸의 비타젠트 1000만弗 투자 유치…포브스 ‘亞 유망 기업인’


농약 김, 벤조피렌 라면 스프, 대장균 시리얼, 가습기살균제 사망 피해까지…. 인체에 유해한 성분을 섞어놓고도 믿을 만한 완제품으로 속여 판매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리 막을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당국의 합동감시와 사후조사만으로는 원천적인 예방이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같은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홍콩 젊은이가 있다. 바로 바이오테크 기업 ‘비타젠트(Vitargent)’ 창업주 에릭 첸(Eric Chenㆍ28)이다.

제브라피쉬로 독성물질 잡는다

첸이 2010년 홍콩을 기반으로 창업한 비타젠트는 물고기 제브라피쉬(Zebrafish)를 사용해 독성물질을 가려내는 기업이다. 비타젠트의 핵심기술은 유전자를 조작한 제브라피쉬에서 꺼낸 배아에 있다. 이 배아는 특정 유해 물질과 접촉하면 발광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유해성분이 함유된 제품을 사전에 걸러낸다. 첸은 “일반적인 실험이 최대 10종류를 검출하는 반면, 제브라피쉬는 한번 테스트로 최대 1000종류의 유해성분을 찾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비타젠트는 메다카(Medaka)라는 유전자 조작 제브라피쉬를 사용해 인체 호르몬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내분기계 교란 물질(EDCs)을 테스트한다. EDCs는 유방암, 전립샘암, 불임, 당뇨, 성조숙증을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브라피쉬 실험이 선택된 이유는 이 물고기의 DNA가 인간 DNA와 70% 일치하기 때문이다. 특히 “유전자를 조작한 제브라피쉬는 최대 84%까지 일치한다”고 첸은 말했다.

비타젠트는 비용절감 측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물고기 배아 가격이 저렴한데다 실험시간이 적게 걸리고 한번 검사로 1000개 유해물질을 검출할 수 있다. 첸은 “동물실험은 상대적으로 비싸고 갈수록 논란이 되고 있다”며 “제브라피쉬를 사용한 기술은 동물실험으로 간주되지 않아 특정 허가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든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타젠트는 현재 화장품, 식품(유제품 및 육류), 식용유, 음료수, 환경제품 등 5개 분야를 검사대상으로 고객사의 다양한 생산과정에 있는 샘플을 넘겨 받아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멜라민 분유파동이 창업 도화선

전직 국가대표 야구선수이기도 했던 첸이 식품안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8년 멜라민 분유파동 때문. 당시 30만명의 중국 영유아들이 멜라민 분유에 중독됐고 4명 이상이 사망했다. 또 멜라민이 포함된 제품들로 인해 신장결석이나 신부전증 환자가 5만3000명 발생했다.

첸은 “왜 중국에서 이같은 사건이 계속 일어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2009년 당시 대학 졸업반이었던 첸은 친구 2명과 함께 해결책을 고심하며 식품안전 테스트 연구에 몰두했다.

당시 그가 읽은 미국 환경보호당국 보고서에 따르면 인간이 만들어낸 화학물질은 8만7000개로, 매해 수천개가 새로 생겨난다. 그러나 당시 통용되던 화학분석을 통한 표준 독성 테스트는 제한된 숫자, 그것도 지정 물질에 대한 테스트이기 때문에 유해 물질이 포함됐다하더라도 무해한 제품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첸은 식품안전에 대한 돌파구를 중국 교수진의 연구방법에서 찾았다. 그는 중국국가중점실험기관(Chinese National State Key Lab)의 교수진이 2001년 유해물질 검출에 물고기 배아를 사용한 것을 확인하고 곧장 담당 교수에게 찾아갔다. 그러나 교수는 처음에 첸을 만나려들지조차 않았다.

첸은 “과학공모전을 위해 교수님 연구방법을 사용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바로 거절당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연구내용을 이용해 다양한 상을 수상하게 되면 교수님은 물론 소속 연구기관까지 명예로운 일이 될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교수를 설득해 결국 허락을 받아냈다. 실제로 첸과 그의 친구들은 물고기 배아 연구방법으로 홍콩은 물론 세계대회에서 여러차례 상을 받았다.

이후 첸은 과학대회 수상으로 만족할 것인지, 아니면 식품안전의 길을 계속 갈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함께 했던 친구 2명은 금융업으로 진로를 바꿨지만 첸은 비타젠트 창업으로 결심을 굳혔다.

그렇게 2010년 ‘더 안전한 제품ㆍ더 나은 세계(Safer ProductsㆍBetter World)’라는 모토로 비타젠트는 탄생했다. 그러나 초기 투자자를 찾지 못해 고비를 맞기도 했다.

첸은 “당시 내게 있던 것은 기술과 꿈뿐이었다”며 “수백명의 투자자를 만났지만 아무도 비타젠트를 믿어주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투자자들은 비타젠트를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병의 정체모를 기술로 여겼다”며 “게다가 바이오테크 기업에 투자해 수익이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주로 실리콘밸리와 같은 IT기업에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투자유치를 받지 못해 절망에 빠졌을 무렵 한줄기 희망이 비쳤다. 첸이 출전했던 한 공모전의 심사위원이 직접 투자자로 나선 것. 이후 비타젠트에 대한 인지도가 상승하면서 엔젤 투자자와 정부로부터 130만달러(15억4900만원) 자금을 조달했다.

엔젤 투자자(angel investor)란 기술력은 있지만 창업을 위한 자금이 부족한 초기 단계의 벤처기업에 투자해 첨단산업 육성에 밑거름 역할을 하는 투자자금을 제공하는 개인을 말한다.

이후 현재까지 비타젠트가 유치한 투자금은 1000만달러(120억원)에 이른다. 덕분에 직원도 20명으로 늘었다.

가정에서 실험할 수 있는 그날까지

이미 홍콩 소비재 대기업을 주고객으로 삼고 있는 비타젠트는 대만과 베이징, 유럽 등으로의 세계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

첸은 “각국 정부와 소비자들의 식품안전에 대한 걱정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앞으로 식품안전 테스트와 질적 관리 및 검증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식품안전 검증산업의 시장규모는 매해 1000억달러 이상 증가하며 연평균 10%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비타젠트의 기술은 소비자 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특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장 중인 식품검증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며 첸을 30세 이하 아시아 유망 기업인 30인 ‘30 언더 30’에 선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첸은 “3~5년 내에 가정에서도 식품을 검사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제품의 유해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며 “제브라피쉬 검증방법이 의무화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천예선·윤현종 기자/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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