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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1년만에 히로시마行 오바마의 두얼굴] ‘화해’ 손길은 있지만 ‘사과’는 없다
오바마, 사과 아닌 “특별한 책임감 느낀다”
쿠바·베트남·이란 적대국엔 잇단 러브콜
가장 강력한 핵강국 유지 위한 모순 행보
대립각 세우는 中·러·北 압박 등 계산 깔려
과감한 외교 불구 차기정권서 수정 가능성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7일 오후 일본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찾아 71년 전 원자폭탄 투하로 사망한 히로시마 주민들을 추모한다. 오바마는 히로시마 방문이 원폭 투하에 대한 사과는 아니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무기를 사용한 나라가 미국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핵 현대화를 위해 향후 30년간 1조 달러(약 1168조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사람도 오바마 대통령이다. 지난해 초에는 ‘핵 보복 3원체제’인 ▲폭격기 ▲대륙미사일 ▲잠수함 미사일의 기술을 한층 더 높이기로 했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이 계획에 10년 동안 3480억달러(약 406조원)가 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임기 마지막 해 ‘과거와의 화해’ 여행에 나선 오바마 대통령의 두 얼굴이다. ‘핵무기 없는 세상’을 외치지만 정작 자신은 미국의 미래를 핵무기에 의존하는 결정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를 놓고 최근 사설에서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은 아이러니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화해는 있지만 사과는 없다…오바마의 모순=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를 맞아 역사적으로 미국과 긴장관계를 유지해온 국가들에 잇달아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베트남을 경유해 일본을 찾은 이번 여행의 테마도 ‘화해의 여행’으로 읽힌다.

일본을 방문하기 전에는 베트남을 찾아 무기 금수를 전면 해제하고 베트남전 당시 살포된 고엽제 피해와 불발탄을 제거하기 위한 지원 의사를 밝혔다. 지난 3월에는 미국 대통령으로서 88년 만에 쿠바를 찾아 화해할 수 있는 전기도 마련했다. 지난 1월에는 대(對)이란 제재를 해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화해’만 있는 오바마의 최근 외교행보는 모순적이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 오바마 대통령은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 피해와 1953년 이란 쿠데타를 미 중앙정보국(CIA)이 주도한 사실을 희석시켰다. ‘화해’의 손길은 있었지만 ‘사과’는 없었던 셈이다.

‘핵 없는 세계’를 외치면서 가장 강한 핵 보유국의 입지를 유지하는 정책을 들고 나온 것도 그다. 이란 제재를 해지한 지 두 달 뒤 “이란 핵 프로그램의 평화적 이용을 목적으로 하는 역사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이란 정부의 일부 행동과 정치적 조치는 미국에 지속적으로 특별한 위협이 되고 있다”며 1995년 수립한 이란과의 국가비상사태 체제를 연장한 것도 그다.

오바마의 두 얼굴과 진짜 속내는?=오바마의 두 얼굴에는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행보만 보더라도 오바마 대통령이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행보 하나 하나에는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북한을 압박하고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하기 위한 계산이 있다. 선언정책(Declaratory Policy)과 실제 정책(Actual Policy)에서 간극이 발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과 이란의 핵 협의는 IS 대응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던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긴장하게 하고 이란과 북한의 핵미사일 협력을 차단하는 데 일정 효과를 거뒀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오바마의 베트남과 피폭지인 일본의 히로시마 방문은 중국의 해양진출을 견제하기 위한 동맹국의 공조를 강화하고 중국을 고립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 포커스는 미국 대통령으로서 88년 만에 쿠바를 방문한 오바마가 “러시아의 정치적 적립기금과 같은 쿠바를 방문했다”며 “쿠바와 중남미를 둘러싼 러시아와 미국의 지정학적 관계를 사실상 ‘리셋’ 시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과거와의 화해’가 실상은 국제사회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셈이다.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제스처라는 비판도 있다. 실제 베트남에 대한 금수 해제로 미국은 자국 항공사 보잉의 여객기 200대를 판매하게 됐고, 이후 첨단 군사장비도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미국 경제의 주요한 축 중 하나인 군수산업에 막대한 이득이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일본 히로시마 방문에는 또 다른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FT는 오바마가 올 한해 펼친 외교정책들이 차기 대통령에 의해 전면수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막말의 대가’인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버니 샌더스 민주당 후보는 각각 보호주의를 외치고 있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도 TPP 협의를 재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은 자신의 ‘핵없는 세상’ 비전이 미국에게 외교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이익을 부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군사분담금을 이유로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허용할 수 있다는 ‘핵무장론’을 들고 나온 트럼프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전략도 깔려 있는 셈이다.

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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