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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여보 미안해…딸아 아빠가 미안하다
언제부턴가 공중화장실 앞에서 보초를 서는 게 일이 됐다. 어제 모처럼 식구들과 공원에 운동을 나가서도 그랬다. 화장실이 급하다는 아내의 말에 땀을 뻘뻘 흘리며 하던 운동도 그만뒀다. 그리고 하는 일은 화장실 밖을 서성이는게 전부였다. 첫째 딸이 화장실에 갈 때는 으례 아내가 대동을 하고, 남편이라는 작자는 화장실 밖을 배회한다. 둘째 아들 녀석이 화장실에 갈 때도 화장실 보초근무는 남편의 몫이다. 성가시다고, 다 커서 뭐가 무섭냐고 짜증을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골목길도 남편의 경계 근무 장소가 되고, 지하 주차장도 남편의 이수지역이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남편은 5분 대기조가 돼야 한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이후엔 특별경계령까지 내려졌다. 하지만 가장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보초를 서는 것 이외엔 아무 것도 없다. 요즘 부쩍 무거운 무기력이 눈꺼풀을 덮고, 어깨를 짓누르는 것도 이 때문인 듯 싶다.

지난 4월 “우리는 살아남고 싶다”는 구호가 멕시코시티 전역을 물들였다. 6000명이 넘게 모인 여성 시위자들은 모두 한결 같이 “살아남고 싶다”고 절규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여성들을 겨냥한 묻지마식 살인에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는 비명이었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불행의 씨앗이 된 셈이다.

이런 통계는 한 두개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세계 여성의 35%가 물리적인 폭력이나 성적인 폭력을 경험했다. 멕시코에선 하루에 7명꼴로 여성들이 살해되고, 과테말라에서는 하루 평균 두 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는다. 미국에선 매년 1600명 이상의 여성이 단순히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남성에게 죽임을 당한다. 한국 여성들의 안전도 수준은 ‘페미사이드’(동기나 가해자와 상관없이 여자라는 이유로 살해하는 것)가 빈번하게 자행되는 중남미 수준이라는 보고서도 있다. 법 보다 위에 군림한다는 인도 원로회는 성폭력 범죄를 성폭력으로 되갚는 판결을 내린다. 가해자는 남성인데, 그 책임은 여성한테 뒤집어 씌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쯤되면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을 놓고 “여혐(女嫌)이다” “아니다”고 왈가왈부 할 게 아니다. 직접적인 원인이 정신병이든 그렇지 않든 피해자는 여성이었다.

여성에 가해지는 폭력 대부분의 원인으로 꼽히는 게 ‘약자에 대한 피해망상’이다. “먹고 살기 힘들어져서, 사회가 혼란스러워서 혹은 불안해져서”라는 설명서도 들어있다. 한 마디로 힘 들때 “감히 너 같은 게 나를 무시해”라는 폭력성이 여성, 노약자, 어린이, 장애우 등 사회적 약자를 먹잇감으로 노린다는 것이다.

친절하게(?) 설명서에 쓰여진 사회불안, 경제불안 등의 원인은 누가 만들었나? 우리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제대로 할 일을 하지 않고 사회불안만 조장한 정치인들도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반성문을 쓰고 쌍팔년도식 결기대회라도 가져야 한다. 힘없는 이들이 기를 펴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게 우리 기성세대가, 그리고 정치인과 정부가 해야할 일이 아니던가. 여보 미안해…딸아 아빠가 미안하다. 

한석희 인터내셔널섹션 에디터/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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