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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동성애 혐오 반대의 날 ①] “홍대 앞이나 종로 게이거리나 다 사람사는 곳이죠”
-본지 여성기자, 종로3가 ‘게이거리’ 자정 르포

-대부분 남성들…다가가 말걸자 경계의 눈초리

-인권단체 “성소수자 만남의 거리이자 해방구”




[헤럴드경제=신동윤ㆍ고도예(글ㆍ사진) 기자]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뒷골목. 이곳의 낮과 밤은 180도 다르다. 낙원 악기상가가 있는 이 곳의 낮은 노년을 위한 평화로운 골목이지만, 해가 지면 사랑과 만남을 찾는 이들의 성지가 된다. 특이한 점은 밤늦게 이곳을 찾는 이들이 대부분 ‘남성’이라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종로3가 ‘게이거리’의 얘기다.

17일 새벽 0시30분께 본지 기자가 이 거리가 시작되는 지하철 3호선 종로3가역 6번 출구를 나섰을때 거리는 온통 20~30대의 젊은 남성들로 북적였다. 특히 지하철 출구 앞에 늘어선 붉은색 포장마차에는 여주인을 제외하곤 모두 쌍쌍이 앉은 젊은 남성들 뿐이었다.

포장마차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깃줄이 어지럽게 엉킨 좁은 골목 사이로 짝을 지어 사라졌다. 서로의 어깨에 손을 두른 채였다. 새벽이 깊어질수록 남성들의 스킨십은 보다 농도가 짙어졌다.


종로3가 ‘게이거리’에 위치한 한 클럽의 모습. 이곳에 위치한 가게들에서는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남성들이 들어간 골목으로 따라 들어가니 꽤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 골목에는 흰 바탕에 까만 글씨로 쓰인 간판들이 무더기로 보였다. 이 지역을 관할하는 파출소 경찰관의 전언에 따르면 이곳이 모두 성소수자를 위한 업소라고 했다. 흰 간판이 걸린 가게 앞에는 공석을 찾아 두리번 거리는 남성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이들이 기다리는 가게 창문 너머로는 남성들이 서로의 머리를 어깨에 기대거나 손등에 입을 맞추는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일명 ‘게이거리’에서 조금 벗어난 대로변에서는 동성연애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 거리는 지난 1980년대부터 이곳 낙원동에 형성되기 시작했다. 중구 신당동 인근에 몰려있던 술집과 유흥업소들이 북쪽으로 올라와 자리를 잡다 종로3가역 일대까지 뻗었고, 이곳에 성소수자들이 모여들며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게이거리를 찾는 남성들은 심리적인 편안함 때문에 더욱 이곳을 찾는다고 말한다. P주점에서 만난 동성애자 박모(22) 씨는 “이곳은 숨기거나 꾸미지 않은 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다. 편해서 자주 찾는다”고 했다. 그는 왜 여성을 경계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 집에 누가 들어오면 경계하는 게 당연하다. 외부인이 골목을 오가면 (내가 게이라는 것이)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도 있으니까”라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이 거리의 남성들은 대부분 유일한 여성인 기자를 극도로 경계하는 눈초리로 바라봤다.


낮엔 한적한 여느 골목과 다르지 않은 이곳 종로3가 ‘게이거리’엔 해가 질 때 쯤이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이들에게 이곳 게이거리는 마음껏 사람을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해방구다

낮엔 한적한 여느 골목과 다르지 않은 이곳 종로3가 ‘게이거리’엔 해가 질 때 쯤이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이들에게 이곳 게이거리는 마음껏 사람을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해방구다

동성애자들의 만남을 성(性)적인 관계로만 바라보는 세간의 오해에 대해 억울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홍대거리와 이곳이 다른게 뭐죠”라는 본지 기자의 질문에 지모(25) 씨는 “그는 함께 술을 마시고 모텔을 찾는 등 성적 관계를 원해서 거리를 찾는 사람이 있지만, 도란도란 서로의 고민을 나누기 위해 찾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이들 동성애자에 대한 거리 상인들의 시선은 이해관계에 따라 극명하게 갈렸다.

낮 시간에 주로 장사를 하는 인근 칼국수 집 주인 조모(71) 씨는 “밤늦게 높은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고 술마시고 거리에서 진한 스킨십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지 못하다. 술을 마시고 가게 문을 부수는 사람들이 많아 게이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고 했다. 반면 밤 시간대 장사를 하는 식당 주인 이모(50) 씨는 대부분 매너가 좋은 사람들이 많다고 동성애자들을 두둔하며 “사실 그들이 없으면 우리 가게 매출이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내겐 고마운 존재”라고 했다.

이런 특별한 공간이 사회로부터 낙인을 찍히며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성소수자에겐 작은 쉼터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이종걸(38) 사무국장은 “이 거리는 동성애자들에게 일종의 해방구다”라고 했다. 그는 “누구나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을 공간이 필요하고, 성소수자들에게는 이런 공간이 마땅치 않아 바(bar)나 클럽같은 곳에서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어 나간 것”이라며 “유흥업소가 많다고 해서 성소수자는 거리에서 문란한 행위를 한다고만 낙인찍을 수는 없다”고 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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