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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자투리천을 줄여라”…SPA대항하는 ‘슬로우 패션’ 혁신가 단 포
[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천예선ㆍ민상식 기자]‘녹색(친환경)’이 ‘황금(돈)’이 되는 시대다. 전기차ㆍ하이브리드차(가솔린엔진+전기모터) 등 에코카에서 유기농ㆍ슬로우 푸드, 슬로우 패션까지. 환경으로부터 자본주의와 산업문명의 부정적인 측면을 확인하게 된 소비자들이 대안이자 희망으로 떠오른 ‘가치소비’에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다.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단 포(Dan Vo)가 올 가을을 겨냥해 만든 남성 코트. 옷감 ‘낭비제로’ 방식으로 재단해 만들었다.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 주축이던 패션업계에도 슬로우 바람이 거세다. 패스트 패션이란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최신 트렌드를 즉각 반영해 빠르게 제작하고 빠르게 유통시키는 의류를 말한다. 미국의 갭, 스페인의 자라, 일본의 유니클로, 스웨덴의 H&M이 대표적이다.

패스트패션 돌풍으로 관련기업 오너들은 억만장자 반열에 섰다. 자라의 지주회사 인디텍스그룹의 아만시오 오르테가 회장은 세계 2위 부호다. 그의 자산은 698억달러(81조원)로 평가된다. 세계 최대 갑부 빌 게이츠(762억달러ㆍ89조원)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바로 다음이다. 유니클로의 야나이 타다시 패스트리테일링 회장 역시 자산 135억달러(15조8000억원)를 보유해 일본 최대 억만장자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최근 패스트패션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공장에서 빠르게 대량생산되고 쉽게 버려지는 옷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소비자 뿐만 아니라 생산자 쪽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예가 의류 제작시 버려지는 옷감을 줄이는데 앞장서고 있는 영국의 남성복 디자이너 단 포(Dan Vo)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단 포를 집중조명하며 그를 ‘혁신가’라고 호평했다.

베트남계 후손으로 영국 스코틀랜드에 기반한 코트 디자이너 포는 독특한 옷감 재단으로 환경보호를 실천하고 있다. 기존의 방식대로라면 코트의 앞면과 뒷면, 팔과 칼라의 본을 각각 옷감에 눕혀서 일정 정도 사이를 띄우고 재단한다. 개별 조각의 주변을 넓게 잘라내면서 버려지는 옷감은 그만큼 많아진다.

옷감 줄이기 디자인에 앞장서고 있는 단 포


이에 반해 포는 팔과 칼라, 앞뒷면과 주머니까지 개별 조각들을 마치 퍼즐조각 맞추듯 완벽하게 하나의 옷감 위에 맞춘다. 포는 “재단 과정에서 옷감 15~30%가 버려진다”며 “패션계에 일고 있는 ‘낭비제로(Zero Waste)’ 지지자로서 200cm 원단을 145cm로 줄여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의류 제작시간은 오래 걸린다. 기존 방식대로 라면 몇 일 걸리는 일이지만 ‘낭비제로’로 만들면 수개월이 걸리기 일쑤다. 특히 체크무늬나 헤링본무늬(V자형 형태가 계속 연결된 무늬) 옷감을 다룰 때는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포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옷을 만들면 원본과 패턴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어 더욱 창의적이고 핏(Fit)의 정확도도 쉽게 높일 수 있지만, ‘낭비제로’ 방식을 고수하면 여러 종류의 직각형태를 옷감에 맞춰야 하고 하나가 짧아지면 다른 조각들을 모두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포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잘 맞는 옷을 만드냐”라며 “내가 만든 옷을 본 사람들은 ‘낭비제로’ 방식으로 옷이 만들어졌는지 알아채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환경에 대한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이같은 방식으로 작업하는 기술을 채득하게 되면 시간은 계속적으로 단축되고 다른 종류의 의상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간과 공이 많이 들어가는 만큼 가격은 높아졌다. 오는 10월 판매 예정인 남성 재킷의 경우 450~500파운드(75만~84만원)로 책정됐다. 가디언은 “시장 관점에서 볼 때 가격은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포는 “나는 슬로우 패션을 지지한다”며 “환경을 생각하고 값싼 옷보다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옷을 사는 고객에 어필하고 싶다”고 말했다.

2013년 5월 ‘세계 의류 공장’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붕괴사고 모습. 당시 1129명이 사망하고 2500명이 부상당하면서 건물에 입주해 있던 글로벌 의류회사의 하청업체 노동환경이 논란이 됐다.

영국의 비영리단체 ‘패션혁명(Fashion Revolution)’에 따르면, 영국 내에서 버려지는 옷감은 매해 200만t에 달한다. 패스트패션도 주범 중 하나로 꼽힌다. 포는 “의류 제작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재활용되지 않는 자투리 천이 많이 생기게 된다”며 “많은 제조업체들이 쌓여가는 자투리 천을 방치하고 결국 쓰레기 매립지로 보낸다”고 전했다.

여기에는 디자이너들간 과도한 경쟁도 한몫한다. 복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옷감을 재활용하지 않고 폐기처분하는 것이다. 때문에 환경단체들은 패션업계에 강도 높은 투명성과 매해 옷감 20%를 재활용하자는 운동을 요구하고 있다.

포는 “우리는 너무 많은 의류를 생산하고 유행도 너무 빨라서 옷의 생명주기가 매우 짧다”며 “우리가 만들어내고 방치하는 자투리 천 뿐만 아니라 옷을 싸게 사서 구입해 쉽게 버리는 소비패턴도 환경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값을 좀 더 주고라도 디자이너의 철학이 담긴 옷을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공정무역을 지지하는 것처럼 환경에 도움이 되는 가치를 공유하는 소비에 동참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도 더 높이려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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