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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는, 왜?]창피하다는데 ‘극단 정치’가 승리한 이유는?…트럼프ㆍ두테르테, 기성정치 실패가 낳은 ‘정치 사생아’
[헤럴드경제=김성훈ㆍ이수민 기자]로드리고 두테르테 다바오시 시장이 10일(현지시간) 사실상 필리핀 대통령에 당선됐다. 현지 ABS-CBN 방송에 따르면 두테르테 시장은 오전 4시(현지시간) 현재 74%의 개표가 이뤄진 가운데 1483만 표를 얻어 집권 자유당(LP) 후보인 마누엘 로하스(58) 전 내무장관(889만 표)을 600만 표 가까이 앞섰다.

두테르테 시장의 당선은 1946년 독립 이후 사상 최대 이변이다. 중앙 정치무대에 선 적도 없다. 경력이라고는 고작 필리핀 최남단 민다나오섬 다바오시의 지방검사-시장이 전부다. 유력 정치 명문가가 지배해온 필리핀 정치권에서 보면 조무래기에 불과한 아웃사이더가 대(大) 이변을 만들어 낸 셈이다.

[사진=게티이미지]

앞서 도널드 트럼프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사실상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자리를 꿰찼다. 마르코 루비오를 비롯해 쟁쟁한 후보들이 워싱턴 정치에 문외한이었던 ‘트럼프 돌풍’ 앞에 무릎을 꿇었다. 트럼프는 급기야 전국 지지도에서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를 앞서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벌써부터 백악관의 새 주인마냥 하루 아침이 멀다하고 세계를 들었다놨다 하고 있다.

두테르테 그리고 트럼프. 둘 다 기성 정치권으로부터 환대받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닮은 꼴도 한 두개가 아니다.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막말은 두테르테와 트럼프의 트레이드 마크다. “범죄자 10만명을 죽여 물고기 밥이 되도록 마닐라만에 버리겠다” “피비린내나는 대통령 자리가 될 것”이라는 등 두테르테의 입에서 나온 말은 품위있는 정치인의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세계를 공포의 도가지로 휘젖고 있는 트럼프의 막말과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다.

식자(識子)들은 두테르테와 트럼프를 가리켜 ‘외교 문외한’ ‘극단적 포퓰리스트’라고 비아냥거린다. 심지어 창피하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필리핀 경제가, 그리고 미국 경제가 만신창이가 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사진=게티이미지]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두테르테’, ‘트럼프’를 외치고 환호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뉴욕타임스(NYT) 등은 이를 놓고 “예상치 못한 와일드 카드(wild card)의 승리”로 표현하곤 했다. 어느 누구도 이들이 정치판에 구원투수로 등판하리라곤 예상치 못했다는 것이다. 등판을 해도 곧바로 퇴출될 줄로만 알았다.

모두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기존 정치가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놓는다. 정치가 해야 할 마땅할 일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감과 환멸, 그리고 변화에 대한 욕망이 이들 ‘와일드 카드’의 등판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두테르테와 트럼프는 모두 결국은 실패한 기성정치가 낳은 “정치 사생아”인 셈이다.

필리핀은 2010년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 취임 후 6%의 높은 GDP(국내총생산)을 기록했다. 하지만 성장의 과실은 일부 재벌 가문에 집중됐다. 국민 네 명 중 한 명은 여전히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고, 필리핀은 각종 범죄를 진열해 놓은 ‘범죄 백화점’이 됐다. 성장의 과실을 조정하고, 치안을 책임져야 할 정치는 되려 부정부패의 산실이라는 오명을 안았다. 제대로 된 정치가 작동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리처드 헤이다리안 마닐라 살레대 정치학과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소수 정치 명문가 후손들이 주도해온 필리핀 정치에 피로감을 느낀 국민에게 두테르테가 ‘힘센 지도자’로 어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FT도 ‘더티 해리’(두테르테의 별명ㆍ상관의 방해에도 범인을 끝까지 추적해 사살하는 형사를 다룬 할리우드 영화)의 승리는 기성정치에 대한 변화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사진=게티이미지]

트럼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10일자 기사에서 ‘트럼프 현상’은 정치적 기능장애가 있다고 진단했다. 워싱턴 D.C.로 상징되는 미국의 정치가 그동안 미국인들을 위해 해 놓은 것이 별로 없다는 인식이 ‘트럼프 현상’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WSJ/NBC 뉴스 여론조사에서 후보들의 자질을 묻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가 “효율적이고,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답한 것도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

WSJ는 최근 사설에서도 트럼프식 극단적 보호무역주의가 등장한 것은 자유무역주의의 실패라기 보다는 자유무역주의의 단점을 보완해야 할 정치가 무능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자리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할 정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FT 역시 최근 사설에서 미국식 민주주의의 핵심동력 중 하나인 ‘능력주의’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도 트럼프 열풍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물론 그 원인으로는 표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토끼라는 이유로 백인 노동자를 정치권 밖으로 몰아낸 기존정치에 책임이 있으며, 이는 기존정치가 실패했다는 분석도 곁들여 졌다.

사실상 정치 실패가 두테르테와 트럼프 같은 극단의 정치를 낳고 있다는 얘기다. 정치 실패는 특히 기존 정치에 대한 변화의 열망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참에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정치에 대한 환멸, 그리고 바뀌어야 한다는 변화에 대한 열망은 아이러니하게도 ‘힘 센 지도자’에 대한 열망을 키우고 있다. 좌충우돌이다, 독단적이다는 평가는 아랑곳 않고 카리스마 있는 힘 센 지도자만이 자신들의 삶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정치를 복원시켜 줄 수 있다는 헛된(?) 믿음만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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