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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고난 운명처럼… ‘카운터테너’가 된 남자
-‘오를란도 핀토 파쵸’로 국내 오페라 무대 데뷔
-그리포네 역 맡은 카운터테너 정시만 인터뷰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국립오페라단(단장 겸 예술감독 김학민)이 국내 초연하는 비발디 오페라 ‘오를란도 핀토 파쵸(18~21일, LG아트센터)’에는 두 명의 한국인 ‘카운터테너(Counter tenor)’가 등장한다. 2007년 한국인 카운터테너 최초로 함부르크국립극장에서 오페라 ‘라다미스토’의 주역을 맡았던 이동규(아르질라노 역ㆍ37)와, 국내 오페라 데뷔 무대를 갖는 신예 정시만(그리포네 역ㆍ33)이다. 

카운터테너 정시만이 국내 오페라 데뷔 무대를 갖는다.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1714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초연된 ‘오를란도 핀토 파쵸’는 비발디 초기의 오페라 작품으로, 국내는 물론 유럽에서도 보기 드문 공연으로 알려져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바로크 시대 오페라인지라, 팬들의 기대가 높다. 무엇보다도 바로크 시대를 풍미했던 ‘카스트라토(Castratoㆍ변성기 전 거세돼 소년의 목소리를 유지하는 남자 성악가)’ 음악을 카운터테너들을 통해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막 공연을 열흘 앞둔 지난 9일,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카운터테너 정시만을 만났다. 아직은 앳돼 보이는 둥글둥글한 외모에, 풍부한 성량으로 맑고 시원한 고음을 뽑아내는 정시만은 단박에 시선을 끌었다.

정시만은 학창시절 바이올린을 전공했다가 운명처럼 카운터테너가 됐다. 그는 “카운터테너가 뭔지 알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목소리가 그렇게 났기 때문에 한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 여전히 부산 사투리가 남아 있지만, 타고난 고음과 미성이 그를 카운터테너의 길로 이끌었다.

“교회에서 노래를 했어요. 바이올린으로 입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이 끝나갈 무렵, 교회에서 만난 선생님 한 분이 성악을 해 보는 게 어떻겠냐며 제안하시더라고요. 원래 노래하는 것도 좋아해서 3~4개월 정도 레슨 받고 미국 뉴욕에 있는 매네스 음악대학교에 들어간거죠.” 

9일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오페라 ‘오를란도 핀쵸 파토’ 연습에 한창인 카운터테너 정시만.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현재 전세계에서 매니지먼트를 갖고 활동하는 카운터테너는 손에 꼽힐 정도다. 독일의 안드레아스 숄, 일본계 미국인 브라이언 아사, 미국의 데이비드 대니얼스, 일본 요시카즈 메라 정도가 대중에 알려져 있는 편이다.

정시만은 지난해 미국 유명 매니지먼트사인 ‘켄 벤슨(Ken Benson) 아티스트’에 발탁돼 최근 1~2년 동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9년 독일 알렉산더 지라르디 국제성악콩쿠르에서 최고 영아티스트상을, 2010년 스페인 프란치스코 비냐스 국제 성악콩쿠르에서 최고 카운터테너상을 받은 데 이어, 지난해 오페라 인덱스 국제 성악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뉴욕타임즈에 소개되기도 했다. 뉴욕 세실리아 합창단 초청으로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도 섰다.

학업과 공연을 병행하고 군 복무까지 마치느라 대학 입학 10년만인 지난해 가까스로(?) 졸업을 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20대 남자들이 그러하듯, 그 역시 군대에서 축구하고 족구하고 눈도 치웠다. 그는 “군대에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5년 정도 학교를 비웠어요. 군 제대하고 다시 시험을 봐야 했죠. 목소리가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이런 말 해도 되나(웃음). 만점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5년 동안 레슨 한번 안 받았는데…. 선생님들이 놀라시긴 했어요. 소리가 더 좋아졌다면서요.”

17~18세기 유럽 오페라는 카스트라토를 통해 눈부시게 성장했다. 17세기 말 교회 성가대가 여성의 가수 활동을 금지하면서부터 이들을 대체할 목적으로 양성된 카스트라토들이 세속 오페라 무대를 채웠고, 헨델, 글루크 등 많은 오페라 작곡가들이 이들을 위한 아리아를 썼다.

19세기 초 근대 오페라의 시작과 함께 카스트라토는 쇠퇴했지만, 오늘날 카운터테너들이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정시만은 카운터테너에 대해 “남성 성악가도 여성 성악가가 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많은 작곡가들이 카스트라토를 위해 멋진 노래들을 만들었잖아요. 공연을 안 하기엔 너무 아까운 노래들이죠. 헨델 오페라에서는 카스트라토가 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했어요. 그걸 소프라노가 했을 땐 그 느낌이 안 나지 않을까요? 여자가 여장을 하는 것과 남자가 여장을 하는 것의 느낌이 다른 것처럼요.”

올해 국립오페라단 주역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정시만은 ‘오를란도…’에서 용맹한 기사 ‘그리포네’ 역을 맡았다. 오리질레와 티그린다 두 여인을 사랑하는 ‘나쁜 남자’지만 결국 옛 연인인 오리질레와 결혼하는 것으로 결말 지어진다.

정시만은 오는 7월 예술의전당 협연 무대에 한 차례 더 오른 후 9월 뉴욕으로 돌아간다. 한국 오페라 무대에 카운터테너로 처음 이름을 알리는 그에게 소감을 물었다.

“감사하죠. 호호. 좋은 시기에 좋은 역할로 좋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요. 한국에서 첫 오페라 무대이기 때문에 더 잘 해야한다는 부담감도 있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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