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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 포럼] 호객행위 - 방승호 아현산업정보학교장
“우리 학교 입학 조건은 매우 까다롭습니다. 인문계 고교에서 하루 최소 5시간 이상 엎어져 잘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들만이 지원할 수 있습니다.”

평소 우리 학교를 소개할 때 하는 말이다. 다들 “그런 학교가 정말 있느냐”고 호기심을 갖고 물어본다. “공부보다는 다른 것에 재능이 있는 천재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부연 설명한 뒤 “졸업생 중 휘성, 박효신, 환희 등 기라성같은 가수들이 있다”고 말하는 순간, 현장에서 우리 학교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확 바뀌는 것을 늘 느낀다.

우리 학교는 1년 다니는 학교다. 서울 소재 고교 2학년 학생 중 일부를 해마다 뽑아 직업교육을 한다. 선발된 학생은 고교 3학년을 우리 학교에서 보낸다. 그러기에 매년 3월초 교문 풍경은 아주 특이하다. 일단 교복이, 머리 모양이 다 다르다. 책가방 대신 실용음악 전공 학생은 기타를 메고, 미용 전공 학생은 메이크업 박스를 들고 다닌다.

어느 날 입시를 포기하고 직업교육을 선택한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어 전교생을 상담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학생들을 찾아갔다. 교장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학창시절에 교장과 직접 만나는 학생이 몇이나 되겠나.

오전 자습 시간 전 “교장실에 와라”, “초코파이 무한 리필이다”고 외치며 2주 정도 교실들을 돌았다. 하나 둘 교장실로 초코파이를 받으러 오는 학생이 생기기 시작했다. 교장실 문턱을 넘은 학생에게 웃으며 “굿모닝”이라고 짧게 인사를 건넸다. “오후에 무슨 굿모닝이에요”라며 장난을 치는 학생도 나왔다.

그렇게 4주째. 학생들에게 명함을 나눠줬다. “자신의 진로와 꿈을 찾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 교장실로 오면 된다”고 했다. 들어보니 교장의 명함을 받은 것이 학생들에게 자랑이었던 모양이다. “냉장고에 붙여놓았다”, “지갑에 넣고 다닌다”는 학생도 있었다.

가끔 학교에 불만을 표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학생도 있었다. ‘식당에 늦게 갔는데 반찬이 없어서 짜증났다’ 같은 소소한 것부터 ‘다른 아이들 보는 앞에서 담임선생님이 벌 주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다소 무거운 내용까지 다양했다. ‘미안하다. 좋은 하루 되거라’며 하트(♡) 표시와 함께 카카오톡으로 답장을 보내면 대부분 학생은 마음이 풀렸는지 ‘고맙습니다’라고 ‘답톡’을 보내왔다.

덕분에 요즘 하루 학생 70~80명이 교장실에 온다. 점심시간 교장실은 놀랍게도 노래하고 춤 추는 공연장이 되고는 한다. 담배를 피다 두 번이나 걸렸던 한 학생은 “78시간째 금연 중”이라며 너스레를 떨고는 초코파이를 받아 간다.

사람들 대부분은 공부만을 대단한 일로 여기고, 공부 외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은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학창시절 노래하는 일, 빵 만드는 일로 존중받을 수 있다면 많은 학생이 담배나 게임 등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의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날마다 이렇게 가볍게 호객행위를 하며 학생들과 친해지자 우리 학교는 흡연, 폭력 등이 사라지고,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이 없는 ‘이상한 학교’로 변하기 시작했다. 짧은 1년이지만 학생이 선택한 꿈이 인생의 새 항로가 됐으면 좋겠다. 푼수 같고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교장의 행동을 이해해 준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 방승호 아현산업정보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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