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프리즘] 거제의 눈물과 자영업자의 눈물
“우리 동네 소매 자영업자 사장님도 곧 문을 닫을 처지입니다. 거대 재벌 조선ㆍ해운사의 구조조정을 위해서만 돈을 발행해야 하나요. 곳곳에서 폐업하는 자영업자에게도 이런 처방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이는 최근 논란이 깊어지고 있는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한 구조조정 지원,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 기사들에 대한 온라인 여론의 주된 반응이다.

국가 경제의 거대한 축을 이루는 조선과 해운업을 내수의 일부인 자영업과 동일선에 올려놓고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온라인 독자들의 의미 없는 댓글이라 치부하기엔 무언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현상에 대한 이들의 시각과 평가가 결코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의 ‘선별적 양적완화’에 대한 한국은행의 속내도 이와 결코 다르지 않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지난 2일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은이 필요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것”이라고 언급하며 큰 고비를 넘겼지만, 한은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독립성을 가진 중앙은행인 한은이라면 응당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전제되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특정 기업과 산업 구조조정을 위해 전 국민이 화폐가치의 하락이라는 희생을 나눠 가지는 만큼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는 건 당연한 반응이다.

‘양적완화’는 사실 첫 출발부터 스텝이 꼬인 측면이 없지 않다. 구조조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던 상시적 이슈였다. 그럼에도, 중앙은행, 혹은 경제계에서 먼저 제안되지 않고, 선거를 앞두고 집권 여당에서 너무나 갑작스럽게 툭 튀어나왔다.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해 정치권이 논의를 시작했다면 이처럼 어렵고 복잡한 길을 걷지 않았을 것 같다.

사실 발권력을 동원한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이라는 정부의 방안은 설득력을 충분히 가진 정책 아이디어다. 이미 중앙정부와 공기업은 막대한 부채 부담을 안고 있다. 이런 여건에서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재정정책을 구사하기엔 적잖은 부담이 따른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기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게다가 전 세계적인 수요감소와 이로 인한 저유가는 오히려 인위적으로 물가를 상승시켜야 할 만큼 인플레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놓은 상황이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에게 이런 의도가 얼마나 진실되게 전달되고 있을지에 대해선 적어도 현 시점에선 회의적이다. 대통령이 언론사 편집국장들을 만나고, 곧이어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인 금융위원장은 언론사의 경제부장을 만나 구조조정에 대한 현황과 ‘한국판 양적완화’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설득의 과정으로 보이지 않고, 재촉과 강요라 느끼는 이들이 더욱 많은 건 왜일까. 아직 ‘거제의 눈물’이 왜 우리 주변의 ‘자영업자의 눈물’과 달라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과 이해가 부족해서가 아닐까.

외환위기 당시 우리 국민들은 장롱에 꼭꼭 숨겨두었던 금을 손수 들고 나와 나라의 경제 살리기에 동참했던 저력과 열정을 보여준 바 있다. 이런 국민들에게 사회적 합의는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부디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선의가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달되길 바란다. 나라의 생존을 다툴 사안을 두고 불필요한 논쟁과 정쟁이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 

/ 정순식 금융투자섹션 금융팀장 sun@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