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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머니스토리] 돈 찍어 기업 돕겠다는 정부...묘수? 꼼수?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은행법 1조 1항)
“통화신용정책은 중립적으로 수립되고 자율적으로 집행되도록 하여야 하며, 자주성은 존중되어야 한다”(동법 3조)

한국은행법 어디를 봐도 돈을 빌려주는 근거조항은 있어도 자본을 대는 ‘출자’ 언급은 없다. 그런데 한국은행은 이미 수출입은행 지분 13.1%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어떻게 된 영문일까?


수출입은행법 4조는 “자본금은 15조원으로, 정부, 한국은행, 산업은행, 은행, 수출업자의 단체와 국제금융기구가 출자하되, 정부 출자의 시기와 방법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이다. 한국은행법이 아닌 수출입은행법에 따라 ‘출자’가 허용된 ‘낯선(?)’ 구조다.

산업은행법 5조를 보면 “자본금은 30조원 이내에서 정관으로 정하되, 정부가 100분의 51 이상을 출자(出資)한다”고만 돼 있다. 수출입은행처럼 산업은행 법에도 ‘한국은행의 출자’를 넣겠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물론 법 개정은 국회, 즉 정치권의 손에 달렸다. 그런데 이미 수출입은행법 개정을 해봤던 정치권이다. 거대 야당이 끝까지 정부안을 반대하리라 낙관하기도 어렵다.

한국은행이 국책은행에 출자를 하게 되면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이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구조가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정부는 재정부담을 안고 국책은행에 출자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한국형 양적완화’로 표현하며, 기업 구조조정 재원마련의 묘수로 제시했다. 사실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재정투입은 돈 쓰고도, 정부가 생색내기 어렵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은 ‘양날의 칼’이다. 가장 강력한 수단이지만, 최후의 수단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여러 장치를 통해 통제된다.

미국의 중앙은행에 해당하는 연준(Federal Reserve)은 국채에 대해서만 새로운 돈을 찍어낼 수 있다. 중앙은행의 발권은 곧 정부 부채의 증가다. 영국의 시스템을 따른 홍콩은 3개의 상업은행에서 지폐를 발행한다. 정부의 무분별한 발권으로 인한 통화량 팽창을 막기 위해서다. 시중은행들도 발권하려면, 발행할 액수를 정해진 비율의 미국 달러로 홍콩 금융관리국(HKMA, 홍콩 통화청)에 미리 지불해야 한다. 발권력은 갖되 마음대로 돈을 찍지 못하도록 한 장치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한국은행은 금융시장 안정 대책자금을 지원했고, 1999년 대우사태 이후 금융시장 안정대책의 일환으로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국공채를 매입하거나 환매조건부채권(RP)거래를 통해 필요한 유동성을 공급했다. 경제와 금융시장 상황이 긴박할 때였고, 모두 출자가 아닌 대여였다.

중앙은행이 실물경제 지원에 신중한 이유는 너무 쉽게 나설 경우 금융기관들이 고수익 · 고위험자산으로 쏠리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보통 중앙은행은 금융기관의 경영실태를 분석하거나 지도 · 감독 등을 통해 건전경영을 유도하기 위한 권한을 가진다. 우리나라는 한국은행이 가졌던 권한이 외환위기를 겪으며 ‘민간기구(?)’인 금융감독원으로 넘어갔다.

디플레이션이라고, 인플레가 약이 되는 상황이라고 발권에 경솔해서는 안된다. 한국은행의 수출입은행 출자가 말많고 탈 많은 해외자원개발과 관련있었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 묘수가 꼼수일 수 있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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