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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축구장 참사 “경찰 잘못”…27년만에 드러난 힐스버러의 진실
지난 1989년 96명의 축구팬들이 압사한 영국 힐스버러 참사가 경찰 과실에 따른 인재라는 판결이 나왔다. 참사 후 27년 동안 끈질기게 진상규명을 요구해온 유족들은 환호하고 눈물을 흘렸다.

영국 체셔 주(州) 워링턴에서 열린 힐스버러 참사 진상규명 재판에서 배심원들은 경찰이 안전 관리 의무를 위반했으며 “중대한 과실로 인해 참사에 책임이 있다”며 이같이 결론내렸다고 영국 언론들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힐스버러 참사는 1989년 노팅엄 포레스트FC와 리버풀의 잉글랜드축구협회컵 준결승전이 열린 영국 셰필드 힐즈버러 경기장에서 축구팬 96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관중들이 갑자기 한쪽으로 쏠리면서 리버풀 원정팬 96명이 압사하고, 7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어 ‘축구 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돼 있다.

배심원들은 경찰의 경기 관리 상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경기장에 발 디딜 틈이 없었음에도 경기장 출입구를 개방함으로써 피해자들의 압사를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또 관중들을 통제하는 저지선도 마련하지 않았고, 다수의 관중이 몰릴 경우에 대비한 비상 계획도 없었다. 경찰의 늑장 대응으로 응급차가 제때 오지 않는 등의 문제도 있었다.

이 판결이 있기까지 피해자의 유족들은 ‘폭력적이고 광적인 축구팬들이 자초한 일’이라는 냉소에 시달려야 했다. 실제 첫번째 조사위원회가 1990년 펴낸 사고 보고서인 ‘테일러 보고서’는 사고의 가장 큰 원인으로 술에 취한 리버풀 팬들이 과격한 행동을 한 것을 꼽았다.

그러나 유족들은 포기하지 않고 27년간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1997년 또 한 차례 조사위원회가 꾸려졌지만 흐지부지됐고, 2009년 12월 독립적인 조사위원회가 다시 꾸려져 3년여간 전면적인 재조사가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경찰들은 축구팬들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우려했고, 긴급 구조가 제대로 됐더라면 40여 명은 구할 수도 있었다는 결론도 나왔다.

판결 후 유족들은 법원 앞에 모여서 리버풀 응원곡 ‘유 윌 네버 워크 얼론’(You’ll Never Walk Aloneㆍ당신은 절대 혼자 걷지 않을 것이다)을 불렀다. 사고로 18살 아들을 잃은 마가렛 아스피날 씨는 “우리가 역사의 한 부분을 바꿨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96명의 피해자들이 남긴 유산이다”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이 날을 “오랫동안 지연된 정의를 제공한 기념비적인 날”이라고 평가하며 “모든 유족과 생존자들은 리버풀팬은 절대 참사에 책임이 없다는 공식적인 확인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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