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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담아미의 문화쌀롱] ‘마타하리’를 어찌하리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암전 한 번 없이 장면 전환. 1막에서 31번, 2막에서 21번. 무대감독이 주는 큐 사인 195개….

EMK뮤지컬컴퍼니(대표 프로듀서 엄홍현)가 제작비 250억원을 들여 만든 첫 창작 뮤지컬 ‘마타하리’는 ‘블럭버스터급’ 제작비와 초호화 크리에이터, 캐스팅 이 외에도 몇 가지 기념비적인 기록들을 갖고 있다. 바로 ‘무대 기술’에 관한 기록들이다. 30개의 모터를 하나의 콘솔로 제어할 수 있는 오토메이션 무대 장치를 국내 기술로 최초 개발했다

인터미션 20분을 제외한 본 공연 시간은 160분. 1막과 2막을 합쳐 장면 전환이 52번 이뤄지므로 3분마다 한번 꼴로 무대가 바뀌었으며, 무대 감독은 약 48초에 한번씩 큐 사인을 보낸 셈이 된다.

EMK의 이전 작품인 뮤지컬 ‘엘리자벳’도 오토메이션 장치를 이용한 무대 전환이 특징이었다. 당시 무대전환 큐 사인은 100개. ‘마타하리’는 ‘엘리자벳’보다 2배에 가깝게 늘어났다.

29일 베일 벗은 뮤지컬 ‘마타하리’는 “무대는 또 하나의 배우”라고 했던 제작진들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무대는 살아 움직이는 배우 그 자체였다.

1900년 파리 물랑루즈의 발코니 극장을 재현한 타워형 무대를 중심으로, 때론 물랑루즈 극장의 분장실이 됐다가, 라두 대령의 집이 되기도 하고, 비행기 격납고가 되기도 했다가, 병원이 되기도 한다. 끊임없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빠르게 전환된다.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그러나 뮤지컬 ‘마타하리’에서 무대라는 이름의 ‘주연’ 배우는 다른 모든 배우들을 ‘조연’으로 집어 삼켰다. 치명적 매력을 지닌 ‘팜므파탈’ 마타하리도, 그녀를 감시하기 위해 접근했지만 곧 사랑에 빠져 버리고 만 아르망도, 마타하리에 대한 비틀린 욕망으로 그녀를 죽음으로 내모는 라두 대령도, ‘무대’의 무게감보다 압도적이진 못했다. 배우들은 순식간에 전환되는 무대 위에서 위태롭게 중심을 잡고 있는 듯 보였다.

EMK 측은 “제작비의 팔할이 무대 세트 제작에 쓰였을 정도”라고 했다. 상반기 최대 화제작 ‘마타하리’는 바로 이 무대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호평으로 보자면 리얼리티가 넘치고, 혹평으로 보자면 군더더기가 넘친다. 마술을 펼쳐 보이듯 화려한 장면 전환이 ‘볼거리’를 찾는 관객들에게는 호평을, 무대예술에서 ‘은유의 매력’을 찾는 관객들에게는 혹평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은 자신의 장기를 이 작품에서 유감없이(?) 발휘했다. 마치 배우들의 음역대를 시험이라도 하듯 넘버들은 고음 엔딩이 넘쳐 난다. 악보 여기저기 등장하는 조바꿈(轉調ㆍ전조)은 순간 음이탈이 아닌지 귀를 의심하게 만든다. 7개의 리프라이즈(Reprise)는 이 작품에서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는 곡들을 지루하게 반복 학습시킨다.

뮤지컬 ‘마타하리’의 월드 프리미어 무대는 기교와 화려함이 밥알 사이의 돌처럼 씹혔다. 옥주현(마타하리), 송창의(아르망), 류정한(라두 대령) 등 국내 최정상 배우들은 오로지 솔로일 때 빛을 발했다.

첫 대형 창작 뮤지컬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았기 때문일까. 작품성을 말하기엔 아직 이른 듯 보였다. 다행인 건 흥행이 꼭 작품성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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