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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뜨거운 감자 성년후견제①] 70대 재력가父 후견 놓고 형제다툼… 롯데家 분쟁 남의일 아니다
- 치매 아버지, 25세 연하 여성과 혼인신고
- 보다못한 차남 “아버지 내가 돌보겠다” 성년후견 신청
- 법원 “가족분쟁 우려…변호사가 후견해야” 확정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서울 강남에 기반을 둔 건설사의 박창환(77ㆍ가명) 회장은 2010년 병원에서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진단받았다. 이 무렵 자신의 비서 A(52ㆍ여) 씨와 평소 가깝게 지내온 박 회장은 결국 부인과 황혼이혼하며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혼 후 7개월만에 박 회장은 자식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A씨와 혼인신고를 했다.


당초 A씨를 새어머니로 맞이하는 것에 극구 반대했던 장남(51)은 아버지 소유의 시가 35억원 상당의 빌딩과 회사 주식 4만5000주를 증여받고 나서 A씨 편에 섰다. 그 사이 박 회장의 치매는 악화돼 의사표현은 물론 기억력과 계산능력에도 상당한 장애를 보였다.

이 사실에 분노한 건 차남(48)이었다. 아버지를 A씨와 형에게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한 차남은 2013년 8월 국내에 도입된 지 한달 된 성년후견제를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의 후견인으로 자신을 선임해달라며 서울가정법원에 성년후견개시심판을 청구한 것이다.

박 회장의 후견인 선임여부를 놓고 가족은 새어머니ㆍ장남 대 차남으로 편이 갈려 소송에 돌입했다. 차남은 아버지가 판단력이 흐린 상태에서 혼인신고가 이뤄졌다며 혼인무효소송도 같이 접수했다. A씨와 장남은 국내 10대 로펌 중 두 곳을 대리인으로 선임해 차남의 ‘반격’에 맞섰다.

[사진=헤럴드경제DB]

가정법원은 박 회장에 대한 출장조사와 면접조사를 거듭한 끝에 1년 만에 후견인을 결정했다. 후견인은 차남도, 장남도, A씨도 아니었다. 재판부는 박 회장의 사무처리 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면서 “가족 중 어느 한 쪽에 후견업무를 맡기면 분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박 회장의 이익을 위해 중립적 지위에 있는 변호사를 성년후견인으로 선임한다”고 밝혔다.

장남과 A씨는 즉각 반발하며 항고했다. 그러나 2심에서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 사건은 결국 대법원까지 갔다.

대법원은 지난해 6월 장남의 재항고를 기각하고 변호사를 박 회장의 후견인으로 선임한 원심을 확정했다.

혼인무효소송 결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정법원은 “박 회장이 혼인신고 당시 치매로 혼인에 합의할 의사능력이 부족한 상태였다”고 보고 혼인무효 판결을 내렸다. A씨는 불복했지만 지난달 열린 2심에서도 패했다. 이 사건 역시 현재 대법원까지 간 상태다.

기존의 금치산ㆍ한정치산 제도를 대체해 만들어진 성년후견제는 지난해 그룹 총수로는 처음으로 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성년후견개시심판을 받게 되면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사진=헤럴드경제DB]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성년후견제가 처음 시행된 2013년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2년 6개월간 서울가정법원에 접수된 성년후견사건(한정ㆍ특정ㆍ임의후견 포함)은 총 1777건에 달했다. 이 중 1015건(57%)이 인용됐고, 419건(24%)은 취하 혹은 기각됐다. 343건(19%)은 아직 심리 중이다.

올해 1월 한달만 해도 63건이 신규 접수됐다. 기존에 미처리된 340건까지 합하면 서울가정법원은 한달에 400건 정도를 심리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성년후견학회장을 맡고 있는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년후견제를 신청한 이들의 대부분은 지적장애나 치매 등으로 금융 거래나 부동산 거래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라며 “그에 비해 드물지만 판단능력에 문제가 있는 부모의 재산을 두고 분쟁이 있는 가족들도 신청한다”고 설명했다.

성년후견개시심판 사건은 결론이 나기까지 통상 3~4개월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박 회장의 경우 가족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한데다 대법원까지 올라가면서 약 2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신 총괄회장 사건 역시 박 회장처럼 판단능력을 두고 가족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고, 장ㆍ차남이 좀처럼 입장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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