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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름인듯 왕릉아닌…필리핀 보홀 미스터리 ‘초콜릿힐’
200만년 전 바닷속 솟아오른 땅
전설엔 ‘슬픈 사랑’ 거인의 ‘눈물’
호핑투어객들의 천국 발리카삭섬
눈이 몸의 3분의 1인 안경원숭이
침입자(?)에 활겨누는 꼬마전사
때묻지않은 자연·사람을 만나다



북위 10도인 필리핀 보홀의 2월말은 청량감이 넘쳤다. 세계 10대 불가사의에 꼽히는 초콜릿힐 위에서는 초가을의 시원함까지 느껴진다. 가장 높은 힐에 마련된 전망대에서는 경주의 황남대총 보다는 크고, 제주의 오름 보다는 작은 반원형 언덕 1270여개가 한눈에 펼쳐진다.

해변가로 가면 연청록 바닷물과 선선한 바람, 그물 침대의 낭만이 펼쳐지고, 동그랗게 생긴 보홀주(州)의 막내, 발리카삭 섬에는 수중 산호와 열대어에 빠져든 호핑 마니아들이 즐비하다.

인근 세부에서는 레포츠를 즐기는 부류와 필리핀 최초의 크리스트교 전래지의 다양한 관광유적을 탐색하는 부류로 나뉜다. 거리, 시장, 관광지에서 만난 대학생과 어린이들의 미소는 때묻지 않은 세부-보홀의 생태처럼 순수했다.

필리핀 보홀(Bohol)의 초콜릿힐은 우리의 고분 보다는 크고, 오름 보다는 작은 반원형 언덕 1270여개가 펼쳐진 곳으로, 세계 10대 불가사의에 꼽힌다. 생태 도시로서 순수한 자연 속에 순수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보홀은 방문하는 것 만으로도 바삐 살아가는 한국의 도시 사람들에게 신선한 교훈을 던져준다. 작은 사진은 발리카삭섬 전경.

7000여개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의 한 가운데, 아라비아 숫자 ‘10’자 형태로 나란히 선, 길죽한 세부와 동그란 보홀의 2월말~3월초는 그렇게 순수하거나 역동적인 두 개의 풍경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보홀에 숙박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다보니 세부에서 1박한 뒤 보홀 하루투어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세부공항에서 차로 10분거리에 있는 막탄섬 제이파크에서 세부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 세부선착장에 도착한 뒤 보홀행 페리호를 타면 1시간 40분정도 걸려 보홀의 주도 타그빌라란항에 도착한다.

필리핀 독재자 마스코스의 부인 이멜다의 고향이다. 이멜다가 수십년 이 나라 안방마님 노릇을 한 비결일까, 필리핀 한가운데 있다보니 태풍이 와도 피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로복강은 원시부족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신(神)이 된 대게 ‘알리방호’ 석상 앞에서 꼬마 전사는 침입자에게 화살을 겨누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원시림 속으로 빠져드는 사이 유람선에선 싱어 제이드(Jade)의 동서고금을 섭렵한 노래 공연과 여고생 같은 외모를 가진 스물세살 쥬빌(jubilee)의 발랄한 서빙이 이어진다. 거북선을 닮은 유람선에서는 ‘강남스타일’ 노래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타르시어 보호센터에 가면 보홀섬에만 사는 ‘안경원숭이(타르시어)’가 서식한다. 인공적인 어떤 요소도 거부하기 때문에 원래 살던 자기집에서 손님을 맞는다. 몸 길이가 고작 13㎝에 불과한데 눈이 몸의 1/3를 차지한다. 청정 자연생태과 여행이 좋아 수학교사를 그만두고 보홀에 터잡은 가이드 이강석(33)씨는 “서식지를 강제로 옮기면 스트레스로 자살까지 감행하는 순정파인 만큼 촬영땐 반드시 플래시를 꺼달라”고 당부했다.

제주의 2.2배 크기인 보홀섬 중심부 카르멘 근처로 가면 신화로도, 지구과학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초콜릿힐을 만난다. 과학자들은 200만년 전 얕은 바다 속에 있다가 지면이 위로 솟아 오르면서 육지가 되었고 산호층이 엷어지면서 초콜릿힐과 같은 모양이 만들어 졌다고 한다. 아주 오랜 옛날 아로고 라는 거인이 정혼한 남자가 있는 처녀를 사랑해 그녀를 쥐고 애정도피 행각을 벌이다 그만 자신의 움켜쥔 손으로 그녀를 죽이고는 그 슬픔을 못이겨 하염없는 수천방울 눈물을 떨군 것이 쵸콜릿힐로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모두 불가사의를 해석해주지는 못한다.

보홀은 반딧불과 나비의 고향이기도 하다. 뉴질랜드인 크리스티 버레이스가 수집한 나비들로 만든 나비공원은 한국말은 어눌해도 한국어 개그는 개콘 개그맨보다 잘 하는 안내요원 레이벤(29ㆍRayven)의 개인기때문에 한국인이 꼭 가봐야할 코스가 됐다. 일몰뒤 보홀은 삼색 빛으로 부활한다. 환경보호가 만들어낸 밤하늘의 별, 수백만 마리의 반딧불, 청량한 물속에 비친 프랑크톤이 저마다의 빛깔을 내며 관광객들을 쉴틈없이 유혹한다.

세부의 일곱색깔 바다색과 휴양 액티비티는 재론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세부에는 휴양시설외에 스페인의 첫 필리핀 거주지역, 중국 자본의 상륙지역, 마젤란의 첫 포교지역이라는 점 때문에 마젤란의 십자가, 산토니뇨 성당, 산 페드로 요새 등 유적지도 적지 않다. 아울러 국민소득은 낮아도 행복지수 1위를 기록한 그들의 낙천적인 모습에서 바삐 살며 내 것 챙기는데 급급했던 나의 한국생활을 돌아보기도 한다.

필리핀 최초의 가톨릭 신자가 된 라자후마본 추장과 그 부락민들이 세례를 받은 것을 기념해 마젤란이 1521년 4월에 만든 나무 십자가는 세부에 휴양왔던 일부 관광객이 놓치는 유적지이다. 이 십자가를 보관하기 위해 세부시 마젤라스 거리에 건립한 팔각정에는 마닐라 중고생의 수학여행 행렬도 끊이지 않았다.


필리핀에 복음을 전파한 마젤란도, 포교에 집착한 마젤란이 군사를 이끌고 다른 섬을 상륙했을때 그를 패퇴시킨 민족주의 지도자 라푸라푸 모두 필리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그들의 포용력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스페인 점령군이 이슬람에 대비해 만든 요새였다가 세부 독립운동가의 거점, 미군 막사, 일본군의 포로 수용소 등으로 기능이 바뀌었던 산 페드로 요새는 역사의 숱한 우여곡절을 뒤로 한 채, 지구촌 시민들의 놀이터가 됐다. 필리핀 대학생들의 데이트 코스로, 어린이들의 숨박꼭질 장소가 된 이곳 방문객 표정들이 싱그럽다.

세부와 보홀은 특정 관광지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도시가 아니다. 차창 밖에 비쳐진 사람들이 표정은 행복지수 1위답다. 여행은 왕궁 견학이 아니라 여관주인과의 잡담이라는 헤르만헤세의 말이 떠오른다. 대학생과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해맑은 미소에서 ‘아시아 진주’로의 부활을 꿈꾸는 필리핀의 미래를 본다.

함영훈 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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