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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감한 아빠’ 공무원“승진은 포기”
서울시 작년 남성육아휴직 36명
전체 14%로 민간보다 3배 급증
“남자가 무슨…” 눈치·뒷말 무성
“중요 시기 아이 곁 지켜줘 행복”



8년차 지방공무원 최 모(37ㆍ8급) 씨는 지난해 1월 큰 결단을 내렸다. 아이를 돌보던 어머니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해 어쩔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됐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싶었지만 분리불안 증세로 가족 중 돌볼 사람이 필요했다. 1년간 육아휴직을 쓰고 복직한 아내에게 또다시 육아휴직을 쓰라고 이야기해 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NO”였다. 세무 공무원인 아내는 진급이 얼마 남아있지 않아 곤란했다. 최 씨는 직접 아이를 맡아 키우고는 싶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치열한 진급경쟁에서 밀릴까봐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육아휴직을 편하게 쓸 수 있다고 알려진 공무원 신분이지만 “남자가 무슨…”, “그렇게 쉬고 싶었나” 등의 뒷말이 나왔다.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상사들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 무서웠다. 최 씨는 고민 끝에 승진 대신 아이를 택했다. 그리고 1년간 육아휴직 기간을 보내고 지난 1월 복직했다. 이젠 승진 순위는 까마득히 뒤로 밀려 언제 7급이 될지 기약이 없다. 아이와 보낸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복직 이후에도 주위의 싸늘한 시선을 감당하기 힘들어 했다.

정부에서는 남성 육아휴직을 권장하고 있지만 민간기업 처럼 공직사회에서도 남성 육아휴직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곱지 않다.

사표를 쓰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육아휴직서를 쓰는 ‘용감한 아빠’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남성의 육아휴직을 ‘유별난 일’로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과 직장 내 분위기 등 넘어야 할 산도 적잖다.

정부에서는 남성 육아휴직을 권장하고 있고 실제 비중이 민간에 비해선 높지만 아직은 보수적인 공직 사회 내부에서는 삐딱한 시선이 존재한다.

12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육아휴직을 한 서울시 소속 남성 공무원은 36명(구청 제외)으로 육아휴직비율은 14.2%(여성 219명)에 달했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내놓은 ‘일 가정 양립제도 2015년 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 기업에 다니는 남성 육아휴직자(공무원 제외)는 모두 4872명으로 전체 육아휴직자(8만7339명)중 차지하는 비중이 5.6%으로 나타났다. 이 중 서울의 남성 육아휴직자는 2164명(여성 3만8187명)으로 비중은 5.3%다.

서울시 공무원 남성 육아휴직 비중은 민간 기업보다 3배가량 더 높았다.

하지만 민간기업 처럼 공직사회에서도 남성 육아휴직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곱지 않다. 한 50대 공무원은 “남성들이 힘든 업무를 외면하고 육아휴직을 쓴다면 찍히는 건 당연하다”며 “육아를 핑계로 집에서 쉰다면 승진은 포기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씨는 “육아휴직 기간 주위에서는 ‘집에서 노니 부럽다’고 했지만, 이건 육아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소리”라며 “아이를 키우는 일은 지금 받는 월급을 준다고 해도 다시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든 일”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남성 육아휴직을 바라보는 공직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최 씨처럼 여성지위 향상과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더 이상 육아가 여성의 전유물이 될 수 없고 아빠들도 공동 책임져야 할 영역이란 인식이 확산돼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 씨는 “복직 이후에 자리를 옮겼음에도 ‘육아복직남’이라는 낙인이 찍혔다”며 “육아휴직을 했던 선배와 주로 대화를 하는데 둘 다 승진이 후순위로 밀려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전문가들은 남성 육아휴직이 힘든 또다른 이유를 경제적 어려움에서 찾았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비용이 많아져 자신이 받는 육아휴직급여가 턱없이 모자란다는 설명이다. 최 씨는 “아내가 공무원이서 그나마 나은 편이었지만 가정의 수입이 줄어들어 빠듯하게 생활했다”며 “외벌이 가정의 경우 매달 받는 휴직급여 75만원으로는 먹고 입는 것조차 해결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만 8세 이하 자녀를 둔 남성 근로자는 최대 1년 간 육아휴직을 할 수 있고, 고용부에서 육아휴직 급여(통상임금의 40%)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최 씨는 후회는 없었다고 했다. 그는 “승진과 맞바꿨지만 아이가 자라는 중요한 시기에 곁에서 지켜줄 수 있어 행복했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강문규 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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