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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83. ‘메세타’ 보이는 건 지평선ㆍ밀밭 뿐…불쌍한 두 다리
-까미노 데 산티아고 +12:부르고스에서 온타나스까지 29.4km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죽은 것처럼 자게 될 줄 알았는데 너무 일찍 누운 탓인지 오히려 잠을 설친다. 45km라는 전무후무한 거리를 걸었던 몸은 피곤에 쓰러질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각성이 된다. 현대적으로 설계된 부르고스의 시립알베르게 침상은 닫힌 듯 열린 구조다. 커다란 공간에 놓여있는 많은 침대들이 즉각 노출되지 않고 오히려 개인적인 공간으로 숨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깊은 밤, 뒤척이다 일어나 앉아 잠에 빠진 사람들의 고른 숨소리를 듣는다. 온종일 걸어와 피로한 육체를 씻겨 침대 위에 눕힌 순례자들의 숨소리가 듣기 좋다.


잠을 못 자도 아침은 찾아온다. 물집이 크게 자리 잡은 오른쪽 발바닥에 바늘로 구멍을 내고 케이가 준 반창고를 붙이고 양말을 신는다. 신발은 부실해도 등산용 두툼한 양말 두 개를 준비해와서 번갈아 신고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밤새 잘 말라준 속옷과 양말도 고맙기만 하다. 부스스한 “부엔까미노” 인사를 나누며 알베르게 문을 나선다.

톨레도(Toledo), 세비야(Sevilla) 성당과 함께 스페인의 3대 카테드랄(Catedral)이라는 부르고스(Burgos) 대성당을 지나친다. 어제 늦게 도착했고 오늘 일찍 출발하게 되니까 들를 여유가 없다. 이미 톨레도에서 멋진 대성당을 보고 왔고 세비야는 까미노 후 여행할 예정인 것이 오늘 부르고스 대성당을 그냥 지나치는 변명이 된다. 마음이 온통 걷기에 집중되어서 대성당은 안중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아침햇살이 내리 비치는 성당을 바라보며 걷는다. 


어제 부르고스 초입의 공장과 대로를 걷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그 도시적인 풍경을 잊게 하는 중세풍의 거리가 이른 아침 순례자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함께 걷고 있는 케이의 대학순례자 여권 때문에 부르고스 대학을 찾아가는 길이다. 시간이 일러서 나바라 대학에서처럼 학생들을 만나지는 못해도, 부르고스 대학 건물 역시 고풍스러운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다.

부르고스 대학에서 볼 일을 마친 후 까미노가 안내하는 공원으로 들어선다. 어디든 아침의 공원은 주민들에게는 산책하기 그만이다. 그러나 순례자의 입장은 다르다. 도시 한가운데 공원을 걷고 있어도 마음은 빨리 부르고스를 떠나 탁 트인 지평선을 마주하고 싶다. 산책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그들에게는 이 공원이 걸음의 끝일 테고, 나에게 오늘의 까미노는 여기서 시작되고 있다.


알베르게에서 일찍 나왔지만, 부르고스 대학을 찾느라 시간이 많이 흘렀다. 공원을 나와 거리의 작은 식당에 들어간다. 손님이라고는 케이와 나 둘 뿐인 단출한 식당이다. 따뜻한 빵, 부드러운 버터와 달콤한 잼, 주스와 커피가 식욕을 돋운다. 이 식당은 가리비 모양의 조명, 울퉁불퉁한 돌로 마감된 벽을 보니 까미노를 콘셉트로 한 인테리어다. 이제는 완전히 순례자모드가 되어 조개껍데기 모양이나 까미노의 노란 화살표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터라 이런 분위기에서 데사유노를 먹는 게 편안하기까지 하다. 따뜻한 아침식사를 하고 화장실에도 다녀오고 나서야 만반의 준비를 갖춘 느낌이다.


“까미노데산티아고”라는 그래피티만 봐도 정겹고 화살표만 봐도 고맙다. 걸음에 지친 순례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힘을 주었을까? 성당의 작은 종탑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지나가는 나그네의 마음에도 메아리친다. 남미에서 만난 대자연 앞에서 “나”라는 존재가 우주의 미물임을 깨달았다면 여기 까미노에서는 단순해지는 감정, 소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된다. 한없이 작고 초라한 나지만, 누구보다 소중한 나라는 존재에게 끝없이 말을 걸고 열심히 대답하는 나를 바라본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나를 생각한다.


점심도 생략한 채 생수 한 병만 들고 열심히 걷다 보니, 이제까지 보던 것과는 조금 달라진 모양의 까미노 표지석 뒤로 메세타(Meseta)가 펼쳐진다. 메세타는 이베리아 반도의 중심을 차지하는 고원으로 610~760m의 평균 고도를 유지하는 고위평탄면을 말한다. 까미노 중에서도 이 프랑스길에서는 부르고스에서 레온(Leon)에 이르는 230km 정도가 메세타 지역이다. 이 평탄면을 족히 일주일 이상을 걸어야 한다.

메마른 들길을 걷는다. 끝도 보이지 않는 길이 펼쳐져 있다. 언덕을 오를 때는 힘들어도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하는 기대가 있고 숲을 지날 때에는 나무 그늘이 드리우는 숲의 정취에 휘파람을 불며 걷기도 하는데, 저 멀리 지평선을 확인하며 걷는 평지는 오히려 사람을 지치게 한다.


고지대여도 평탄면이라 가야 할 길이 바로 보인다. 나무 그늘도 없는 건조한 길은 돌멩이가 뒹군다. 어제 강행군으로 너덜너덜해진 발은 걸을 때마다 아프다. 어제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고통이다. 어제까지는 다리인지 발인지, 발바닥인지 발등인지 애매한 피로한 통증이었다면 오늘은 물집 잡힌 발바닥과 발가락이 정확히 아프다.

가도 가도 보이는 것은 지평선과 밀밭이다. 이 넓은 땅에 밀이 익어 가면 볼만한 풍경이긴 하겠지만, 지루할 정도로 변함없는 풍경과 지평선 끝까지 걸어야 하는 길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난다.

아픈 발을 “끌고” 걷는다. 어깨 위의 배낭은 지나가는 바람이 앉아도 무거울 것 같다. 발이 아픈 동시에 배낭의 무게는 천근만근이 되고 메세타의 까미노는 영원처럼 길다. 발이 부르트도록 걸으면서도 눈은 풍경을 바라보며 감탄을 하고 있다. 발이 아파와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눈앞의 풍경이 아름답다고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데,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픽 나온다. 이역만리 스페인 북부의 산골에서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작은 자갈들이 알알이 박힌 길에서, 얇은 내 트레킹화는 걸을 때마다 내 발가락 하나하나의 존재를 느끼게 해준다. 인류를 구원하는 가시밭길을 걷는 것도 아닌데 나는 무슨 사명으로 고통 속에 여길 걷는가? 내 몸무게와 배낭의 무게를 지탱하고 12일을 걸어온 두 발을 내려다 보게 된다. 내 인생의 발은 아마 가족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를 지켜봐주고 걱정해 주고 보듬어 준 가족은 나를 설 수 있게 하고 걸을 수 있게 해 준 발과 같은 존재인 걸 느닷없이 여기서 깨닫는다. 살면서 한 번도 내려다보지 못한 내 발, 오늘 온종일 쳐다보고 쉴 때마다 주무르게 되는 발에게 미안해진다.

그늘도 없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물을 마시고 양말까지 벗는다. 눈 속을 걸어 출발했다는 말이 12일 만에 전설이 될 만큼 오늘의 메세타는 한여름 마냥 건조하고 덥다. 


목적지인 온타나스(Ontanas)에 다다르기 전, 산볼(Sanbol) 알베르게가 멀리 보인다. 이 알베르게는 마을에서 떨어진 외진 곳으로 유명한데, 중세에는 병원이던 곳이 알베르게로 바뀐 곳이다. 발도 아프고 목도 말라 걷기가 힘든 지경에 다다르는데 고맙게도 한참을 앞서 걷던 케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도 목이 말라서 산볼 알베르게에 가서 물을 얻어오겠다고 한다. 물병을 내주고 발을 주무르며 이십 분쯤 케이를 기다린다. 아무도 오지 않는 거대한 밀밭 옆 덤불에서 급한 용무도 해결한다. 까미노를 걸으며 아무리 물심양면으로 단련이 되었어도 노상방뇨까지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생리현상 앞에서는 누구도 어쩔 수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을 어쩌랴.


잠시 후 돌아온 케이는 냇물을 담은 물병을 들고 온다. 그도 화장실 문제를 그쪽에서 해결하고 왔다는 고백(?)도 한다. 산볼 알베르게가 아직 열지 않아 사람도 없고 폐허 같다고 한다. 당연히 식수도 없어서 고민하다가 냇물이라도 담아왔다는 거다. 목마른 자에겐 벌컥벌컥 들이켜는 냇물이 시원하기만 하다. 발 아픈 나를 위해 짐 벗어두고 잠시 다른 길을 다녀온 케이가 아니었다면 오늘은 더 힘든 날이 되었을 것이다.

오래 앉아있었더니 일어서기는 더욱 힘들다. 억지로 일어서서 한 걸음을 내딛자 드디어 발걸음을 뗄 수 있다. 케이는 다시 앞으로 멀어지고 남은 거리를 기다시피 걷는다. 길바닥의 돌멩이 하나하나가 발바닥에 다 느껴지는 것 같이 아프다. 


멀리 지평선에서는 풍력발전기가 돌아간다. 그냥 평원 같아 보여도 실상은 해발고도가 700m인 고원이라 바람이 세기도 한 것이다. 이래저래 아픈 다리를 추스르며 걷다 보니, 온타나스 마을 입구에서 케이가 다시 한 번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멈출 수가 없다. 그와 눈을 마주치면서도 발은 그냥 걸음을 내딛는다. 만일 여기서 걸음을 멈추고 쉬면 오늘은 다시 걷지 못할 것처럼 발이 많이 아프다. 케이가 웃으며 뒤따라온다.

온타나스의 알베르게엔 어제 부르고스 십자가 언덕을 넘어 갈 때 만났던 한국인이 먼저 도착해 있다. 반가운 인사를 하고 간신히 씻고 나서 알베르게 바로 앞 바(Bar)로 간다. 작은 마을이라 이곳에서 크레덴시알에 도장도 찍어주고 알베르게 숙박비도 받고 물건도 팔고 음식도 만든다. 오늘 이곳에 머무는 순례자들 말고도 온타로스를 지나 다음 마을까지 가는 순례자들도 여기에 들른다. 작은 마을의 손바닥만 한 바는 메세타를 지나온 목마른 순례자들로 바글거릴 수밖에 없다.


덥고 목말랐던 오늘, 산볼 알베르게까지 걸어가서 시원한 물을 떠다준 케이가 고마워서 여기선 비싼 축에 속하는 아이스크림을 사준다. 와이파이가 되는 이곳에서 소식도 전하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앉아 있자니 아는 얼굴들이 제법 많다. 부르고스에서 만났던 한국인 주도 이곳에서 머물고 그의 일행들도 속속 온타나스로 들어온다. 이라체 와인샘에서 만났던 독일인 두 명도 다음 마을까지 걸을 거라면서 이곳에 들러 목을 축인다.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더니 케이는 나에게 도리어 맥주를 한 잔 시켜준다. 발이 너무 아프고 갈증이 너무 심했던 오늘은 식욕도 없어서 아이스크림과 맥주 한 잔이 저녁식사가 된다.


베개를 다리 쪽에 고이고 침낭에 들어가 아이패드를 켠다. 날마다 펴들어도 졸음과 함께 사라지는, 좀체 진도가 나가지 않는 전자책 속의 조르바가 일갈한다.

“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 역시 딴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내가 아는 것 중에서 아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조르바이기 때문이오…. 조르바가 죽으면 세계 전부가 나락으로 떨어질 게요…. “

죽비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확 깨어난다. 조르바가 옳다. 내가 아는 것 중에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걷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걷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하루가 또 지나간다. 마치 까미노가 일상인 것처럼, 언제나 이렇게 걸어왔던 것처럼.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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