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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도현정]세상에서 가장 떠들썩한 법정
세상에서 가장 떠들썩한 성년후견인 지정 심리가 막이 올랐다.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넷째 여동생인 신정숙씨가 오빠의 판단력에 이상이 있는 것 같으니 그 가족들을 후견인으로 지정해달라고 낸 청구가 지난 3일 첫 심리를 진행했다. 이 청구는 사실상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의 경영권 대리전이다. 신동주 회장은 이번 청구에서 신 총괄회장의 정신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결론이 나야 후계자 인정에 대한 ‘적통성’을 보장받게 된다.

당초 법원은 강경했다. 심리는 비공개이고, 사진촬영 등 주변 취재까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신 건강 상태를 검증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고, 여태껏 다른 성년후견인 지정 심리들도 비공개였다.

그러나 법원은 신 총괄회장의 위치를 간과했다. 그의 건강 상태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재계 5위 기업의 향배를 정할 수도 있는 공식적인 일이었다. 94세의 신 총괄회장이 법정에 직접 출두한 순간부터 법원은 들썩였다.

40여분의 심리로 인한 소동은 하루를 온전히 쏟아 붓고도 여파가 남았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일련의 사건을 지켜본 소감은 참 씁쓸하다는 것이다.

지난 1일 공정위가 발표한 롯데그룹 지배구조에 따르면 총수 일가의 지분은 전체의 2.4%였다.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계열사 대표를 교체할 정도로 막강한 지배권을 행사해왔다는 신 총괄회장의 지분은 0.1%에 불과했다. 신동주 회장이 그 0.1%의 영향력에 모든 걸 걸고 있다는 게 일반인들의 상식에 어떻게 비춰질까.

일본 롯데에서 해임된 이후 신 총괄회장에게 ‘석고대죄’를 하며 용서를 받았고, 후계자라는 인정을 받아냈다는 점이 왕정 시대에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2016년이다. 기업은 전근대적인 지배구조를 털어내고 투명성을 내세워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시대다. 재계 5위 기업이 그간 416개의 순환출자와 24단계의 다단계출자를 통해 전근대적인 지배구조를 유지해왔다는 점도 기가 막히지만, 0.1% 지분을 가진 창업주의 말 한마디로 기업 총수가 바뀔 수 있다고 믿는 모습이 더 낯설다. 

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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