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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통·화합·민생…율곡의 ‘좋은 정치’를 생각하다
명종~선조 ‘17년’ 경연 상세한 기록
선조에 대한 율곡의 직언 등 생생
우리 시대를 비춰보는 소신의 정치학
이황·기대승·정철 등 100여명에 대한
신랄하면서도 엄격한 인물평도 기록


1575년 선조 즉위 8년째 되던 해 9월 어느날, 사헌부 소속 신점이 북방이 텅비어 오랑캐가 쳐들어오면 막아낼 계책이 없으니 미리 장수를 기르라고 충언한다. 이에 선조는 “조정에 큰소리치는 사람이 많으니 오랑캐 기병이 오거든 큰소리치는 사람을 시켜 막을 것이다.”고 말한다.

기득권 세력이 남아있고 경륜이 짧은 사림은 특별한 대안없이 주장만 늘어놓는데 선조는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던 것이다.

선조의 말실수에 율곡 이이는 ‘큰 소리 치는 사람’을 어떤 사람으로 지목한 건지 조목조목 따지며 임금의 잘못된 말을 지적한다.

“학자를 큰 소리나 치는 사람이라고 지목하여 복쪽 변방으로 보내려고 하시면, 훌륭한 사람은 기운이 꺽이고 못난 자는 자기에게 관직이 돌아올까봐 갓을 털며 좋아할 것입니다.”

선조는 빈틈없는 이이의 말을 싫지만 억누르지 않고 침묵으로 인정했다.


역사학자 오항녕 전주대 교수가 옮긴 ‘율곡의 경연일기’(너머북스)는 사림의 등장 등 조선시대 정치사의 중요한 시기이자 균역법, 대동법 등 사회시스템이 재편성되는 선조시대를 사상가이자 정치가인 율곡 이이의 눈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경연일기’는 율곡이 30세 때인 1565년(명종20) 7월에 시작해 46세때인 1581년(선조 14) 11월에 끝나는 약 17년간의 기록이다. 율곡은 홍문관 관원으로서 임금과 신하가 함께 경전을 읽고 논하는 소통의 자리였던 경연에 참석하고 사간원ㆍ사헌부 관원으로서 언관이자 ‘일기’를 작성하는 사관의 직무에 대한 책임감으로 이 일기를 기록했다.

‘경연일기’는 시종일관 ’좋은 정치‘를 직간하는 율곡과 선조의 ‘침묵’이란 긴장관계가 이어진다.

율곡의 화두는 사림정치, 즉 도덕정치를 통해 어떻게 사회의 삶을 나아지게 할 것인가였다. 실제 경연일기는 경전 공부보다 국가정책, 인재등용, 올바른 정치적 판단 등에 대한 직언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선조는 번번히 옛 규례를 고치기 어렵다는 핑계를 대거나 “나는 덕이 없는데다 다스리기도 어려운 때를 만나 큰 일을 하기 어렵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일을 하길 망설인다.

이이는 이런 선조의 태도를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좋은 정치가 이뤄지지 못하는 것은 공부가 부족하고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는 점을 적시하고 스스로 능력이 부족하다면 능력있는 신하를 기용해 일을 맡기면 될 것이라고 채근한다. 또 경연에 참여해 경전을 공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의견을 자주 경연에서 펼치지만 선조는 침묵으로 대신하면서 이이는 실망하기 시작한다. 침묵은 신하와 임금이 얼굴을 맞대고 정치를 논하는 소통과 교류를 막는 신뢰정치의 적으로 본 것이다. 이이는 요순 임금과 세종의 예를 들며, 임금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주고 받더라도 아랫사람의 마음이 통하지 못할까 걱정인데 하물며 말없이 저지할 때는 어떠하겠냐며 거듭 직언한다. 


율곡의 경연일기에 나타나는 정치상황은 겉모양만 다를 뿐 오늘과 다르지 않다. 좋은 정치를 위해 끊임없이 임금과 동료를 다그친 이이의 소통의 정치학은 울림이 크다.

경연일기에는 임금을 바르게 인도해야할 신하의 도리에 대해서도 이이의 단호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떠받드는 것만 하는 것을 공경이라 생각하지 말고, 좋은 일을 실행하도록 간하는 것으로 공손을 삼아야 한다”며, 신하들이 흉년을 당해 민생이 도탄에 빠진 때에 민생을 구제하기는 커녕 임금의 태를 옮겨 민력을 고갈시켰다고 한탄한다. 

책에는 100여명에 가까운 유명한 인사들이 등장하는데, 율곡은 이들의 성품과 학식, 재물관 등을 살펴 정곡을 찌르는 신랄한 인물평을 넣었다. 가령 퇴계 이황의 경우, 조정의 부름에 끝내 응하지 않은 것에는 아쉬운 마음이 있으나 그의 선비로서의 처신과 학문의 깊이는 높이 평가했다. 또 기대승에 대해선 “학문은 변론이 박식하고 원대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실천하는 공부가 없었다. 또 남을 이기기를 좋아하는 병통이 있어 남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는 까닭에 지조 있는 선비는 어울리지 않았고 아첨하는 사람이 많이 따랐다.”고 했다.

율곡은 나랏일을 맡은 관리라면 자신의 직분에 맞게 해야 할 일을 에두르지 않고 바로 해야 하는 것을 중요한 덕목으로 봤다. 또 상대를 포용할 수 있는 아량도 중요하게 여겼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율곡은 동과 서로 갈라진 두 세력을 합치시키려고 노력했다.

서인과 동인을 대표하는 정철과 이발에게 “자네들 두 사람이 화합하여 한 마음으로 조화시키면 사림이 무사할 것이다”며 서로 교류할 것을 꾀했다. 그러나 이이는 되레 오해만 사고 두 세력의 골은 더 깊어진다.

율곡의 경연일기에 나타나는 정치상황은 겉모양만 다를 뿐 오늘과 다르지 않다.좋은 정치를 위해 끊임없이 임금과 동료를 다그친 이이의 소통의 정치학은 울림이 크다. 이 책은 오항녕 교수가 동료학자들과 함께 몰두하고 있는 ‘율곡전서’ 정본화의 첫 결실로 쉽고 정확한 번역과 주석 외에 저자의 균형잡힌 해설이 더해져 이해를 돕는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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