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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 vs 2016…‘날 보러와요’ 101가지 재미
‘살인의 추억’ 원작 연극…20년 세월 가교삼아 OB팀·YB팀 나눠 ‘2色 공연’… 1인 3역 용의자 등 깨알같은 볼거리 풍성


연극 ‘날 보러와요’를 보는 재미는 101가지쯤 된다.

1996년 2월 극단 연우무대에 의해 처음으로 소극장(문예회관소극장, 현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올려진지 올해로 20년. 그동안 15차례 공연됐고, 올해가 16번째다.

초연 멤버들을 포함해 지난 20년동안 함께 해 왔던 배우들이 OB와 YB 2개 드림팀으로 나뉘어 2색 공연을 펼치는 것이 가장 큰 관람의 묘미겠으나, 2003년 4월 개봉했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과 출연배우, 스토리, 대사, 무대 등을 비교해보는 것도 여전히 즐겁다.

물론 20년 전 초연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겐 무대 위에서 나이 들어가는 그 때 그 배우들을 다시 만나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게다가 현재 tvN 드라마 ‘시그널’이 연극, 영화의 모티브가 됐던 경기남부연쇄살인사건(1986년부터 1991년까지 화성시 태안읍 일대에서 10명의 여성이 차례로 살해된 미해결 사건)을 재삼 다루고 있으니, 두 장르가 실화를 풀어가는 방식을 비교해 보는 것도 쏠쏠하겠다.

오늘의 쌀롱. 연극 ‘날 보러와요’의 101가지 재미를 다섯가지로 압축해본다. 연출가와 배우들의 육성을 지상으로 함께 전한다. 

사진 왼쪽은 연극‘ 날 보러와요’ 에서 연기하는 OB팀‘ 김형사’ 권해효와‘ 박형사’ 유연수, 오른쪽은 YB팀 배우들. [사진제공=프로스랩]

1. 하나의 사건, 두 가지 버전의 연극

1월 22일부터 2월 21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날 보러와요’는 버전이 두 개다. 하나는 1996년 초연부터 2006년 4월까지 10회 연출을 맡았던 김광림과 당시 배우들로 구성된 OB팀, 또 하나는 2006년 7월부터 2014년까지 5회 연출을 맡았던 변정주와 이 시기 배우들로 구성된 YB팀이다.

OB는 이대연(김반장), 권해효(김형사), 유연수(박형사), 김뢰하(조형사), 류태호(용의자), 공상아(미스김), 이항나(박기자), 황석정(남씨부인), 차순배(김우철, 사내)로, YB는 손종학(김반장), 김준원(김형사), 김대종(박형사), 이원재(조형사), 이현철(용의자), 임소라(미스김), 우미화(박기자), 이봉련(남씨부인), 양택호(김우철, 사내)로 꾸려졌다.

실제 있었던 미제살인사건을 놓고 두 라인업 모두 원작에 충실한 무대를 펼치지만, 조명, 음악 선곡 등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

“대본의 본질에 가까운 공연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그렇지만 스텝들은 고생을 많이 했죠. 무대는 하나고 스태프도 같은데 음향 디자인도 2개, 조명 디자인도 2개니까요. OB와 YB는 에너지와 리듬이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죠. 두 버전이 굉장히 다른 컬러를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변정주 연출>

2. 무대에서 나이드는 그 때 그 배우들

‘날 보러와요’의 출연 배우들은 20년 간 여러 캐릭터의 옷을 갈아 입었다. ‘폭력형사’ 조형사 김뢰하는 초연 때는 ‘서울대 출신 엘리트 형사’인 김형사였다. 권해효는 4회 공연부터 극에 합류, 이번 공연까지 6번째 김형사 역이다.

육감으로 수사하는 ‘시골 형사’ 박형사 역에는 초연부터 10년동안 유연수였다. 용의자 역할 역시 10년간 변함없이 류태호가 맡아 왔다. 최근 가장 핫한 ‘씬스틸러’ 배우로 뒤늦게 주목받고 있는 배우 황석정은 2003년 공연에서 박기자, 남씨부인 역을 맡은 바 있다.

이 밖에도 고(故) 박광정, 송영창, 정은표, 박노식, 송새벽, 문정희 등 무대와 공중파를 오가는 많은 연기파 배우들이 이 공연을 거쳤다.

“현재 OB팀 평균연령이 52세예요. 김광림 연출 전화받고 처음엔 당황했어요. 30대에 했던 역할을 50대에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어린 시절 해외 공연단을 보며 부러웠던 걸 떠올렸죠. 무대에서 함께 나이 들어가는 배우들 모습 말예요. 그래서 용기를 냈습니다.” <권해효>

3.‘살인의 추억’배우들이 ‘날 보러와요’에 있었네

‘살인의 추억’은 원작 ‘날 보러와요’를 충실하게, 혹은 더욱 정교하게 재연한 영화다. 김형사 김상경도, 박형사 송강호도, 조형사 김뢰하도 모두 원작에 충실한 캐릭터들이다. 박형사가 “범인은 무모증 환자”라며 ‘육감 수사’를 펼치는 대목도, 김형사가 용의자에게 “비오던 날 밤 신청곡 끝나고 DJ가 뭐라고 했지?”라고 추궁하는 대목도 모두 원작에서 가져왔다.

김뢰하는 연극과 영화에서 모두 조형사 역할을 맡았다. 권총집 달린 벨트에 야전상의, 군화까지 의상도 그대로다. 단 연극에서는 영화보다 ‘단순무식 폭력 형사’의 표현 수위가 덜 하다.

연극에서 3명의 용의자 역할의 혼자 해 내는 류태호는 영화에서 여자 속옷에 집착하는 ‘변태’ 용의자로 짧게 등장했지만 강렬한 연기로 대중에 각인됐다. 영화에서 “향숙이”로 유명해진 박노식은 2003년 9회 공연에서 김우철로 등장했었다.

영화와 연극이 다른 점도 있다. 비오는 날 살인사건이 벌어지기 전 라디오 방송국에 보내지는 신청곡이 영화에서는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였지만, 원작에서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이다. 또 음악에서 단서를 찾아내는 건 원래 김형사지만 영화에선 여경으로 바뀌었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명대사는 영화에서 만들어졌다.

4. 3명의 용의자는 모두 단 한 사람이었다!

극 중 용의자는 3명이다. 정신이상자에 관음증 환자인 이영철, 꿈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남현태, 사건이 있던 날마다 라디오에 신청곡을 보낸 정인규.

1막이 끝나면 혼란스러워진다. 용의자 3명을 연기한 배우가 각각 누구였는지.

모두 한 배우다. 류태호(이현철)는 용의자 3명의 옷을 갈아 입으며 감쪽같이 관객을 속인다. 아니 관객은 물론 극 중 형사들도 속인다. 영구 미제로 남은 사건에 대한 연극적 암시다.

“2000년대 초 조연출로 공연에 참여했었는데 당시 대본에 명시돼 있었어요. ‘세 명의 용의자를 한 명의 배우가 하고 형사들은 알아채지 못한다’. 아마도 범인이 누구인지 구별하지 못한 형사들에 대한 풍자가 아니었다 생각합니다.” <변정주>

5. 1996 vs 2016…김광림 팀 vs 변정주 팀

초연과 재연, OB팀과 YB팀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원작이 시간을 거듭하며 조금씩 완성도를 높여가는 중이다. 두 팀의 공연을 굳이 비교하자면 노련함과 친숙함 면에서 OB팀에 점수가 후하다.

“컴퓨터를 뒤져보니 버전이 한 열개쯤 되더라고요. 그동안 공연하면서 배우들이 헛점을 찾아내고, 고치고 해서 온 게 지금이죠. 이제 배우들의 연기력은 향상됐고, 호흡도 잘 맞고, 대본의 빈 구석도 잘 채워진, 초연보다 더 원숙해진 공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억울한 죽음, 희생이 20년이 지나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게 가슴이 아픕니다.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기본적으론 국가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범인을 잡고 국가시스템 문제를 드러내는 건 부차적인 거고요. 진실은 찾기 어렵다는 것, 그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김광림 연출>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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