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의 법안 가결률은 역대 최저 수치다. 18대 국회에서는 1만3913건이 발의돼 44.4%인 6178건이 통과됐고, 17대 국회 때는 7489건 중 50.4%인 3775건이 가결됐다. 16대 이전에는 법안 가결률이 60~80%에 달했다. 이젠 ‘식물국회’를 넘어 ‘화석국회’로 전락하고 있다. 이 와중에 대통령은 국회의원 탓을, 야당은 여당을, 여당을 야당을 서로 비난하고 책임을 전가하기 급급하다. 국민들의 눈총이 따갑다. 무보수 명예직, 무노동 무임금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일까? 여러 사람이 함께 물건을 옮기고 있는데 왠지 자기만 더 힘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공동의 책임 속에 자신을 숨기고 누군가가 해주기를 기대하며 의존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혼자 일을 할 때보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할 때 자신의 노력을 게을리하는 현상을 사회적 태만(social loafing)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참가자들에게 혼자서 소리를 지르며 손벽을 치게 하도록 하고 그룹을 이루어 같이 하도록 요청했다. 참가자들에게 가능한 한 큰소리를 내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사회적 태만의 현상이 나타났다. 혼자일 때보다 인원이 늘어날수록 박수와 함성은 점차 줄어들었다. 이러한 실험들은 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루면 필연적으로 무임승차가 발생하며, 개개인의 노력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9대 국회가 화석국회로 전락한 이유는 이러한 사회적 태만과 무인승차의 영향이 크다.
이런 현상은 조직 내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드라마 ‘미생’에서도 주인공 장그래가 팀 프로젝트 중 자신의 파트너인 한석율이 홀연히 출장을 떠나자 분노하는 장면이 나온다. 혼자 모든 부분을 도맡아 일을 진행하던 장그래는 좀 더 섹시하게 아이템을 구성하라는 한석율의 적반하장에 폭발하고야 만다. 결국 그는 한석율을 제외하고 단독으로 프로젝트 작업을 진행한다. 어딜 가나 피곤함을 유발하는 한석율 같은 인물, 어딘가 모르게 친숙함이 느껴진다.
한석률 같은 인물의 특성은 ‘무임승차족’이다. 영어로는 프리라이더(free-rider)라고 한다. 두둑한 월급을 받으면서도 일을 전혀 하지 않는 상사, 남의 업적을 가로채는 동료…. 어느 조직에나 있다.
2014년 온라인 취업 포털 사람인이 기업 750개사를 대상으로 “회사에 무임승차를 하는 직원이 있습니까?”라고 물은 결과, 69.7%가 ‘있다’라고 응답했다. 이들이 회사에 끼친 피해로는 직원들의 업무 사기 저하(66.9%, 복수응답)를 첫 번째로 꼽았다. 뒤이어 업무 성과 및 효율성 하락(56.2%), 조직 성장 저해(49.9%), 직원들 간 갈등 조장(49.1%) 순으로 답했다. 이를 금전으로 환산하면 무임승차 직원 1명당 연간 2천890만원의 손해를 끼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렇게 무임승차는 전체적인 조직의 분위기를 흐리고 성실한 근로자들의 의욕과 사기를 꺾어 조직을 병들게 한다. 소속된 팀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또 팀 내에서 성과가 일정한 수준에 도달했고 불안요소가 보이지 않을 때 팀원 개개인의 참여도는 약해진다. 팀의 규모가 스무 명이든 백 명이든 인원수는 더 이상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태만의 정도가 최고조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과 많이 닮지 않았는가?
250만 대구광역시 인구와 맞먹는 회사가 있다. 바로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손꼽히는 월마트다. 27개국에 직원 수 220만 명인 공룡기업 월마트의 직원이라면 ‘나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하는 무임승차족이 많이 있을 법하다. 월마트는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수없이 많은 제도와 상징물을 만드는데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중 한 가지가 월마트 본사 로비에 있는 커다란 전광판이다. 그 전광판에는 월마트의 주가가 실시간 표시되며, 그 바로 밑에 다음의 문구가 적혀있다. “내일 우리 회사의 주가는 여러분 손에 달려 있습니다.” 출근길에 이 문장을 보는 직원들의 마음은 어떨까?
국회의원들은 알아야 한다.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 월마트 직원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무임승차를 하게 되면 국민 모두가 반드시 피해를 보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