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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서울시민이다] 11년 동안의 봉사... 나를 찾는 과정

마들사회복지관 어르신 국배달 봉사 11년. 노원사랑봉사회 사무국장, 상계 6,7동 주민복지 협의회 위원장, 나눔이웃사업 반장. 마을 지원센터 센터장
  

노원구는 작년에 마을 지원센터를 세우고 센터장을 선발하였다. 노원마을 지원센터는 올 3월 공릉동에 소재한 건물에 둥지를 틀 예정이며 센터장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마을 업무가 시작된다. 그 중심 역할을 할 센터장인 김소라 주무관은 노원사랑복지회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청소와 국 배달 봉사를 11년째 해온 봉사의 달인이다. 뿐만 아니라 복지관 나눔이웃사업 반장으로 활동하며 ‘그린벨트’와 ‘우산병원’ ‘타로나무’를 기획 실행하였고 녹색 어머니회와 학부모 회장을 거쳐 노원 혁신교육 모임에서 교육복지 분과장을 맡아왔다. 그리고 작년 노원마을지원센터에 ‘더불어 숲을 이루자 ’프로젝트를 제출하여 공무원이 되었다. 현재 ‘마을 지원활동가 양성’을 시작으로 ‘더불어 숲을 이루자’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마을지원활동가 어린나무 과정 소개 사진-양영숙마을기자

 ‘마을지원활동가 양성과정’은 ‘더불어 숲을 이루자’는 주제로 3개월간 총 10강이 진행되며 마을 활동을 막 시작하는 ‘어린나무’들이 ‘자람나무’를 거쳐 ‘숲’이 되도록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김소라 주무관은 지원자 선발부터 프로그램 진행, 강사 섭외 그리고 마을 지원활동가 발굴까지 이번 교육의 전반적은 책임과 진행을 맡았다. 사실 1년 전만 해도 마을 현장에서 발로 뛰는 활동가였으며 11년 전에는 우리와 같은 어린나무였을 텐데 이제는 마을활동가를 양성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린나무인 마을 활동가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동체 안에서 갈등 해결에 도움을 주고 숲을 이루는 큰 나무가 될 수 있도록 아낌없는 독려와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 이것이 김소라 주무관이 많은 마을 지원활동가들에게 롤모델 되고 있는 이유이다.

우산병원 행사에서

김소라 주무관에게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물어보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종암동 꼭대기 달동네에 외할머니랑 단둘이 살았어요. 화장실 한 개에 여섯 가구가 모여 사는 월세방이죠. 밥을 제대로 해 먹을 부엌은 없고 싱크대 한 개가 전 부인 집에서 10년을 살았어요. 할머니는 남의 집 이불 빨래를 하시며 나를 키우셨는데 심장병이 있으셔서 3개월마다 입원을 하셨죠. 1년에 서너 번 장기 입원을 할 때면 병원 밥 먹고 학교를 다녔어요. 

그런 형편이다 보니. 중학교 때 친구 따라 대원외고에 시험을 쳐서 합격했지만 한 달 8만 원인 등록금을 낼 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울면서 학교를 나왔던 적이 있어요. 그러다 대학 2학년 때인 1993년 뜻밖의 일이 있었는데, 공공 근로를 하시던 할머니께서 구의 도움으로 중계 9단지 노원 임대아파트로 들어가게 된 거예요. 종암동 집은 변변한 샤워시설이 없어 샤워는커녕 영하 18도에도 집 밖에서 머리를 감아야 했는데 우리에게 이런 훌륭한 저택을 주시다니 너무 고맙고 감격스러웠어요. ”나라가 국민에게 이런 혜택을 주다는게 믿기지 않았고 나도 성공하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해서 조금이라도 그 은혜를 갚아야겠다”라고 마음 먹게 되었고 그것이 마을활동과 봉사를 하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나눔사업-사랑의 국수나눔터

 
할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여유가 없었어요. 신혼을 반지하에서 시작해서 연년생을 낳았죠. 차상위 지원을 받아 아이 둘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에서 아이들 수학과외를 하고 저녁엔 할머니를 간호했어요.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3년 전에 반신불수셔서 계속 수발을 해야 했어요.
봉사를 하게 된 것은 몸이 안 좋아져서 아파트 지하 에어로빅 장으로 운동을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노원사랑복지회 회장을 만나게 됐어요. 그 후 청소를 따라다니게 되었고 낮에 봉사하고 밤엔 할머니를 돌보게 됐죠. 노인정에 애들을 데리고 다니며 노원 아파트 들을 돌다 보니 노원구를 손바닥 보듯 알게 됐어요. 

봉사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기금 만들려고 떡을 만들어 팔고 과외하면서 교통비, 식사비를 충당했죠. 노원 사랑봉사회는 언제부턴가 비영리 사회단체가 되어 구의 보조금을 받기 시작했고 이후 독거노인 분들을 위한 국을 끊였어요. 처음엔 공간이 없어서 자그마한 저의 집에서 200인분 국을 끊였어요. 어르신들이 희망을 놓지 않고 “오늘 하루도 살아야지”하는 마음을 가지시길 바랐죠.

 

타로나무행사

 
모든 삶에 내가 조금 손해 보면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돈은 많으면 좋지만 돈이 없어도 사람이 있으면 되지 않겠어요?
오전과 주말에 봉사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집안일을 못할 때가 많았어요. 그래서 우리 신랑은 내가 봉사 가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제가 운동보다 봉사가 좋다니까 집안일 못하는 나를 위해 같이 해주고 참아주고 묵인해 주었어요.
그러다 작년에 신랑이 그러더군요. “나는 당신이 너는 무서워. 너무 욕심이 없어. 동대표 나눔 이웃 대표 다 버리고 나오지 않았냐? 일은 혼자 다하고 인정도 못 받는 직함만 여러 개인 당신은 명예로운 사람이라서 나는 힘들다. 봉사만 11년째 이젠 집을 나가달라“하더라고요.

저는 신랑을 너무 사랑해요. 아이들은 20살이 되면 내보내고 신랑과 함께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그래서 작년에 마을 지원센터를 지원하게 됐어요. 공무원이 겸직은 불가하여 해오던 모든 일을 접고 지금은 마을지원센터에 모든 것을 쏟아내고 있어요. 센터가 자리매김을 하게 되면 양성된 마을지원활동가를 통해 상담, 컨설팅, 심사의 일을 맡기고 서울시에서 인정하는 마을지원활동가로 키워갈 생각이에요. 우리 사회엔 리더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활동가들의 경제가 소진되고 생산이 안 되는 것을 해결하고 싶어요. 재능을 팔고 전시를 통해 순환구조를 만들어 가려 해요.“

김소라 주무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월급 없는 책임만 있는 자리에서 월급 받는 공무원으로 변화된 것은 나름의 속 사정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많은 활동가들에게 물질적 정신적 에너지를 지원코자 함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마을지원활동가 수료식에서 사진-영영숙마을기자

 
내년 화두는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로 ‘마을과 복지가 만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에 대한 김소라 주무관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노원이 마을과 복지가 만나는 시기에 내가 껴있는 것 같아요. 모두가 잘 사는 복지를 위해서는 마을은 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마을과 복지가 만나 숲을 이루게 하는 조경사입니다. 이미 자란 나무는 배치를 잘하고 큰 나무는 커다란 울타리를 만들고 어린 나무들은 잘 자라도록 해주고 그래서 마을이 숲을 이루도록 할 거예요. 그리고 복지가 나무와 나무를 연결해주고 서로의 경계를 허물어 주게 될 겁니다. 노원만의 특성이 있는 숲을 만들어 가야죠.”
제정자립도가 서울에서 가장 낮은 구이지만 아이들이 행복하고 이웃과 정을 나누면서 건강한 삶을 살기를 희망하는 노원구의 모습을 김소라 주무관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나는서울시민이다=양영숙 마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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