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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수 기자의 상수동이야기21>재개발 속 꿋꿋한 맛집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지인과 상수동에서 만날 때마다 제니스카페가 그립다. 요즘 상수동은 어제오늘이 다르다. 제니스카페만 떠난 게 아니다. 악토버도 사라졌다. 이스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천연발효종만 이용해 빵을 만들었던, 그곳. 어제 갔던 식당이 오늘 온데간데 사라진 게 상수동엔 이미 흔하디 흔하다. 오밀조밀한 가게는 점차 사라지고 대형 체인점, 이자카야가 대신한다.

상수동이 주목받으면서 집값만 미친 듯이 뛰는 게 아니다. 상수동 특유의 향기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과거지향적인 성격 탓도 있지만, 추억이 사라지는 건 참 서글프다. 거리가 변하고 건물이 커지며 주인이 바뀐다. 새로움에 기대보다는 사라짐에 대한 아쉬움이 훨씬 깊다. 


그래도 꿋꿋하게 버티는 집들이 있다. 최근 오랜만에 대복식당을 찾았다. 상수역 1번 출구 바로 옆, 그야말로 핫플레이스다. 닭갈비에 닭볶음탕, 닭백숙, 그야말로 닭만 있다. 맛은 여전하다. 번잡한 도로를 뒤로한 골목길의 운치도 그대로다. 이 좁은 골목도 하나둘씩 새로운 가게가 들어섰지만, 그래도 대복식당은 계속 그 자리다. 적당히 매콤하면서도 착한 가격. 낡은 벽지의 인테리어도 반갑다.

상수역에서 강변북로 방향으로 조금 걷다 보면 길가에 또바기치킨이 있다. 이 가게 역시 굳건하다. 배달이 안 되는 게 치명적인 단점이지만, 맛과 가격으로 승부한다. 주문을 넣는 즉시 조리하기 때문에 기다림은 필수. 포장을 하더라도 콜라 같은 건 없다. 9000원이란 가격의 승부수다.

또바기치킨을 가기 전엔 오랜 토박이, 달고나가 자리잡고 있다. 순박한 이름과 달리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좁은 테이블에 긴 줄이 한결같은 달고나의 풍경. 최근 확장공사를 했지만, 여전히 넉넉하진 않다. 브레이크타임과 휴일을 철저하게 지키니 방문 전 개점시간을 꼭 확인해야 한다. 눈에 띌 간판도 없으니 유심히 살펴보시길. 


상수역에서 합정역으로 향하는 길가엔 상수동의 대표 빵집 쿄베이커리 옆으로 ‘여기가거기’가 보인다. 막걸리 한잔 생각나게 하는 풍경이 반갑다. 한겨울엔 말만 들어도 춥겠지만, 콩국수가 별미다. 즉석에서 콩 국물을 내서 만들어주는 콩국수는 어머니 냄새가 난다. 상수동에서 좀처럼 느끼기 힘든, 추억의 손맛이다.

여기가거기를 가기 전에 있는 삭 역시 오랜 기간 상수동에서 자리잡았다. 튀김이 메인이다. 고추튀김, 김말이, 오징어 등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떡볶이나 순대 등 분식점의 대표 메뉴도 갖춰놓고 있으니 간단한 한 끼가 생각할 때 떠오르는 집이다.

그밖에도 곳곳엔 상수동의 터줏대감이 있다. 경쟁력 있는 맛이 생존비결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겨우겨우 버티는 집도 많다. 화려한 도시는 항상 그림자를 품고 산다. 건물이 높아질수록 그림자도 길어진다. 화려함과 대비돼 그늘진 토박이들은 결국 버티다못해 하나둘씩 도시를 떠난다.

그래서 여전히 상수동을 지키고 있는 이들이 더욱 반갑다. 새해에도, 그 다음 새해에도 꼭 다시 만날 수 있길.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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