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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서울시민이다] 마을 공론장 만들기 비법 전수

마을 활동을 경험해본 주민이라면 ‘공론장’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뜻이나 기능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공론장(public sphere ; 공공영역, 공공권역)의 사전적 정의는 ‘사회구성원간의 합리적 토론을 통해서 사회구성원들의 보편적 이익에 관한 사회적 합의(social consensus)를 도출하는 담론적 공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설명만 들어서는 감이 잘 오지 않는다. 마을 경험이 많은 활동가는 간단히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대화 그 자체가 공론장이다. 또 이야기를 통해 어떤 의견을 낸다면 그것이 공론장의 기능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직접 들어보자. 낙후된 동네 공원을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바꾸기 위한 이야기장이 그것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어떤 마을의 의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론장을 열었다고 해도 하나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마을, 내일을 여는 포럼>에서 이런 공론장에 대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을 모아 교류모임을 가졌다. 이날 모임에서는 공간이 필요 없는 도서관, 똑똑 도서관 관장으로 유명한 김승수 관장이 사회를 맡았다.

▲ 똑똑도서관 김승수 관장을 비롯한 11명의 패널들이 모여 공론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야기는 참석자들의 간단한 자기소개로 시작되었다. 구청과 시청에서 일하는 공무원부터 풀뿌리단체 회원, 공동육아를 하는 주민, 인권모임 및 마을활동을 하고 있는 시니어, 교직원, 중간지원조직 근무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론장의 필요성을 느낀 주민들이 참여했다.

추운 날씨에 아직 몸이 덜 풀렸는지 <마을, 공론장> 만들기라는 모임명에 부담을 느꼈는지 자기소개 후 선뜻 나서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김승수 관장이 노련하게 편안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오늘 저희가 이야기할 것은 대단한 결과를 뽑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결과에 승부를 걸 필요가 전혀 없어요.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어디서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이런 이야기에 관심을 갖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기 위해 모인 겁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공론이 뜻을 갖기 위해서는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 과정이 미흡한 부분이 있죠. 주민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본 경험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화두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자기 성찰의 의미를 줄 수 있을까 고민해 봤으면 합니다.”

잠시 적막이 흐른 뒤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주민을 만나는 것이나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좋아요. 어떻게 하면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지 자유롭게 이야기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는 마을 일, 동네 일에 관심 가지게 하기를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공론장이라는 거창한 담론에서 옆집에 사는 주민의 이야기, 마을 일, 동네 일로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자 이야기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초반 이야기의 화두는 동 대표, 혹은 주민자치위원회와의 갈등이었다. 마을 활동을 하다보면 뜻이 맞는 주민과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고 그때 시너지가 발생하게 된다.

그 시너지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게 되고 자연스레 마을활동의 범위가 넓어지게 된다. 공동육아에 참여하고 있는 한 패널은 주민공동시설인 작은 도서관과 게스트하우스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동대표 회의단과의 마찰로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도서관은 주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강좌라든지 아이들 모임이라든지 동대표 회장의 허락 아래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단체에서 저희들의 대표성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의 고민은 계속 됐다.

“도서관은 조용히 책을 읽는 곳이지 왜 강좌를 하고 모임을 갖느냐고 했습니다. 원래 자원봉사로 운영이 되었으나 지금은 유급으로 시니어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회원들이 시간표를 짜서 자원봉사를 하며 운영하겠다고 했는데, 전유 공간이 될 수 없다며 부정당했습니다. 이런 동대표 회의단의 제재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입니다.”

한 때 아파트 동대표였던 김승수 관장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해 주었다.

“저도 아파트 대표를 경험했습니다. 지금 서울과 경기도의 70%가량이 아파트로 변해가고 있다고 해요. 지금 말씀처럼 아파트 공간이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복합센터가 된다면 외부에 나가서 활동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험하고 본 것을 안다고, 도서관이 실제로 어떤 기능을 하는 공간인가 제가 직접 찾아봤었거든요. 그런데 도서관은 책만 보는 기관은 아니었습니다.”

“도서관은 복합공간이고 문화공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책만 보는 것이죠. 분석을 해보니까 도서관은 어른들이 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느낌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공론장이 되고 문화적인 공간이 되려면 전체 세대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임에 참여한 패널들은 제각기 처한 환경은 달랐지만 대체적으로 기존에 활동하고 있던 단체와의 갈등이 가장 표면에서 느껴지는 어려움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털어 놓자 각자가 가지고 있는 해법들을 꺼내 놓으며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다.

“사람을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됩니다. 주민의 입장에서 주민과 연대해서 공론을 만들어야 합니다. 공간 활용에 대한 주민들의 알 권리를 준 다음에 선택권을 줘야 장기적인 만남의 관계로 갈 수 있는 힘이 만들어집니다. 대표가 바뀌었다고 합의가 된다는 것은 국회시스템입니다. 동대표나 부녀회장을 만나면 되는 것입니다.”

“마을 공동체를 알고 활동하는 사람의 생각이 달라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을공동체가 시작된 지 3년 밖에 안 되었습니다. 주민자치위원과 부녀회는 오랜 시간을 해왔고 그걸 인정해야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다가서고 ‘제가 먼저 할게요’하지 않으면 관계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주민자치위원회나 기존 단체들은 신생 단체인 마을공동체에 대해서 ‘뭐야?’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저희는 부녀회와 주민자치위원회가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엄마들이 모여서 많은 것을 해도 그분들의 노동력을 따라잡을 수 없거든요. 그래서 행사를 하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부터 시작합니다.“

“자치회의 경우 아직은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입니다. 옆집에 살아서 서로 관계하는 단계가 아니면 껄끄러운 것처럼 주민자치위원회도 그럴 것이라는 속단은 금물입니다. 먼저 마음을 여는 게 중요합니다. 저희와 생각은 다르지만 저희보다 훌륭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존중하는 자세가 더 있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합니다. 주민자치위원회도 기능을 잘 하면 좋은 거고, 마을공동체가 그곳을 뺏자는 것이 아니잖아요. 각자가 시야를 넓혀 가는데, 어떻게 하면 같이 할 수 있는 공론으로 이끌 수 있을까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육아공동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너무 떠들어서 주택가로 쫓겨났습니다. 한동안 공원에서 텐트를 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구청 회의에 찾아가 구청장과 동장들에게 불쌍하다고 어필을 했습니다. 관에 어필하면 조금은 신경을 써줍니다. 아시는 분 연줄로 교회 식당에 자리를 한켠 마련해 주었습니다. 저희도 새마을 부녀회와 조금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판매를 하면 일부러 구매했습니다. 그러면 친분이 생기잖아요. 고마워하시기도 하고. 그러자 저희가 주민센터에 자리 잡는 것을 방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관심은 자기인식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관심은 공동체가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체들 사이에는 중간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지향점과 목적은 같잖아요. 그것에 맞는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신뢰가 쌓이면 멋진 판으로 간다고 생각합니다. 멤버가 늘어나며 책임이 늘어나고 권한이 강화될 것입니다. 컨설팅을 가보면 내 것을 놓칠까봐 조바심내는 분들이 계십니다. 또, 자신들이 한 것을 인정받으려는 분들이 계십니다. 다른 단체를 해체하려는 것이 아닌데 아직 이해가 부족한 게 있습니다. 경험한 사람들은 이 과정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각자가 신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풀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크게 잡으면 안 됩니다. 활동가들이 대표성을 띠면, 중간지원 조직이 흐려지는 이유가, 너무 커져서 말하기도 어렵고 일을 시키기도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공론장, 거실에서, 집안에서 할 수 있는 공론장을 엮는 것을 중간지원 조직이나 주민이 아니라 공무원들이 크게 한번 만드는 자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순수하게 초대해서 서로 만났을 때 시너지가 나올 수 있는 공동체 이슈가 있어야만이 공론장 형성이 잘 될 것 같습니다. 주민이 하기에는 아직 부담스러운 것 같습니다. 각자가 자기 공론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면서 존중하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작은 공론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열띤 토론은 저녁까지 이어졌고 감성마을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네트워크 교류를 갖는 시간으로 마무리되었다. 공론장의 진정한 힘은 공론에서 나오는 어떤 결정이나 결과가 아닌 의견을 나누는 그 토론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 자연스레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고 혼자만 떠드는 사람으로 비쳐질 수 있다. 마을이 추구해야하는 지점은 혼자가 아닌 공동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이날 모임에서 가진 공론장 만들기 비법은 다름 아닌 공론장이 무엇인지 경험하고 그 경험을 지역에 돌아가서 나누는 것이었다.

[나는서울시민이다=안중훈 마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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