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나는서울시민이다] 장수 마을의 비밀
주민주도로 마을기금 모으고 주거환경 개선해 활력 되찾아

장수마을이라고 하면 흔히 인구 10만 명당 100세 이상이 되는 노인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을 일컫는다. 그런데 서울에도 장수마을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한국 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에서 뽑은 한국의 대표적인 장수마을은 제주도, 전북 순창, 전남 담양·함평·곡성·보성·구례, 경북 예천·상주, 경남 거창 등 13곳이다. 이들 마을의 특성을 살펴보면 대부분 해발 300~400m 되는 산간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맑은 공기와 깨끗한 지하수가 나오는 쾌적한 농촌지역이다.

이쯤 되면 아무리 병원이 많고 운동시설이 많은 서울이라도 머릿속에 쉽사리 장수마을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2015년 12월 15일, 서울시 마을과에서 준비한 마을탐방을 다녀왔다.

장수마을은 성북구 삼선동에 위치한, 한양도성과 낙산공원에 둘러싸인 구릉지대에 켜켜이 붙어있는 집들을 일컫는 이름이다. 탐방 가이드를 맡아준 장수마을 주민협의회 배정학 부대표는 서울의 60년대 풍경을 떠올리며 장수마을의 탄생배경을 설명해 주었다.

60년대 서울은 일자리를 찾아 농촌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하지만 갓 농촌에서 온 사람들이 무슨 돈이 있었겠는가? 사람들은 자연스레 만만한 땅(집값이 싼)인 성곽주변과 청계천으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 결과 구릉지대에 건물들이 촘촘히 세워지고 지금의 장수마을 초석이 되었다.

하지만 도시가 현대화 되면서 장수마을도 기존의 좁고 낙후된 건물 대신 안정적인 주거 형태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양도성이라는 문화재가 근처에 있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재개발이 쉽게 진행될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고난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2004년 재개발 예정구역으로 선정되었지만 사업성이 적다는 이유로 재개발을 진행하려는 업체가 어느 한 곳도 없었던 것이다. 주민들은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현실에 낡은 집을 고치지 못하거나, 부동산 투기업자에게 집을 팔고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 결과 장수마을은 빈집이 늘어나고 열악한 환경에 그대로 방치되었다. 또한 낙산공원조성 사업이 시작된 이후로 300가구가 넘던 인구가 3분의 1까지 줄어들었다. 재개발 말고는 마을을 되살릴 방법이 전혀 없을까? 이런 고민 끝에 장수마을은 도시재생에 뛰어든다.

▲ 마을 박물관에 있는 장수마을 모형

 2008년 장수마을은 마을을 살리기 위해 대안개발 연구모임을 구성한다. 마을기업인 동네목수를 필두로 성북구 삼선동 1가를 사람들이 살기 좋은 동네로 탈바꿈하기 위한 주민워크숍이 열렸고, ‘장수마을’이란 이름도 이때 결정되어 지금껏 사용되고 있다.

‘한성마을’, ‘성곽마을’, ‘해뜨는 언덕’이 추천되기도 했지만, 전체 인구 중 65세 인구가 65%가 넘고 70%가량이 국공유지에 집을 짓고 살았던 특성을 살려 장수마을로 이름을 짓게 됐다고 한다.

아마 노인 대부분이 장수마을에 거주한지 50여년이 됐고, 앞으로 100세, 아니 그 이상까지 건강하게 마을에 머물러 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지 않나 싶다. 장수마을은 성곽과 문화재 보존지역이라 고도제한 등 건축법에 제한을 많이 받고 있었다.

때문에 동네목수에서도 오래된 건물을 부수고 새로이 건물을 세우는 방식은 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한 일은 주민 5명이 모이면 무조건 달려가 수리를 해주는 방식이었다. 그때 마을의 계단, 난간들이 수리되었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다 누구든 쉬어갈 수 있는 평상이 골목마다 놓이게 된다.

배정학 부대표는 장수마을에 6개의 골목이 있고, 그 골목마다 평상이 놓여있다고 했다. 장수마을은 예전부터 골목길을 중심으로 주민 모임이 형성되었고 평상은 그 모임을 다시 활성화시킬 수 있는 매개체이자 촉진제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동네목수는 2011년 본격적으로 노후화된 주거환경 개선을 목표로 동네 주민들을 고용해 집수리를 시작했다. 일자리 창출과 동시에 마을에 활력이 생기고 변화가 시작되었다. 또, 빈집 주인을 설득하거나 사들여 리모델링을 통해 세입자를 유입시키고, 마을공방, 마을카페를 오픈하여 동네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그러다보니 주민들은 자신들이 모이기만 해도 마을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던 주민들도 이젠 적극적으로 마을재생에 참여하여 자신의 집수리를 의뢰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배정학 부대표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까지 내다보며 100% 무상 리모델링을 지양했다. 1000만원까지는 지원을 해주지만 추가금액은 자비부담을 해야 하고, 자신이 직접 거주하지 않을 경우 임대료를 4년 동안 올리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동의를 해야 했다.

배정학 부대표는 “동네에 사람이 모이면 마을이 바뀐다”는 생각으로 단순히 주거환경 개선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살고 있는 사람, 살아갈 사람들이 원하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장수마을은 2012년 역사문화보전 연구용역을 시행했는데, 이때에도 주민협정을 통해 세입자 주거안정을 우선시했다. 또한 2013년 4월 주민동의를 얻어 재개발 예정 구역을 해제하고 7월에 주거환경 정비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는 한 달에 한 번 개최되는 장수마을 주민협의회 운영위원회가 그리는 미래, 즉 ‘지속가능한 장수마을 만들기’의 상이 잘 드러나 있는 부분이다. 주민협의회는 안정적인 주거공간을 위해 마을기금을 조성하고 있었다.

배정학 부대표는 단지 돈을 모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선 순위를 정해 알맞은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강조했다. 장수마을에는 아직 토지 변상금 문제나 용적률 제한 등 해결해야 될 과제가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주민참여 부족 해소와 여성 일자리 창출, 지속가능성을 위한 지자체와의 협력, 세입자 주거안정 마련이라는 숙제 또한 고민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장수마을이 처음 생긴 이래로 주민들의 의식이 가장 성장해 있는 상태다.

서울 한복판에 꿋꿋이 솟아있는 낙산의 굳건함을 닮은 장수마을 주민들에겐 고되고 지난한 미래보다, 정답게 와글와글했던 옛 골목길 같은 따뜻한 미래가 보였다. 수익금을 장수마을 주거환경 개선에 사용하고 있는 ‘작은 카페’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탐방은 종료되었다. 사람 사는 냄새가 그리운 이들에게 장수마을 탐방을 권한다.

[나는서울시민이다=안중훈 마을기자]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