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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서울시민이다] 사진작가 김미현씨가 마을에서 카메라를 든 이유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다"

▲ 김미현 작가가 기록한 도봉의 일상적인 풍경들
지난 11월 30일부터 12월 5일까지 서울 도봉구민회관에 있는 도봉 갤러리에서는 '2015 도봉, 골목이 좋다' 라는 테마로 <도봉 골목을 담는 사진학교>의 사진전이 열렸다.

갤러리에 걸린 사진들은 멋진 풍경사진도 아니었고, 사물의 경이로움을 가까이서 담아낸 접사 사진도 아니었다. 도봉구에 있는 평범한 골목길과 골목에 온기를 주는 사람들과 동물들, 그리고 천진한 모습의 아이들과 어느 집의 열린 대문 사이로 보이는 작은 뜰의 모습이 전부였다.

소박해도 너무 소박했다. 하지만 액자 속 한 컷의 사진 앞에 오랫동안 서 있어 보면, 그곳엔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공감의 기억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소박한 이야기가 있었고, 그 한 컷의 사진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저절로 미소 짓게 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기록사진은 예쁜 사진이 아닙니다. 골목을 담아 낸 기록사진은 집에 걸 수도 없죠. 하지만 자세히, 가까이 카메라 렌즈에 들어 온 그 공간들을 보고 있으면 분명 소박한 감동이 있어요. 내가 사는 마을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자신의 삶을 기억하고, 마을의 기억을 함께 공유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도봉갤러리에서 만난 사진작가 김미현(45세, 방학동)씨는 <도봉 골목을 담는 사진학교>를 올 한 해 동안 진행했다. 그가 지도한 수강생들과 함께 도봉구의 쌍문동과 창동, 방학동과 도봉동의 오래된 골목들을 10개월간 누볐고, 그 기록들을 모아 올해 4차례의 사진전을 열었다. 이것들은 도봉구에 대한 그의 애착의 산물들이었다.

▲ 도봉 골목을 담는 사진학교를 진행한 김미현 사진작가


그 사람, 마을의 모습을 기록하는 사진작가가 되다

1997년 결혼과 함께 도봉구에 산 지 18년째다. 처음엔 지역에 뭐가 있는지 조차 관심이 없던 그가 지금은 도봉구 지역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소박한 풍경들을 기록하는 열혈 홍보맨이 됐다.

음악을 전공한 그가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 남편의 영향이 컸다. 사진기자였던 남편 때문에 카메라를 가까이서 접하게 됐고 2007년부터 사진을 찍게 됐다.

"사진기만 들면 사각의 프레임 안에 들어 온 마을 풍경들이 달라 보이는 거예요.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이런 것이 있었네, 이렇게 달라졌네' 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죠. 사진을 찍다보니 '왜' 라는 궁금증과 호기심도 생겼어요. 우리 지역을 기록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이렇게 시작 된 그의 호기심과 궁금증은 마을을 자세히, 가까이 보는 습관을 만들어 줬다.

마을의 기록사진을 찍으면서 2009년 창간한 마을신문 '도봉N'에 사진으로 마을 소식을 하나씩 알리기 시작했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개인 블로그를 활용해 지역의 이런저런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 올리기도 했다. 산과 나무를 유독 좋아했던 그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약 3년 동안 산림청 블로그 기자로 활동하면서 도봉구 안에 있는 다양한 장소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800년 된 방학동 은행나무, 연산군묘와 정의공주묘, 발바닥 공원과 원당공원 등은 물론 도봉구를 병풍처럼 휘두르고 있는 도봉산과 북한산의 모습을 알리며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 마을을 기록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다양한 마을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고, 몇 년 동안 마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다보니 마을에서 사라지는 것들, 그대로인 것들, 달라지는 것들이 저절로 보였다.

그에게 있어 마을에 대한 사진찍기는 호기심과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 같은 것이었다.


혼자가 아닌, 마을 사람들과 함께 기록 사진 찍는 즐거움에 빠지다

테마를 정해 마을 사진을 찍기도 하고 마을에서 미디어 교육도 받으며 활발하게 지역을 기록해 나갔다. 마을에 대한 기록을 하다 보니, 지역 주민들과 함께 작업을 하면 훨씬 더 마을의 모습을 속속들이 다양하게 기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관(官)의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그의 생각을 경청하는 곳은 없었다.

지역에서의 분위기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차에 2014년 광진구에서 지역을 기록하는 특강을 맡아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광진 지역 사람들과 광진구의 골목들을 담아 나루아트센터에서 골목사진전을 열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타 지역에서 그 지역을 기록하는 사진 작업을 하고, 사진전을 열면서 생각은 더 많아졌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도봉구 지역에서도 꼭 필요한 작업이란 생각엔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2015년 봄, 기록사진 강좌를 열기 위해 모집 전단지를 직접 만들어 동주민센터, 김수영문학관, 평생학습관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부착했고, 모집 공고를 보고 지역 주민 17명이 모였다. 방학동 김수영 문학관에서 기록사진 강의를 할 수 있는 장소를 흔쾌히 내주었다.

<도봉 골목을 담는 사진학교> 제1기가 비로소 탄생했다. 6주 동안 강의가 진행됐다. 도봉동의 무수골 골목과 방학동 골목을 담아내는 사진 작업을 진행했고, 약 2주의 전시 준비기간을 거쳐 드디어, 5월 첫 사진전을 열었다. 여름엔 <도봉 골목을 담는 사진학교> 2기에 11명이 참여해 쌍문동 꽃동네와 희망 골목길을 담아 여름 전시도 무사히 열었다. 수강생들은 기록사진 강의가 진행되면 될수록, 골목을 담은 기록사진 전시가 열리면 열릴수록 색다른 경험에 고마워했다


기록사진의 세계엔 소박한 울림이 있다

“이왕 시작했으니 도봉구 4개동의 골목을 다 담아 연말엔 꼭 전시를 하겠노라고 내 자신과 약속했어요. 골목을 담는 사진학교에는 도봉구 주민들만이 오는 게 아니라 의정부, 남양주, 중랑구, 노원구, 강북구 주민들도 수업에 참여했고 타 지역 사람들도 남다른 애정을 갖고 도봉의 골목을 기록해 주셨어요. 여행하듯 그곳을 가 보자고 제안했죠. 개발로 인해 말끔해진 골목이 아니라 사람 냄새 폴폴 나는 그런 골목들을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어요.”

골목시장을 끼고 있던 도시 주택가의 창동 골목길, 도봉산 자락 아래 논과 밭이 있는 시골 같은 도봉동 골목길, 언덕과 산비탈이 있는 쌍문동 골목길, 전형적인 주택가 골목인 방학동 골목길 등 도봉구 안엔 그런 골목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기록사진엔 ‘추억과 기억’이 함께 한다는 김미현 작가의 제안에 수강생들은 사각프레임 안의 세계를 읽어내기 시작했다. ‘이런 곳이 있었네’ 라며 그곳에서 유년의 추억과 기억을 떠올리며 포토 스토리를 작성해 나갔다. 골목에서 감성을 담아내는 사람, 기록으로 골목을 남기는 사람, 골목에서 만난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인물을 담아내는 사람 등 자신만의 색깔로 사진 작업을 진행했다. 도봉구의 다양한 골목은 그곳을 카메라에 담는 이들에게 새로운 관점들을 제시했다.


올 한해 도봉구의 다양한 골목을 기록한 김미현 사진작가는 “나에게도 수강생들과 골목을 담아낸 작업은 무척 의미 있었다”고 말한다. 봄과 여름, 2번의 가을 전시를 포함해 올해 4번의 전시를 했으니 내년엔 책으로 그 기록들을 남기고 싶다는 그는 마을과 마을 속 골목을 기록하는 작업을 계속해 나갈 생각이다.

▲ 김미현 작가가 기록한 도봉의 일상적인 풍경들

방학동의 사라져버린 오래된 주택을 보면서, 창동의 단독주택이 헐린 자리에 어느덧 세워지고 있는 건물들을 보면서, 재개발지역인 도봉동의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들을 보면서 마을의 모습은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는 그의 행동하는 신념은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서 비롯됐음을 우리는 그의 골목사진을 통해, 마을의 기록사진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나는 서울시민이다=김영옥 마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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