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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간에 몰린 서울시] 공무원 조직문화 뒤흔든 지방자치제
-단체장 바뀔때 마다 공무원들 홍역
-시의원들도 권한 내세워 압력 일쑤
-공무원들 자리보전위해 인맥쌓기 올인


[헤럴드경제=이진용 기자]“4년동안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일 잘했다고 휴가 가란 이야기가 아니다. 자리를 내놓고 다른 곳으로 가란 뜻이다.

서울의 A구청 구청장을 보좌하는 핵심 부서장은 지난해 7월 새 구청장이 오자 서울시로 전출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이유는 전임 구청장을 가까이에서 보좌해 측근이라는 것 뿐 다른 것은 없었다.





서울시의 조직문화가 이상하게 형성된 것에는 지방자치제도가 큰 몫을 하고 있다. 국가에 공헌하겠다고 공부해 힘들게 공무원이 됐지만 4년마다 단체장이 바뀌면 공무원들은 홍역을 치른다. 소위 전 자치단체장 사람으로 분류되면 능력과는 상관없이 옷을 벗거나 좌천되기 일쑤다.

심지어 서울시에서도 박원순 시장이 2011년 10월 보궐선거로 들어온 첫해 고위공무원인 부시장 2명을 비롯해 1급 5명이 옷을 벗었다. 이유는 단지 고위직이라는 것. 즉 전임시장을 최측근에서 보좌했다는 것이다. 이후 박 시장은 한강사업본부장을 첫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그러자 시민단체가 들고 일어섰다. 박원순호 첫 대변인을 오세훈의 역점사업인 한강르네상스 주역인 한강사업본부장을 앉혔다는 이유다.

공무원을 공무원으로 보지 않고 정치인으로 보면서 공무원들의 설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공무원들은 어떤 단체장이 선출되든 상관없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그것은 일반 기업도 같을 것이다. 오너가 바뀐다고 그 오너에 충성 안할 직원이 얼마나 있겠는가.

시청 관계자는 “이런 공무원을 4년마다 물갈이 하듯 갈아 대니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을 안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실제 현재 서울시는 고시출신이나 일반 공무원 출신이나 3급 부이사관으로 승진만 하면 전면에 나서서 일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승진하고 1년만 지나면 부구청장으로 가든지 2년짜리 해외 교육 또는 1년 짜리 국내 교육을 가기에 혈안이다. 시장이 바뀌게 되면 소위 물먹기(?) 싫어 ‘도피’하겠다는 것이다. 즉 나이를 고려해 차기 시장이 오면 공무원으로 마지막 불꽃을 태우겠다는 복심이 자리잡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민선 1기, 2기, 3기, 4기만해도 심하지 않았다. 민선 5기 출범후 부시장들과 1급을 사퇴시키면서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서울시에서는 1급으로 승진하지 않기 위해 부구청장으로 나가는 등 시장 눈에서 멀리 떨어지려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1급은 시장이 퇴직하라고 하면 언제든지 떠나야 한다. 하지만 2급이면 강제로 해임할 수 없다.

이런 결과 시장은 역점사업을 하는데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금은 박 시장도 그런 것을 인지해 공무원들을 챙기고 있지만, 일부 공무원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공무원들의 마음은 떠났다는 시각도 나온다.

비단 서울시 뿐만 아니다. 자치구는 상황이 더 심하다. 하위직들이 많이 근무하는 자치구에서는 구청장이 있을때 승진하지 못하면 미래를 담보하기 힘들다. 민선 6기에서는 구청장이 바뀐 자치구는 많지 않다. 그러나 민선 5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구청장을 보좌했던 공보과장과 팀장들은 다른 구청으로 쫓겨나기 일쑤였다. 심지어 한 공보팀장은 직접 이력서를 써서 구청장들을 만나 공보 전문가로 다른 구청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단체장 정당이 바뀌지 않는다고 해서 안심하면 큰일이다. S구의 경우 구청장은 한나라당 즉 지금의 새누리당이 민선이후 지속적으로 구청장을 해왔다. 그러나 공보팀을 비롯해 주요 부서 직원들은 구청장이 바뀔때 마다 곤욕을 치렀다. 전부 전임구청장 사람이라는 것이 이유다.

일부는 사무관 승진 문턱에서 좌절해 결국 6급으로 공무원 생활을 마감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모 구청의 경우 구청장이 바뀌고 아예 다른 구청으로 전출 가서 그 구청의 텃새로 고생하다 30년의 공무원 생활을 6급으로 마감하기도 했다.

시의회, 구의회 의원들도 조직문화를 이상하게 만드는 데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소위 끗발있는 의원의 경우 집행부에 입김을 작용해 근무평정(근평)을 받을 수 있는 좋은자리로 옮기거나 심하면 승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승진 대상자 명단에 있는 비고란에 누구 이름이 적혀 있는가에 따라 승진여부가 결정된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이러다 보니 공무원들이 본연의 업무보다는 인맥쌓기에 더 열심일 수 밖에 없다.

서울시청 6층의 영향력 얘기도 떠돈다. 6층은 시장 집무실이 있는 층으로 시장과 함께 서울시에 온 소위 정무라인들이 일하는 곳이다. 정무라인의 입김이 점점 거세져 인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시장조차도 정무라인들의 입김에 인사를 포기한 적도 있다는 말도 들린다.

현재 서울시는 능력위주 발탁을 주로 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근평권을 갖고 있는 상사의 말은 곧 법이다. 막말에 욕설을 해도 근평을 받기 위해서 또는 승진을 하기 위해 참아야 한다. 객관적인 평가는 여기서 벌써 사라진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선 별의별일이 일어나곤 한다. 그렇다고 해도 현재의 비상식이 통하는 공무원 조직은 개선 돼야 한다는 시각이 강하다. 그래야 지방자치제도가 발전할 수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무원을 정치인으로 보지 말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복으로 본다면 이런 불합리가 개선될 것”이라고 했다.

jycaf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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