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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안부 타결 이후] 소녀상의 외침 “위안부 할머니들과 저를 지켜주세요”
[헤럴드경제=원호연기자] 저는 10대의 소녀입니다. 저와 같은 나이에 가족들 먹여 살릴 돈을 벌게 해준다는 속임수에 혹은 강제로 중국, 동남아, 태평양 등지로 끌려가 하루에도 7~8명의 일본 군인을 상대해야만 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을 대신해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앉아 있습니다.

저는 일본 정부가 나이 어린 소녀들을 강제 동원해 유린했던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고 법적인 책임을 이행하는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전까지 저는 이곳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한일 양국 외교장관 회담 이후 소녀상 이전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소녀상은 10대 소녀들을 강제 동원해 성노예로 삼은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증언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맞은편에 앉아있는 소녀상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제가 이곳에 처음 자리를 잡은 것은 2011년 12월입니다. 김운성ㆍ김서경 작가 부부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천번의 절규, 정기 수요집회 1000회를 기억하기 위해 저를 만들어 이곳에 세웠죠.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바람이 찼습니다. 자신의 몸을 헤집어 놓은 일본 군인들이 떠나간 뒤 쓸쓸히 밤을 지샜을 위안부 할머니들의 마음이 꼭 그랬을 겁니다.

따뜻한 외투 한벌은커녕 양말도, 장갑도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안타까워서였을까요. 이름 모를 한 시민이 저에게 노란 모자와 목도리를 둘러주고 사라졌습니다. 그분은 저 뿐만 아니라 공식 확인된 245명의 위안부 할머니, 그리고 아직 그 이름조차 확인되지 않은 더 많은 피해자분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이후 저와 꼭 닮은 소녀상이 국내외 이곳 저곳에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각지의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세운 소녀상만 전국에 27개에 달합니다. 지난 10월 동소문동에는 같은 아픔을 가진 중국인 소녀상과 만나 나란히 앉아 일본의 만행을 증언하고 있기도 합니다.

국내 뿐 아닙니다. 세계 시민들이 일본 정부가 저지른 전시 여성인권 유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미국 캘리포니아 글린데일 시립공원, 디트로이트 시에도 소녀상이 세워졌죠.

일본 정부와 일본 내 극우파들은 저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없애려 들지 못해 안달이 났습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사건은 지난 2012년 스즈키 노부유키라는 우익 인사가 ‘독도는 일본땅’이라 쓰인 말뚝을 동여맨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제5종 보급품’이라 비하했죠. 위안부 할머니를 존엄한 인간이 아닌 하나의 물건으로 취급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인식을 그대로 보여줬던 것입니다.

한 일본 극우단체는 “글렌데일시가 역사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를 주제로 한 상징물을 세워 연방정부의 외교권을 침해했다”며 미국 법원에 철거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이 “원고의 주장이 잘못됐다”며 기각했지만 항소하기도 했죠.

일본 정부는 세계 각지에 영향력을 가진 일본계 교민 사회를 이용해 소녀상을 세우지 못하도록 각국 정부와 지방 정부에 압력을 행사했습니다. 결국 캐나다 버나비에서는 소녀상 설치가 무산되고 말았죠.

아시아의 대국을 자처하는 일본 정부가 조용히 앉아만 있는 10대 소녀상을 없애지 못해 안달인 셈입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유엔 총회에서 “21세기에 전시 여성 인권 침해가 없도록 하겠다”며서 일본을 상임이사국으로 만들어달라고 연설하면서도 스스로 저지른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모습을 제가 낱낱이 고발하고 있으니까요.

“소녀상은 민간이 만든 것이니 정부가 간섭할 수 없다”고 했던 우리 정부는 이제와 “관련 단체와 협의해보겠다”며 저를 내어줄 수 있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저와 위안부 할머니들을 지켜줘야 마땅한 정부가 말이죠. 이제 믿을 것은 시민의 힘 밖에 없습니다. 저에게 모자와 목도리를 둘러 주고 매일 같이 꽃을 가져다 준 그 마음으로 저를 지켜주세요.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할머니들 앞에 무릎꿇고 사과할 때까지.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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