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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담 아미의 문화쌀롱] 뮤지컬 오케피, 빛난 건 진짜 오케피 뿐이었다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뮤지컬 ‘오케피’는 뮤지컬 어법에 정면으로 도전한 뮤지컬이다. 그러니까, 뮤지컬이되, 같은 뮤지컬을 조롱하면서 우리는 뭔가 다른 뮤지컬이라고 말하는 뮤지컬이란 얘기다.

“고양이가 두 발로 걸어다니고”(캣츠) “가면 쓰고 여자한테 노래시키고”(오페라의 유령) “주사 맞고 갑자기 성격 바뀌는”(지킬 앤 하이드) 뮤지컬이 그토록 싫었던걸까. 그렇다면 뮤지컬이 아닌 다른 어법을 쓰는 것이 공정하지 않았을까. 이를테면 연극이나 무언극같은.

기존 흥행 뮤지컬을 이같이 희화화 한 오케피 역시 뮤지컬의 어법을 답습했다. 그냥 서서 말해도 될 이야기를 뛰어다니고 춤추며 노래로 푼다. 그것도 아주 ‘별 것 아닌’ 이야기들을.

‘쌍천만배우’ 황정민의 야심작 뮤지컬 오케피는 무려 제작비 40억원을 들인 학예회 같은 느낌이다. 그것도 2시간 50분이나 계속되는 지루한 학예회. “1막 끝나고 집에 가도 돼. 2막은 별 내용 없으니까”라는 가사처럼, 오케피의 2막은 집에 가고 싶게 만드는 지루함의 연속이다.

VIP석 티켓 가격은 14만원. 이 돈을 내고 기꺼이 볼 만한 공연인가를 묻는다면 단언컨데 “아니오”다. 


<뮤지컬 오케피(Musical Orchestra Pit)>

*공연기간 : 2015년 12월 18일~2016년 2월 28일
*장소 : LG아트센터
*러닝타임 : 2시간 50분(인터미션 포함)
*관람일시 : 2015년 12월 20일 일요일 오후 2시
*캐스팅 : 황정민(컨덕터), 김태문(오보에), 박혜나(바이올린), 윤공주(하프), 최재웅(트럼펫), 김원해(비올라), 육현욱(기타), 정상훈(색소폰), 송영창(피아노), 김현진(첼로), 남문철(드럼), 정욱진(퍼커션)
*프로듀서 : 김미혜
*대본ㆍ연출 : 미타니 코키
*작곡 : 핫토리 다카유키 

5년 공들인 황정민의 야심작…‘어벤저스’ 방불케 하는 초호화 캐스팅=뮤지컬 오케피는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 피트(Orchestra Pit) 단원들의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들을 가볍게 풀었다.

일본 극작가 미타니 코키의 원작에, 일본 흥행 드라마 ‘히어로(Hero)’의 작곡가 핫토리 다카유키가 만든 곡으로 충무로 톱스타 황정민이 연출을 맡았다. 황정민은 오만석과 함께 주인공 컨덕터(오케스트라 지휘자) 역으로 출연했다.

개막 전부터 대대적인 홍보가 이어졌다. 지난 11월 뮤지컬계에서는 이례적으로 미디어데이를 열어 황정민, 오만석 등 주요 배우들이 기자들과 만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가졌다.

출연진 면면도 화려하다. “뮤지컬판 ‘오션스 일레븐’이 될 것”이라는 황정민의 단언처럼, 가히 ‘어벤저스급’ 일레븐이다.

주연을 맡은 황정민, 오만석 이외에도 윤공주, 린아, 서범석, 정상훈, 김호 등 ‘맨오브라만차’, ‘노트르담드파리’, ‘지킬앤하이드’ 같은 흥행 뮤지컬 배우들이 대거 투입됐다. 송영창, 김원해, 최재웅 등 영화, 연극, 뮤지컬을 넘나드는 신스틸러 배우들도 포진됐다.

여기에 ‘더뮤지컬어워즈’ 음악감독상 최다 수상, ‘한국뮤지컬대상’ 작곡상 등을 수상한 마에스트로 김문정이 지휘를 맡았다. ‘엘리자벳’, ‘맨오브라만차’의 무대디자인 서숙진, ‘지킬앤하이드’, ‘잭더리퍼’의 음향디자인 권도경 등 뮤지컬계 최고 스태프도 한 데 뭉쳤다.

공연장으로 ‘LG아트센터’를 택한 것도 신의 한 수다. LG아트센터는 음향시설 등 국내 최고 뮤지컬 극장으로 꼽힌다. 대사와 음악이 이곳만큼 선명하고 깨끗하게 들리는 곳은 찾기 드물다.

연말 특수를 노리는 대형 뮤지컬 치고 다소 늦게 개막한 이유도 “관객이 집중하기 좋은 극장을 찾으려”했던 연출자의 고민 때문이었다. 


뮤지컬 오케피에서 빛난 건 무대 뒤 진짜 오케피 뿐이었다=뮤지컬 오케피의 넘버들은 (다소 일본스러운 경향이 있지만) 완성도가 높다. 하모니도 아름답고, 뮤지컬에서 가장 중요한 ‘기억에 남는’ 멜로디도 있다. “그것이 오케피, 그것이 오~케피”와 같은 주 멜로디가 반복되는 가운데 클래식, 발라드, 탱고 등의 장르를 두루 차용해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는 넘버들을 갖췄다.

그러나 한국어 버전으로 개사된 가사들은 원곡 멜로디를 아깝게 만든다. 특히 여타 뮤지컬들을 조롱하는 ‘뮤지컬 망해버려’는 뮤지컬 형식을 취한 오케피 스스로에 대한 조롱처럼 들린다.

오케피는 최고의 배우와 최고의 스태프가 만나 최고의 무대 인프라 위에서 최악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풀었다지만, 하프 연주자를 중심으로 사랑 이야기가 얽히고 설키는 것은 참아주기 힘든 정도다. 별거 중인 컨덕터는 하프를 마음에 품지만, 하프는 트럼펫과 사귀는 중이고, 이런 내막을 모른 채, 기타는 하프와 사귀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프는 이전에도 나이 많은 피아노 연주자에게 오해(?)를 산 적이 있다. 이 와중에 컨덕터의 부인인 바이올린은 별거 중에 트럼펫과 사귀었다 헤어졌다. 한 조직 안에서 이처럼 ‘족보’를 꼬이게 만드는 하프 연주자 같은 캐릭터는 현실 세계에서는 종종 지탄의 대상이 되곤 한다.

술에 취한 채 연주에 임하는 색소폰, 냄새나는 토끼를 데려 온 피아노, 시장 바구니를 챙기느라 연주에 집중하지 못하는 첼로 등, 하나같이 신변잡기적인 내용을 늘어놓을 뿐이다. 실제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 같은 건 없다. 이 이야기를 무려 3시간 가까이 듣고 있어야 할 이유를 공연 내내 찾기 힘들다.

결국 뮤지컬 오케피에서 빛난 건 여전히 무대 뒤 장막에 가려진 실제 오케피의 연주 뿐이다. 그걸 알려주는 것이 이 뮤지컬의 목적이었다면 어느 정도는 성공적이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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