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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국회 주인은 국민”, ‘강골’의 마지막 호통…與野는 울 수도 없었다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 “대한민국 국회는 국민의 국회이지, 결코 여당의 국회도, 야당의 국회도, 청와대의 국회도 아니라는 걸 모두 명심해야 합니다.”

18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 고(故)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생전 육성이 회의장에 울려 퍼졌다. 마른 외모와 거친 톤, 영상 속 고인의 목소리는 생생했다. ‘강골’은 호통쳤다.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여야 후배 정치인을 향해서다. 영결식장은 조용했고, 고인의 육성만 메아리쳤다. 우는 이도 없었다. 눈물조차 부끄러울까. 모두 침묵했다. 그저 고개 숙였다. 

사진설명 = 고(故) 이만섭 전 국회의장 국회장 영결식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엄수되고 있다. 헤럴드경제 박해묵 기자/mook@herladcorp.com

2015년 12월. 대한민국 국회는 주인을 잃었다. 의회주의란 말은 공허할 따름이다. 모두가 의회주의를 외치지만, 모두가 의회주의를 외면한다. 여야는 여당의 국회, 야당의 국회만 외친다. 쪼개진 국회에 청와대가 나선다. 국민도 지쳤다.

강골의 마지막 길은 그래서 ‘호통’이다. 고인의 추억을 곱씹고, 더 나은 내일을 다짐해야 할 마지막 배웅. 하지만 이날 영결식장은 울음이 없었다. 고인을 추억하는 것조차, 애도하는 것조차 죄스럽기 때문일까.

이날 여야 의원은 자리를 섞어 앉았다. 영결식장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8선과 두 차례의 국회의장. 오랜 세월만큼 그의 흔적은 여야 곳곳에 퍼져 있다. 뒤늦게 도착한 의원들은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서 있기도 했다.

신경식 대한민국헌정회장은 조사에서 “말은 단호했지만, 일상에선 늘 너그러운 ‘후덕한 선배‘”라고 했다. 그는 “현실정치에서의 단호함, 타협 거부의 강직함”이라고 고인을 애도했다.

정갑영 연세대 총장은 “허스키하면서도 카랑카랑하여, 에두름 없이 곧이곧대로 쏟아지는 말씀은 듣는 이들의 가슴 속에서 더 크게 울렸다”고 기억했다. 너그럽고 강직한 울림. 국민이 원하는 국회의 상(像)이다. 아련한 상(像)이다.

“한 번은 여당을, 한 번은 야당을, 또 한 번은 국민을 보며 의사봉을 두드린다.” 고인의 생전 말이 울려 퍼지자 순간 울컥했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이처럼 멀기만 하다.

‘강골’은 마지막 호통을 남긴 채 국회를 떠났다. 영결식이 끝나자 여야 의원도 발걸음을 재촉했다. 일부는 유족을 따라, 또 일부는 의원실로, 또 일부는 바쁘게 차량을 불렀다. 다시 일상이다.

영결식 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열심히 (여야 간) 합의하자고 하는데 크게 접근한 내용은 없다”고 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본회의 개최가) 유동적이다. 22일에 열자고 얘기한 상태인데 야당은 성과를 좀 보고서 본회의를 열자는 것 같다”고 전했다. 돌림노래 같다. 열심히 달리거나 달리는 척 하거나. 간극은 그대로다.

고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이날 마지막 등원을 마쳤다. 육신도 떠났고, 호통도 떠났다. 국회의 하루는 또 이렇게 저물어간다. 어쨌든 하루는 저물어간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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