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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사랑한다면 베르테르처럼?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돌뿌리에 걸려 넘어졌어요. 그 돌뿌리가 제 무릎을 확 때렸어요. 그런데 전 그 돌뿌리를 어쩌지 못하겠어요.”

뮤지컬 ‘베르테르’의 대표적인 장면. 첫눈에 사랑에 빠진 여자 롯데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베르테르가 술집 주인 오르카에게 털어놓는 이야기.

지난 11월 10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베르테르가 90%대 높은 객석 점유율을 기록하며 성황리에 공연되고 있다. 



베르테르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원작으로 한 창작뮤지컬로, 지난 2000년 초연된 이래 총 12차례 재공연되면서 관객 25만명을 동원했다. 2002년 베르테르 역할을 맡았던 조승우가 올해 다시 베르테르 역으로 무대에 오르며 화제가 됐다.

뮤지컬의 줄거리는 유부녀 롯데를 사랑하다 결국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순수한(?) 청년 베르테르의 이야기다. 독일의 문호 괴테의 원작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는다면 흔해 빠진 막장 드라마 줄거리이자 참으로 찌질한 사랑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관객의 대다수가 여성들인지라, 알베르트와 결혼한 이후에도 베르테르를 헷갈리게 만드는 유부녀 롯데에 대해 극중 내내 비난이 쏟아진다. “하아”, “췟” 하는 낮은 한숨과 콧방귀가 객석 여기저기에서 들려 온다.

그도 그럴것이 1막에선 “반가운 나의 사랑, 오늘이 오기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라며 알베르트와 사랑 노래를 주거니 받았던 그녀가 아니었나. 베르테르에게 “어머, 제가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군요”라며 짐짓 당황해 할 땐 여성 관객들의 분노 게이지가 일제히 동반 상승한다. 아마 속으론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장난하냐!”

사랑하기 참 힘든 시대다. 정신적인 것 보다 물질적인 것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간’ 보고 ‘썸’ 타느라 기차 놓친 청춘 남녀가 부지기수다.

어느 30대 후반 솔로남의 말. “여자들은 30대 이후 나이를 먹을 수록 방어벽을 높이 쌓는다. 그러나 그 벽은 한없이 나약해서 언제든지 허물어질 수 있다.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녀의 벽을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왜…. 나도 이제 귀찮다.”

베르테르처럼 사랑 하나 때문에 인생 놓아 버리는 ‘막장 사랑’은 아니더라도, 간 보고 썸 타느라 시간 낭비하는 것보다 찌질한 사랑이라도 당장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견고해 보이는 방어벽도 알고보면 누군가 허물어주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오르카가 말한다.

“너희들도 짝을 찾아. 청춘이 백년인 줄 알아. 다 때가 있는거야. 저 여자가 네 여자다 싶으면 인정사정 볼 것 없어. 백마 탄 왕자 기다리냐. 말타기에도 바쁜데 뭐하러 너희를 찾겠냐. 가까운데서 찾아. 키 작으면 어떻고 돈 없으면 어때. 살면서 정들고 정들면서 사랑하는거지.”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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