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리더스 카페] 세계적 인물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만든다
[헤럴드경제] “언제 정신과 식견이 성장하여/제 몸 제가 보호할 줄 알게 될꼬(…)지금 아직 어린 나이라서/뭘 보기만 해도 마음이 먼저 따라가니/깨우쳐줘도 이해하지 못하고/꾸짖어도 위엄 보이기 어렵네/보살피고 기르는 일 진실로 쉽지 않으나(…)”

“어찌 다만 손가락 하나 다친 것을 애석해하리/심성이 어진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을지니/마음을 수양하여 품성을 완성해서/근신하는 마음을 가지고 심성을 매우 건강하게 하라”

노인이 스승이다/윤용섭 김미영 외 지음/글항아리
조선시대 최초의 육아일기 ‘양아록’(養兒錄)이다. 그것도 사대부가에서 할아버지가 손자를 키우며 쓴 육아일기다. 이 일기의 주인공은 조선 중기 인물 묵재 이문건. 고려말 명사 이조년의 후예로 이황, 조식, 이이 등과 교유한, 위상이 당당한 집안이다. 묵재는 을사사화에 연루돼 고향 상주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중 손자 이수봉을 얻어 출생부터 16세까지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아이의 발육과 안전, 건강을 비롯해 올바른 습관 훈련과 잘못된 버릇을 고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또 교사로서 손자를 교육하며 갖는 안타까움과 희열, 책임감 등이 사랑을 바탕으로 애절하게 녹아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펴낸 ‘노인이 스승이다’(글항아리)는 맛벌이 가정이 늘면서 조손교육이 중요해지고 있는 현 시점에 전통의 가치를 새롭게 되살려볼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책 저술은 윤용섭 한국국학진흥원 부원장을 비롯, 장윤수 대구교대 교수, 이창기 영남대 명예교수 등 분야 전문가 7명이 참여했다.

전통적인 대가족제도에서 아이들의 교육은 응당 조부모의 몫이었다. 가사와 임신에 따라 엄마가 돌보지 못하는 아이를 할머니가 떠맡았은 건 물론 일상의 습관을 익히는 일 모두 조부모의 무릎 위, 아래에서 이뤄졌다. 손자는 6,7살 께에는 아예 할아버지의 사랑채로 옮겨가 생활하기도 했다.

맹자는 “아버지와 아들은 세(勢)가 통하지 않기에 올바름을 가르칠 때 통하지 않으면 화를 내고 결국에는 서로 해치게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부모 자식간에는 어떤 교육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걸 지적한 것이다. 조부모는 한 세대 건너 뛴 관계이기 때문에 다르다. 질책보다 너그러이 받아주고 타이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교육의 효과가 높다는 얘기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미 워너의 실험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워너는 극단적으로 열악한 조건에 놓여있는 하와이 카우아이 섬의 1955년생 신생아들이 18살 청소년으로 성장할 때까지 과정을 추적했다. 그 결과 3분의 2는 심한 학습장애, 범죄 경험,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3분의 1은 놀랍게도 모범적이고 학교성적이 우수하며 자신감있고 진취적으로 성장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학생들의 공통점은 회복탄력성이었다. 특히 이들은 예외없이 그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은 아이 곁에 있었다.

조손교육, 즉 격대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는 연구결과다.

책에는 할아버지가 손자를 가르치는 교육의 표본으로는 퇴계 이황을 길게 소개해놓았다. 이황이 손자의 책읽기 뿐 아니라 인성과 생활습관 하나하나를 지적하고 가르친 편지들은 교육열이 요즘 못잖다.

손자 교육에 엄격했던 할아버지 이황의 편지는 권유와 격려, 안타까움, 책망이 많다. 특히 좋은 벗과의 교제를 강조하고 협동 학습을 장려하는 모습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퇴계는 손자의 편지글도 일일이 바로 잡아주며 가르쳤다.

“네 편지를 보니 문장이 끝난 곳에 ’~할 따름입니다‘라는 글자를 자주 쓰더구나. 그러나 어른들께 올리는 편지에서는 이 글자를 써서는 안되니 그리 알거라.”(1561년1월21일)

“언제나 모든 언행을 지극히 조심하면 참 좋겠다”(1562년 11월16일) “성균관은 처신하기 어려운 곳인데, 너에게 있어서는 더욱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이다. 언행은 언제나 겸손하고 조심해서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하지 말며, 반드시 몸가짐을 바르게 하거라.”(1562년 12월17일)

부모가 그랬다면 반발도 적잖았을 터이다.

책에는 서구 유명인사들의 격대교육 얘기도 소개돼 있다.

빌게이츠는 외할머니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자서전 ‘게이츠’에 따르면, 과자를 만들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게임과 카드놀이를 좋아했던 외할머니는 어린 손자들에게도 다양한 게임을 가르쳤다. 또 늘 책을 읽어준 덕분에 빌은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는 독서광이 됐다. 외할머니에게서 배운 카드실력으로 나중에 하버드대에서 포커놀이를 통해 돈을 모아 창업 자금을 마련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포스트모던 문학 지평을 연 아르헨티나 출신 소설가 루이스 보르헤스가 책을 처음 접한 것은 할머니 무릎에서였다. 보르헤스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아버지의 도서관을 꼽았는데 어마어마한 영어책 장서는 할머니가 구입한 책들이었다. 외할머니의 옛날이야기에서 잉태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노벨문학상 ‘백년 동안의 고독’, 퀴리 가의 격대교육, 할아버지와 손자의 아침산책이 만든 존경받는 부자 발렌베리가 등 조손교육의 성가는 적지 않다.

책은 100세 노인 시대에 조손관계의 회복을 통해 노인의 존재와 가치 역시 재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