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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서울시민이다] 인생을 가르치는 마을학교
자존감을 되찾은 아이들 "살아갈 용기를 되찾았어요."

[나는서울시민이다=김은하 마을기자]   무엇인가 말하려고 어니스트가 잠시 생각에 잠긴 그 순간 어니스트의 얼굴에는 기품 있는 표정이 나타나며 어찌나 자애가 깃들어 있는지 시인은 순간적으로 팔을 번쩍 들고 외쳤다. “보세요, 저기를 보세요! 어니스트 씨가 바로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입니다!”    -다니엘 호손 <큰바위 얼굴>

소설 <바위 얼굴>속 마을 사람들은 큰 바위 얼굴을 한 사람이 대도시 등지에서 올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정작 큰 바위 얼굴을 한 사람은 마을에 있었다.


이렇듯 큰 바위 얼굴을 한 사람을 마을에서 찾고싶은 사람은 비단 소설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 속 우리 마을 속에도 언제나 존재한다.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영일고등학교 생활지도부장 이금천 씨(52)의 경우가 그렇다.

▲영일고 이금천 교사는 "아이들의 자존감 향상`을 위한 대안교실 운영에 열심이다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 구성을 보면 공부하려는 상위권 학생들은 특성화고에 몰려 있고, 중하위권 아이들만 남겨진 상태입니다. 예전과 달리 지금의 실업계고는 중간 성적층의 아이들이 가고, 하위권은 일반계고로 가게 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공부하려는 아이들이 극소수입니다. 다수의 아이들은 공부할 의욕이 없어, 불성실하고 출결은 엉망이고 게다가 다른 사람 공부까지 방해하기 십상이죠.”


학습부진 학생들을 구제하려는 정부대책의 하나로 나온 것이 ‘학교안의 대안교실’일 것이다. 학생들이 국가교육과정이 아닌, 의미있는 활동을 하게 되면 필수과정 이수로 인정해 주는 것으로 2014년부터 시행됐다. 영일고는 2014년부터 준비해 올해 4월 대안교실의 문을 열었다.


“요즘은 빠르면 초등학교 중학년 이후부터 학업 포기자가 나와요. 학교 밖 청소년이 너무 많아졌어요. 아이들이 학교에 기대하는 것이 없어 학업포기가 부모들보다 쉬워요. 인성교육은 기대하지도 않고 출세의 수단, 입신양명의 도구로 학교교육이 지배적이었다가, 대학 나와도 별 대안이 없다는 식으로 매력이 떨어진 거죠. 애초부터 인성을 강조했더라면 학교 위신이 이리 떨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죠. 이런 상황 속에서 올바른 가치관, 의욕, 기술을 가지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태도를 길러주는 것을 대안교실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학교 교사들은 국가 교육과정을 가르치기도 힘든 데, 과외로 다른 것을 더 시도한다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 이씨의 눈에 들어온 것이 마을이다. 학교가 실질적 삶의 터전인 마을과 결합해 마을사람, 마을시설, 마을단체를 교육자료로 적극 활용해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한 것이다.


대안교실 참가 학생들은 월~목요일 오전엔 일반 교과과정을 배우고 오후엔 원하는 비교과 교육과정을 선택해 배운다. 진행하는 12개 프로그램 가운데 11개가 마을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이다. 마을결합형 교육과정을 만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미 많은 영일고 교사들이 마을활동과 결합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가능했다.

▲마을주민이 강사로 참여하는 영일고 `마을학교` 프로그램이 학생들 사이에 인기다

“20년 전 영일고에는 학교축제가 없었어요. 몇 명의 교사들이 의기투합해 의미있는 축제를 만들고자 했는데, 장애우와 지역아동센터 친구들을 초대해 마을과 함께 어울리는 축제를 시작했어요. 지역아동센터 친구들은 학교 학생들이 자원 봉사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준 상태라 이미 유대관계가 형성된 상태였구요.”

대안교실 수업 중 택견수업은 영일고 퇴직교사이자 마을주민이기도 한 강사에게 맡기고, 진로수업은 마을에서 진로관련 자격증 있는 주민들을 학교가 같이 진로상담사로 양성해 수업을 맡겼다.

도시농부 수업은 마을활동가이면서 김포에서 농사를 직접 짓고 있는 마을 주민이, 복싱수업은 마을 복싱도장 관장이 수업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헬스반, 요리반, 연극반, 밴드반 등 마을에 살거나 마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강사로 채워졌다.

“의미있는 실험이었죠. 대안교실은 과정상 대성공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참여 전 아이들의 모습과 비교해 볼 때 더욱 밝아졌고, 열심히 신나게 학교에 나오고 있어요. 올해 목표는 아이들에게 삶의 의욕과 활기를 찾아주는 것이었어요.”

이씨는 대안교실을 나와 봤자 아이들의 진로가 정해져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식의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건 삶의 의욕도 없는 아이들한텐 턱도 없는 얘기죠. 대안교실의 대상은 삶의 의욕조차 없는 아이들입니다. 강해보이던 전교 1등도 자살하더군요. 위기대처 능력이 없는 제자들을 보면서 좋은 대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일단 살고 싶게 만드는 게 최우선 과제였어요. 한계는 느끼지만 지금 지적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부모들은 대안교실 참여를 인생포기로 간주하지만, 아이들은 자랑스러워한다고 한다. 용기를 낸 19명의 아이들이 대안교실에 신청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한 주에 약 140여명의 아이들이 대안교실에 참여한다.

“애들이 전도사예요. 자신이 즐거움을 느끼니까 친구들을 권유하게 되어 참여 학생 수가 급격히 증가하더군요.”

26년 교직생활에서 가장 뭉클했을 때를 물었다.

“학교 축제 할 때입니다. 아이들이 돈을 모아 지역아동센터에 기부를 하고 오는 중 소감을 물으니 ‘이 모든 과정을 우리들의 손으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게 기쁘고, 내 자신과 내 학교가 자랑스럽다. 이게 학교다’라고 말하더군요. 그 때 느꼈어요, 아이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은 자기의 행동과 실천으로부터 스스로 자존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란 사실을. 그렇게 해 주는 것이 교사, 어른으로서 책무라는 것도 뼈저리게 느꼈죠.”

자존감을 느낀 아이들의 표정은 밝아졌다. 그런 아이들의 밝은 표정을 만들었느냐가 프로그램의 평가 기준이 되었다.

“학교는 마을 속으로 더 들어가 마을의 건강함이 학교로 들어오고, 마을은 동네의 좋은 어른들, 형들의 위치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아이들의 요구와 그 요구를 채워줄 수 있는 마을의 자원이 맞아떨어져야 하죠. 그것이 잊고 있었던 마을의 교육적 기능 회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가 다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입시위주의 교육이 전부라는 생각을 버리고 전인교육에 방향을 맞춰야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가 학교 수련회에 못 간 학생들로 고민에 빠진 그의 모습에서 학생들을 향한 사랑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가 그리는 학교와 마을이 공생하는 그림 속에서 큰 바위 얼굴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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