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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천경자를 둘러싼 풀리지 않은 의문들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아니 진짜 이해가 안가는 게, 장례를 자기 혼자 치러? 아무리 형제지간에 사이가 안 좋다고 해도 부모님 장인데….”

고(故) 천경자 화백의 부고를 들은 미술계 인사가 내뱉은 첫마디 말이다. 다른 가족들을 부르지 않고 혼자 장례를 치렀다는 것, 게다가 장례를 치른지 두달이나 지나서야 그 사실이 알려졌다는 것을 들은 이라면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던질만한 의문이다.

본지 취재는 그런 의문에서부터 시작됐다. 왜 장녀 이혜선 씨는 다른 형제들을 부르지 않았을까. 그들 사이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걸까.

혜선씨와 2007년부터 알고 지내면서 국내 대리인 격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는 한 인사로부터 혜선씨의 입장을 전해 들었다. 언론은 물론 대외 접촉을 지극히 꺼려 온 혜선씨가 유일하게 연락하고 지내는 두 명의 국내 인사들 중 한 명이다. 그는 두달 전 혜선씨와 함께 서울시립미술관 내 수장고에 천 화백의 유골함을 들고 동행했다.

그는 개인 의견임을 피력하면서 천 화백 자녀들간에 오랜 갈등이 있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갈등의 요인 중에는 작품 관련된 문제도 있었음을 언급했다. <“천경자작품 놓고 자식들 갈등…美서 맏딸 홀로 장례 치른듯” - 본지 10월 26일자 참고>

본지 보도 이후 장남 이남훈(67ㆍ팀쓰리 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회장)씨와 미국에서 체류하던 차녀 김정희(61ㆍ미국 몽고메리칼리지 미술과 교수)씨, 김씨의 남편 문범강(61ㆍ미국 조지타운대 미술과 교수)씨, 그리고 차남 고(故) 김종우씨의 부인 서재란(52ㆍ세종문고 대표)씨가 모여 27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 혜선씨는 없었다. 

이들이 공식적으로 밝힌 내용은 서울시에 대해 ‘한국 문화계를 빛낸 미술계의 거목이며 국민이 사랑하는 화가인 천 화백의 추모행사에 서울시가 적극 나서서 격식을 갖춘 예우를 해 주길 바란다’는 것과,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해 ‘금관문화훈장 추서를 취소한다는 문체부 결정의 재고를 요청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리고 ‘자식들 간의 분쟁이라거나 재산 분쟁으로 호도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이 덧붙여졌다.

1시간이 넘는 기자회견과 질의응답을 이끈 건 차녀 정희씨다. 때론 울먹이는 듯 감정을 억누르면서도 시종일관 차분한 목소리로 입장을 피력했다. 그동안 어머니를 둘러싼 숱한 의혹에도 제대로 나서지 않았던 것은 행여 자식들끼리 재산(천경자 화백의 유작)을 놓고 싸움을 벌이는 모습으로 비춰져 고인에게 누를 끼치게 될까봐였음을 강조했다.

침묵하던 유가족들이 공식석상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의문은 남았다.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가족간의 갈등이 대체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정희씨는 “언니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살아가는 이유로 삼아온 희생적인 딸”이라면서도 “언니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수년동안 지속해 유족들이 엄청난 고통을 당했다”고 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저희 자식들은 우애가 두텁고 서로 사랑한다”면서 “언니가 어머니 일에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나머지 형제들에게 고통스러운 일을 많이 안겨줬다”고도 말했다. 갈등의 원인은 밝히지 않으면서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특히 “언니는 왜 동생들이 어머니를 보러 오는 걸 반대했는가”라는 질문에 “(언니의) 이해할 수 없는 인격과 행동에 대해서 전문가가 아닌 이상 어떻게 분석할 수 없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이다”라며 혜선씨에게 화살을 돌렸다.

정희씨는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접하게 된 이후에도 언니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정희씨의 말대로라면 오래도록 풀지 못한 가족간의 갈등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까지도 그 갈등을 풀지 못한 게 됐다. 그렇다고 한 가정의 내밀한 속사정을 낱낱이 공개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가족 갈등 문제는 의문으로 남게 됐다.

또 하나는 향후 천 화백의 작품 소유권에 대한 문제다. 천 화백의 유언이나 유서가 없는 한 그의 재산에 대한 권리 행사는 남은 가족들에게 넘어가게 돼 있다. 

정희씨는 기자회견 후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본인은 어머니 작품 관리 문제에 대해서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향후 어떠한 권리도 행사할 생각이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아직 가족들끼리 상의해 본 적도 없기 때문에 이는 유족의 공통된 생각이라기보다 정희씨 본인의 뜻이 그러하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장남의 생각도 이와 같을까. 그는 유독 기자회견 내내 말이 없었다.

혜선씨나, 혜선씨를 제외한 다른 형제들 간 공방이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드러난 가운데 어느 쪽 말이 진실인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상태다. 재산 문제든 감정 문제든 유족들 간 갈등의 불씨는 당분간 쉽게 꺼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논란을 바라보는 세간의 인심은 이렇다. 장녀에 대해서는 “왜 어머니를 꽁꽁 숨겨두고 장례식조차 형제들을 부르지 않았는가”라는 것. 차녀를 비롯한 다른 자식들에 대해서는 “왜 그동안 제대로 갈등을 해결하지 않고 있다가 어머니를 쓸쓸하게 보냈는가”라는 것.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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