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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 천경자 유가족, “30일 서울시립미술관서 추모식” “유골 모신 장소라도 알려 달라”(기자회견 내용 정리)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고 천경자 화백의 유족들이 27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녀 이혜선씨를 제외한 장남 이남훈씨, 차녀 김정희씨, 둘째사위 문범강씨, 차남 고 김종우씨의 부인 서재란씨 등 네 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이혜선씨에게 “유골 모신 장소라도 알려 달라”고 했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에는 “천 화백에게 격식 갖춘 대우을 해달라”고 촉구했다. 또 천 화백의 유작 관리와 관련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회견문은 차녀가 읽었다. 다음은 기자회견 내용 정리.

“어머니가 8월 6일 별세했다는 소식을 지난주 10월 19일 들었다. 미국시간 18일에 접했다. 장녀 이혜선씨로부터 연락을 받은 바는 없고, 불행하게도 별세소식은 19일 어느 은행으로부터 유족들에게 천경자 화백의 은행계좌 해지를 요구하는 전화를 받고서야 알게 됐다. 갑작스런 비보와 특히나 8월 6일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모두 망연했다. 이 일을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시름에 젖어 있었다. 그러다가 천 화백 유골함이 서울시립미술관을 한바퀴 돌고 갔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그런 일이 언론에 알려지지 않고 가족은 물론 어머님을 많이 사랑했던 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채 있을 수 있는지 망연했다.

그리고 제일 가슴 아팠던 건 어떻게 시민들이 애도도 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하지 않고, 어머니가 평생 만나고 싶어했던 사람들을 인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고 쓸쓸하게 가게 했나. 이건 어머니 뜻에 맞는 일이 아니고, 우리가 부족한 자식들이지만 이것만은 아니다. 또 소식에 의하면 문체부가 어머니에게 금관훈장 고려했지만 (울먹) 납득하지 못할 두 가지 이유, 하나는 최근에 활동이 별로 대단하지 않았다는 거, 또 한 가지는 어머니의 사망을 둘러싼 의혹들이 있다는 이유로 수여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납득이 되지 않는다. 어머니가 91세인데 연로하신 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작품활동은 할 수 없는 건 당연한 거다. 자식들이 못나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것이 훈장 취소의 이유가 된다는 것에 대해 비탄을 느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저희가 어머니의 생애와 업적에 부합하는 정당한 대우를 받게 하기 위해 급작스럽게 기자회견을 열었다.

두 건의 건의사항 말씀드리겠다

서울시에, 별세하신 천 화백의 명복을 빌고, 사랑했던 모든 이들이 고별을 고할 수 있도록 저희 가족들이 늦었지만 추모식을 모시고자 한다. 천 화백의 예술에 대한 거룩한 뜻과 미술계 빛낸 거목의 추모행사에 서울시가 격식 갖춘 예우 해주길 바란다. 10월 30일 금요일에 거행하도록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청원 받아줬다. 행사는 유족 당사자가 하고, 미술관은 장소만 제공한다.

문체부에도 합당한 대우 건의한다. 두 가지 사항 납득하기 힘들다. 노년 건강 악화로 작품활동 못했고, 작년 여름에 어머니 생사 불분명하다는 시끄러운 보도 있었을 때 해명 못한 이유를 우리가 오늘 말씀드린다. 분명히 해명 드릴 수 있는 건 8월 6일 돌아가셨다. 마지막 본 건 4월 5일 뵀다.

가슴 아픈 가족사와 연관이 된다. 저희는 이렇게 자랐다. 부모님 중 한 분이 유명인이다보면 어려서부터 하다못해 성적이 떨어져도 엄마한테 누가 되는 거 아닌가, 누구누구 딸인데, 머리에 각인이 돼 있는데 아무리 언니가 어머니 일에 대해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나머지 형제들에게 고통스런 일을 많이 안겨줬어도 저희는 무조건 가만히 참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만히 참고 있으면 그것이 어머니에게 누가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언니와 다른 의견 내세운다거나 항의한다는 게 밖에 알려지면 흡사 가족 간의 분쟁처럼 흥미꺼리로 여겨질수 도 있는 것이고. 저희 어머니가 평소에 그랬다. 다른 문화인 가정에서 돌아가신 아버지 재산 놓고 가족끼리 분쟁 났다는 소식 접할 때마다 “정말 추접스럽다. 추접하다” 전라도 말로 굉장히 싫어하는 거 보고 자랐다. 그래서 어떤 잡음이라도 나가서 어머니에게 누가 될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십수년 세월이 지났다. 언니 심정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아프지만, 첫째는 어머니에게 누가 안되기 위해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제 신문 보도 보니까 가족 간 다른 자식들은 그림 팔기를 원한다는 사실과 다른 보도가 나갔는데, 정식으로 정정 요청하려고 한다.

지난 겨울 어머니 편찮으실 때 수차례 방문했다. 왜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만나지 못했나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차단 많이 받았다. 어떤 때는 미국 법에는 맘대로 허락없이 남의 자택 침입 못하게 돼 있다. 그 아파트 앞에서 경찰관 앞에서 체포될 뻔 했었고. 그런 걸 항의했을 때 그런 게 어떻게 돌아오겠는가. 그 생각만 하고 있었다.

명확한 해명이 없었던 데에는 다시 한번 사과를 올린다.

언니의 심정 이해하지만 이것은 너무했다. 어머니의 뜻과는 너무 다르다. 어머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했을 것이다. 참고 있던 저희가 기자회견을 해서 나누게 한 것이다.

어머니는 한국을 사랑했다. 한국에 오고 싶다는 말씀도 하셨고. 어머니 역경을 딛고 작품으로 자유혼을 불태운데 대해서 용기를 얻고 그런 대중이 많다. 그런 분들이 한분한분 와서 인사를 드릴 수 있도록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 저희의 큰 바람이다.

3대가 셋방살이 할 때도 그림을 했다. 화폭이 너무 커서 집에 세울 수가 없다더라. 자식같이 사랑했고 분신처럼 생각했는데. 서울시에서 정당한 예우를 갖춰주길 바란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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