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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김다은] 아, ‘무제한’의 고통!
도대체 하루에 몇 번이나 스마트폰을 들여다 본 것일까. 최근까지 2만원대 요금제를 사용해온 필자는 꼭 필요한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고, 간단한 인터넷을 검색하고, 이메일을 확인하는 정도로 휴대폰을 사용해왔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문자들이 잘 보이지 않아서 얼마 전 액정이 큰 스마트폰으로 바꾸게 되었다. 판매원이 권하는 대로 3개월간의 무제한 데이터 서비스를 받아 보기로 한 것이다.

데이터 사용이 무제한이라니! 우선 매주 가지고 다녀야하는 두꺼운 성경과 찬송가를 다운 받았고, 국어사전, 영어사전, 불어사전 등 필요한 사전들을 총망라했으며, 용량이 큰 사진 갤러리와 뮤직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게임들이 자동으로 업데이트되는 듯 했으며 계산기와 모든 사용 툴들이 들어차면서 작은 스마트 폰 안은 거대한 정보의 제국이 건설되는 듯 했다. 새 사용법을 익히느라 그리고 새 앱들이 펼치는 신기한 세계에 빠져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을 줄을 몰랐다.

문제는 1주일 쯤 지나면서 무제한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눈이 시려 눈물이 나기 시작했고 목과 어깨는 천근만근이었다. 한 달쯤 지나자 어떤 장소를 찾아갈 때 주변의 풍경을 기억하면서 길을 찾던 시선의 여유가 없어졌고, 시간이 날 때마다 학교 도서관이나 국회 도서관에 들러 관심 있는 책이나 신간을 골라 읽던 평소의 독서력도 약해지고 있었다. 간신히 책을 펼쳐도, 이미 지쳐버린 눈은 책을 들여다보길 원치 않았다. 더구나 매일 아파트 뒷산을 산책하면서 사색하던 오랜 습관도 허물어지고 있었다.

3개월간의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가 끝나기도 전에 이동 통신사를 찾아갔다. 무제한 사용했는데도 사용한 데이터의 용량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크지 않아서, 3만 원대의 요금제로 바꾸어 달라고 요청했다. 새 요금제가 시작되는 11월 초부터는 무제한의 서비스는 사라진다고 했다. 이상한 것은 새 요금제를 신청한 이후에 앞서처럼 스마트폰에 매달리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며칠이나 남아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자유’를 좋아하지만, 무제한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방종이 된다. 마찬가지로 무제한 데이터 사용은 외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이를 스스로 통제하지 않으면 역설적으로 자신의 자유를 침해당할 수밖에 없다. 논어에 나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은 영어로 “Too much is as bad as too little”이다. 오랜 세월 2만원대 요금제로 획일적인 과도한 정보에 휩쓸리지 않았던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무제한에서 자유로워진 뒤, 예전처럼 다시 산책을 나가게 되었다. 가을의 신선한 공기와 아름다운 색깔을 접한 두 눈과 두 발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가을이니 그동안 읽지 못한 책도 더 많이 사서 읽기로 했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 회자되고 있는 후성 유전학 책들을 보니, 유전자는 단순한 염기 배열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했는지에 따라 그 연출력이 달라진다고 한다. 스스로 창의적이거나 혹은 창의적인 후세를 갖기를 원하는 사람은 과다한 정보에 휘둘려 이를 DNA에 새기지 않는 편이 좋겠다. 창의적인 뇌는 데이터에 구속당하기보다 데이터를 구속하는 능력을 가진 자의 것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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