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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0914 플래그십스토어’에서 만난 박은관 시몬느 회장 … “3초백 같은 건 만들지 않는다”
- 국내 핸드백 제조업체 시몬느, 자체 브랜드 ‘0914’ 론칭
- 청담동 0914 플래그십스토어에서 박은관 회장을 만나다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가방 브랜드 하나를 런칭하기 위해 641일 동안 9번의 미술 전시를 열었다. 2013년 10월부터 최근까지 꼬박 2년 동안이다. 한국의 젊은 현대미술 작가들을 섭외해 가방을 주제로 매번 새로운 테마의 회화, 설치, 사진, 디자인, 영상, 퍼포먼스 작업을 선보였다. 이러한 장기 아트 프로젝트를 이끌어 온 건 미술관 관장이나 갤러리 대표가 아닌 국내 핸드백 제조업체 시몬느 박은관 회장(60)이다.
 
19일 청담동 도산공원 앞에 새롭게 문을 연 0914플래그십스토어 2층에서 박은관 시몬느 회장이 포즈를 취했다.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 8월 말 국내 미술품 컬렉터들의 사교모임 ‘호요미(好樂美)’에서다. 호요미는 사업가, 교수, 변호사 등 이른바 ‘아트러버(Art lover)’를 자칭하는 13인의 사회 저명인사들이 한달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만나 미술을 공부하고 프라이빗 경매를 진행하는 모임이다. 당시 수서 필경재에서 박 회장이 호스트가 돼 열린 호요미 모임은 벨기에 작가 쿤 반덴 브룩의 한국 개인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한 해 7조원 어치 가방(핸드백 소매가 연간총액기준)을 수출하는 제조기업 오너는 호탕하면서 소박했다. 허물없이 어울리고 무엇보다도 예술에 대한 사랑이 넘쳤다. 

바닷가 집을 콘셉트로 한 건물 내부는 고벽돌과 나무 화석, 대리석 등으로 장식돼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늑한 분위기를 풍긴다.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기업인이자 슈퍼리치, 그리고 이름 난 아트컬렉터인 박은관 시몬느 회장이 가방 브랜드 ‘0914’를 세상 밖에 내놨다. 플래그십스토어도 문을 열었다. 해외 럭셔리 브랜드 매장들과 아이코닉한 카페, 레스토랑이 즐비한 청담동 도산공원 앞이다. 3년 전, 단독주택으로는 역대 최고가로 법원 경매에 나왔던 매물을 제일모직을 제치고 287억원에 낙찰받아 “도대체 시몬느 박은관이 누구냐”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바로 그 건물이다.

19일 정식 오픈을 앞두고 0914플래그십스토어를 찾았다. VIP 오프닝을 2시간 앞둔 오후 4시, 박 회장과 함께 건물 곳곳 ‘숨은 보물찾기’에 나섰다.
건축가 조성익(홍익대학교 교수) 씨가 설계하고 건축집단MA(대표 유병안) 등이 내부 인테리어를 맡은 0914플래그십스토어는 시몬느, 0914, 그리고 박은관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오래된 성(城)처럼 고풍스럽고 아늑한 공간, 0914 플래그십스토어=지하 4층, 지상 4층으로 이뤄진 0914플래그십스토어의 전체적인 콘셉트는 바닷가 어느 마을을 연상케 하는 건축물이다. 지붕 모양이 층층이 쌓여 있는 입면에 각기 다른 크기의 창문에서 나오는 불빛들은 이 곳에 재미있는 스토리가 가득하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0914플래그십스토어는 박은관 회장을 꼭 빼닮았다. 청담동 럭셔리 브랜드 매장들이 대개 갖고 있는 위화감이 이 공간에는 없다.
수십년 된 고벽돌과 나무들로 꾸며진 공간은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늑한 느낌을 준다. 콘크리트 골조 마감은 그대로 노출돼 있고, 거친 질감의 나무벽체에 반광 브라운티니 대리석, 원목 마루 등으로 실내를 장식했다. 

0914플래그십스토어 내부.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가장 두드러지는 건 내ㆍ외부의 경계를 없앤 열린 공간이라는 점이다. 문턱 높은 여느 명품숍과는 다른 모습이다. 외부에서 지하 1층으로 골목길 같은 좁고 긴 계단을 통해 카페, 레스토랑, 남성매장이 이어진다. 

유럽의 오래된 와인셀러를 연상케 하는 지하 2층 공간에는 공방이 들어섰다. 장인들이 직접 가방을 만들고 수선도 해주는 곳이다. 바로 앞에 마련된 라운지룸은 고객들의 쉼터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아무나 들락거릴 법한 이 공간마저 고급스러운 가구와 오브제들로 채워 놨다. 박 회장은 “시몬느는 안 하면 안했지 할거면 제대로 한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지하 3층에는 그동안 백스테이지전에서 선보였던 현대미술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압권은 박 회장이 헤럴드경제에 최초로 공개한 지상 4층 펜트하우스다. VIP 미팅이나 호요미 정기모임 등을 위해 마련된 사적인 공간이다. 워터가든이 보이는 미팅룸 공간 위는 너와 지붕을 이었다. 빈티지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지난 2년 동안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시몬느 본사 옥상에서 너와 재료로 쓰일 나무들에 비바람을 맞히고 세월의 켜를 쌓았다. 프라이빗 파티 공간으로 꾸민 옥상정원은 갈대 숲으로 둘러싸여 장관을 이루고 있다. 지하 4층부터 지상 4층까지 0914플래그십스토어는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만드는 것에 대한 존중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프라이빗 공간인 4층 펜트하우스에서 포즈를 취한 박 회장. 옥상정원이 갈대밭으로 둘러싸여 있어 운치를 더한다.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아트컬렉터 회장님, 제품과 작품의 경계를 없애다=19일 저녁 6시 30분부터 시작된 0914플래그십스토어 VIP 오프닝에는 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미술계 인사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호요미 멤버들과 함께, 우찬규 학고재 회장, 표미선 표갤러리 회장 등이 행사장을 찾았고, 세계적인 패션 저널리스트 수지 멘키스와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씨도 참석했다.
박 회장은 10월 초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 호요미 정기모임도 빠지면서 최근까지 이 곳에 매달렸다. 공간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0914가 F/W 컬렉션으로 선보인 제품은 총 630여종이다. 한 시즌 컬렉션으로는 방대한 양이다. 박 회장은 0914 컬렉션과 함께, 수년간 세계 각국에서 모아 온 회화와 조각 수집품들, 국내ㆍ외 작가들에게 제작 의뢰해 가져다 놓은 작품들로 전체 공간을 채웠다. 그림, 조각 등 소장품만 40~50점. 전체 소품은 300여점에 달한다. 

아트피스들은 언뜻 보아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제품과 작품의 경계를 없앴기 때문이다. “제품은 죽고 작품만 돋보이는 게 아니라 작품이 공간에 자연스럽게 묻어나도록 연출했다”는 박 회장의 의도대로다.
데이비드 걸스타인의 꽃 조각이 1층 후미진 구석 공간에 자리잡고 있고, 1층에서 2층까지 연결된 메인 벽면엔 0914 가방들 사이로 국내 작가 박승모, 이진용의 작품들이 교묘히(?) 섞여 있다. 지하 2층 공방 앞에 놓여진 재봉틀 하는 여인 조각상은 박승모 작가가 1년 반에 걸쳐 제작한 것으로, 0914플래그십스토어의 시그니처 같은 작품이다. 특히 4층 펜트하우스에는 철판산수화 조환 작가의 부조 작품이 운치를 더했다. 

이 밖에 한국작가 홍경택과 일본작가 토시유키 코니시의 페인팅, 러시아작가 블라드미르 쿠쉬의 조각작품 등도 숨은 보물이다.
파리 인테리어 박람회 ‘메종오브제’ 등에서 ‘득템’해 온 수십만년 전 나무 화석으로 된 테이블과 의자들, 장미나무로 만든 입체 조형물까지 안목 높은 아트컬렉터 회장님의 취향은 ‘럭셔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철학있는 공간을 완성했다. 

이름난 아트컬렉터인 박 회장은 4층 워터가든 앞 벽면을 조환 작가의 철판산수화 작품으로 채웠다.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우리가 추구하는 건 독창성…3초백 같은 건 만들지 않는다”=“장미 정원에 있는 것 같군요(I’m in the rose garden).”
저녁 오프닝 무대에 오를 런웨이 모델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탄 박 회장은 스스럼없이 먼저 영어로 인삿말을 건넸다. 자유분방한 것 같다고 묻자 “이 직업이 좋은 게 제너레이션갭(Generation gap)이 없고 60~70%가 여자들이어서 여자를 대하는 데 쑥쓰러움이 없다”고 말했다.
코치, 마크제이콥스, 마이클코어스 등 명품백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제조업으로 30여년 노하우를 쌓은 시몬느가 처음 내놓은 자체 브랜드 0914는 고급 원단에 유니크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가격대도 1000만원대 특정 고가라인을 제외하면 40만~100만원 선이 대부분이다. 가격경쟁력이 탁월하다. 박 회장은 “원가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게 낮은 소매가지만, ‘프롬 더 팩토리 투 더 컨슈머(From the factory to the consumer)’를 할 수 있는 시몬느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0914의 디자인은 뻔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디테일이 많은 디자인도 있다.
“정제되지 않고 투박하면서 소박한 것, 러스틱(Rustic)한 것이 0914의 콘셉트다. 대신 브러싱(Brushing)이라던지 그라인딩(Grinding), 스티치(Stitch) 같은 수공예 작업에 방점을 뒀다. 기존의 럭셔리 브랜드는 다 비슷비슷하다. 우리는 ODM을 오랫동안 해 왔기 때문에 기존 디자인을 할 수가 없다. 우리만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독창성을 가장 중요시한다. 3초백 같은 건 만들지 않는다. 스타일마다 에디션도 10개 안팎이다. 모든 제품이 한정판인 셈이다.”

박 회장에게 0914 런칭 전까지 장기 아트프로젝트를 진행한 이유를 물었다. 그는 “아티스트들과 상품으로 콜라보레이션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이 생각하는, 가방에 대한 정의와 표현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고, 그들로부터 나도 몰랐던 신선한 아이디어들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방에 대한 박 회장의 철학은 확고했다. 앞으로 시몬느와 0914를 어떻게 이끌고 나갈 것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가방은 담는 기능, 실용성이 가장 중요하다. 삶의 가치를 기록하고 담아내는 것. 나의 희노애락을 담아내고 내 삶의 여정을 함께 하는 동반자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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