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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ADERS CAFE] 믿음으로 따라간 붓끝·칼끝…일상에 평안을 더하다
그림일기장같은 33곳 성당 스케치역사·사람들 얘기더해 따뜻함 선사
그림일기장같은 33곳 성당 스케치
역사·사람들 얘기더해 따뜻함 선사

원불교경전 속뜻 새긴 판화 203점
간결한 선 몇개로 삶에 깊은 울림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이라는 고은 시인의 시구처럼, 자세히 들여다보고 관찰하면 평소 지나쳤던 성당의 아름다움이 더 잘 느껴진다.그래서인지 방문 전에는 늘 설레는 마음이었으며 돌아오는 길에는 성당그림을 담은 캔버스가 귀중한 선물인 양 뿌듯하고 기뻤다”‘(성당을 그리다’에서)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신을 발견하고 섬기는 사람이다. 둘째는 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신을 추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셋째는 신을 발견하려고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수학자 파스칼이 수상록 ‘팡세’에서 한 말이다. 

성당을 그리다/ 윤영선 지음/ 인터웰

윤영선 강동대 실내디자인과 교수가 펴낸 ‘성당을 그리다’는 신을 찾아가는 그만의 여정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냉담자로 지내던 그가 다시 신 앞으로 나오게 된 건 40대 중반에 찾아온 개인적인 아픔과 내면의 갈증에서였다. 그는 캔버스를 일기장 삼아 소박한 우리 성당을 그리며 지나온 삶과 성당에 얽힌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윤 교수가 그려낸 우리 성당은 문화유산으로 기록된 전국 33곳. 사진으로 담아낸 성당의 모습은 많지만 그림으로 한 장 한 장 담아내기는 처음이다. 성당의 그림은 거칠지만 수수하고 정겹다. 무엇보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작가로서 모자람을 느끼며 몇 번이고 성당을 다시 찾아 정성껏 그리는 모습은 기도처럼 간절해 보인다. 작가의 시선은 단지 성당이란 사물에 머물지 않는다. 성당을 만들고 가꾼 사람들, 예배의 공간을 찾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헤아린다. 나아가 서양의 건축양식이 어떻게 전통마을과 어울려 모습을 갖추게 됐는지 역사성과 시대성에도 눈을 돌린다. 이런 마음은 한 번 쓱 보고 날랜 손으로 뚝딱 담아내는 그림과 다르다.

지난해 가을 이맘 때 작가는 ‘한국 천주교 순교 1번지’ 전주의 전동성당을 찾아 마음에 품어온 일을 실행에 옮긴다. 분주하게 사람들이 오가는 사이에서 3시간 동안 꼬박 성당을 스케치하며 그는 이 작업이 이어질 것을 예감한다. 그리고 지난 봄, 다시 전동성당을 찾았다. 비잔틴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된 이국적인 성당 위, 그의 시선은 새털같은 구름으로 솟은 성당의 첨탑에 오래 머물렀을 듯하다. 성당 옆 나무는 하늘을 향해 불꽃처럼 춤을 추고 있다. 디테일보다는 굵직굵직한 선들로 구성한 성당의 모습은 곧고 정직해 보인다. 매산과 어우러진 봄의 감곡성당 모습은 서로 오래 지켜봐온 마음이 그림에 푹 담겼다. 그림과 함께 써내려간 글은 성당의 역사 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온 이야기 등이 더해 그림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우연히 만난 할머니의 옛 성당을 잘 그려드리고 싶어 다시 담아낸 아련한 가실성당, 단풍으로 물든 아산 공세리 성당, 1909년 한옥으로 지은 어은공소 성당, 기와를 얹은 고딕양식의 익산 나바위성당 등 성당 그림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우리 성당이 이렇게 예쁜가 싶다. 이 땅의 천주교 역사와 위로가 필요한 오늘을 사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도 함께 겹쳐 보인다.

네가 그 봄꽃 소식해라/ 이철수 지음/ 문학동네
명료한 선 하나로 깊은 얘기를 들려준 판화가 이철수는 지난 3년 간 원불교 경전을 수없이 곱씹으며 그 뜻을 목판에 새기고 종이에 찍어내는 일을 해왔다. ‘네가 그 봄꽃 소식해라’는 혼돈의 시대에 ‘마음개벽’을 화두삼아 그린 연작판화집이다. ‘함께 타는 자전거’란 작품은 두 개의 바퀴 위에 두 개의 안장이 연결돼 있다. 바퀴를 연결하는 체인과 안장을 연결한 선은 마치 산위에 새가 앉은 모양처럼 보인다. 그 안에서 세상은 평화롭고 안정돼 보인다. 작가는 이를 ‘자리이타’라 부른다.

꼭지가 싱싱한 큰 수박덩이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그림도 있다. 족히 수킬로그램은 돼 보이는 수박이 감당하기 버거워 보이는 가느다란 꼭지에 매달려 있는 게 새삼 눈에 들어온다. 꼭지는 또 어느 줄기에 온 힘을 다해 매달려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모든 꼭지들의 일념을 보아라! 보았거든, 그 자리에, 그렇게 앉으라!”라고 글을 적었다. 목없는 수행자의 모습을 그린 판화에는 ‘조심’이란 제목이 붙었다. “사람마다 각각 자기 성질만 내세우고 저 사람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정한 동지 사이에도 촉이 되고 충돌이 되기 쉽나니…사람이 꼭 허물이 있어서만 남에게 흉을 잡히는 것이 아니니…”라며, 스스로를 경계하는 마음을 담아냈다. 203점의 판화는 당대의 화두를 손에서 놓치 않았던 작가의 정신과 사유의 산물로 여겨진다. 특히 일상을 수행의 공간으로 제시한 그의 수도자세는 ‘테이크 아웃 선’이란 작품에서 빛난다.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듯 수행도 일상에서 가능하다는 얘기다. 달의 중심을 향해 우뚝 솟은 바위 그림 ‘좌선’은 작가의 일심이 소리 없이 담겼다. 광고인 박웅현의 ‘해설’은 자칫 특정 종교의 선전으로 기울 무게중심을 잡아주며, ‘쾌도난마’, 촌천살인의 글과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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