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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문호진] 영조와 ‘야신’ 김성근
“고수(鼓手)의 추임새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1990년대 국민적 유행어인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 를 퍼뜨린 故 박동진 명창은 완창에 8시간 걸리는 춘향가를 쉬지않고 부를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주저앉고 싶을때 마다 잘한다! 그렇지! 하며 흥과 신명을 북돋워주는 고수 덕에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었다는 고백이다.

김성근 감독이 마침내 1300승의 고지를 밟았다. 김 감독이 만든 신화는 비주류가 주류를 꺾고,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다는 반전의 쾌감을 주는 것이어서 강렬하다. 재일동포 출신으로 ‘반(半)쪽바리’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중하위권 팀 사령탑을 전전했지만 오로지 실력으로 비난을 찬사로 바꿔놓았다. 한계상황에 봉착할 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이기는 야구’를 칭송하며 ‘야신!’ 추임새를 넣어준 팬 들의 성원일 것이다. 김 감독이 만년골찌 한화 이글스의 메시아로 부름받은 것도 팬들의 ‘상향식 공천’ 덕분이다.

김 감독의 한화 이글스 전반부는 야신의 면모가 빛났다. 시즌 중반까지 가을야구가 가능한 4,5위를 달렸다. 다 진 경기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역전승을 일궈내는 극적 재미가 중독적이라며 ‘마리한화’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러나 후반부는 차갑게 식었다. 권혁, 박정진, 송창식에 편중된 마운드와 보직 파괴로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변칙적 로테이션과 혹사는 투수들의 구위를 떨어뜨렸고 한화의 성적은 점점 떨어졌다. 승리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팀을 망치고 선수생명도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비판이 다시 머리를 들었다.

강연 무대에도 자주 서는 김 감독은 비주류가 핸디캡을 극복하려면 남들과 다른 길을 택하고, 남들보다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며, 남들보다 강하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훈련방법과 선수기용 등이 극단으로 흐르는 이유다. 그러나 현대 야구의 흐름은 이제 김성근식 야구와는 다른 길로 가고 있다. 감독 1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야구는 한계가 뚜렷하다. 마라톤 같은 레이스를 단거리 경주 처럼 하면 뒷심이 달릴 수 밖에 없다. 상위권인 삼성과 NC, 넥센은 모두 정교하고 안정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김성근식 리더십의 그늘을 보면서 오버랩되는 인물이 영화 ‘사도’의 영조다. 그는 불혹의 나이에 금쪽같은 자식을 얻었다. 생후 두 돌도 되지 않았을 때 세자로 책봉할 만큼 사랑했다. 영조는 세자에게 공부에서나 예법에서나 완벽을 강요했다. 이복형 경종의 급사로 뜻하지 않게 왕위에 오른 그는 ‘서자 콤플렉스’ 탓에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였다. 노론과 소론간의 당파싸움이 첨예했던 시대적 상황에서 임금이 신하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학식에서 꿀리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그런 영조의 눈에 무예나 그림에 한눈을 팔며 시간을 허비하는 사도세자는 ‘죽일 놈’이 된 것이다. 결국 사도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뒤주가 아니라 아버지의 트라우마와 집착이라는 은유를 영화는 암시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성공이나 성취에 대한 조급증은 화를 부른다. 콤플렉스 덩어리 였던 영조나 김 감독은 분명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개인적 특성을 무시한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리더십은 때로 비극적 결말을 낳는다. 사도는 “공부와 예법이 이 나라 국시”라는 아버지에게 “예법이 있기 전에 그 마음을 보아야 한다”고 일갈한다. 김 감독의 리더십에 선수 개개인의 마음을 읽는 ‘소프트 파워’가 접목된다면 그렇지! 라는 팬들의 추임새가 따라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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