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Travel] ‘박제’된 고대도시 요르단을 가다
[헤럴드경제(요르단 글ㆍ사진)=김아미 기자] 때는 1938년. 헨리 존스 박사(숀 코너리)와 헨리 존스 주니어, 그러니까 우리에겐 인디아나 존스(헤리슨 포드)로 알려진 존스 박사의 아들은 하타이 공화국 알렉산드레타(지금의 터키 남부)의 초승달 계곡으로 모험을 떠난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요한복음 4장 14절에서 인용)’. 석판의 메시지대로 예수의 성배를 찾아 사막을 건너고 산을 가로 질러 도착한 곳은 바로 ‘알 카즈네(Al Khaznehㆍ베두인어로 보물창고라는 뜻)’.

길이 1.5㎞에 이르는 암벽 사이 좁은 협곡이 끝나는 지점, 황금빛 위용을 뽐내는 신전 건축물 알 카즈네에서 성배를 손에 넣으려는 고고학자 부자(父子)와 나치 일당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3부 ‘최후의 성전(1989년작)’이다. 영화의 배경이었던 요르단 페트라(Petra)는 이후 세계적 관광 명소가 됐다. 

와디럼 사막에서 한 관광객이 홀로 지나는 낙타와 마주보고 섰다.

요르단은 개인적으로는 죽기 전 가보고 싶은 세계 여행지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특히 사막 여행은 팍팍한 도시의 삶에 갈증을 느낄 때마다 더욱 간절해졌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낙타를 타고 모래 바람을 가로지르는 상상. 밤이 되면 은하수가 쏟아져 내리는 지평선 어느 쯤에 천막을 치고 밤새 독주와 아르길라(아랍 물담배)를 나누는, 이상과 망상 가운데 상상의 배경에는 꼭 사막이 있었다. 

낙타를 타고 와디럼 사막을 투어하는 관광객들.

이 모든 상상을 실현시켜 줄 것 같은 열사(熱砂)의 땅, 아라비아 반도의 고대도시 요르단으로 떠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페트라여, 요르단이여, 기다려라. 조선의 인디아나 킴이 간다.”

도시 전체가 유물ㆍ유적…암만 시타델=중동의 모래바람을 뚫는 상상은 여행 시작부터 현실로 닥쳤다. 

한낮 기온이 섭씨 40도를 넘는 9월 초 요르단. 퀸알리아 공항에서 수도 암만의 다운타운까지 가는 내내 눈 앞에 펼쳐진 건 황톳빛 모래도시였다. 이틀 전 리비아 사막으로부터 고온을 동반한 모래폭풍이 불어와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지를 뒤덮었다고 했다. 거대한 모래폭풍은 가뜩이나 누런 색깔을 띠고 있는 도시를 더욱 누렇게 만들었다. 길거리 마른 나뭇가지들은 아예 잿빛으로 죽어가는 듯 보였다. 눈은 뻑뻑하고 입안은 시종일관 꺼끌거렸다. 푸른 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9월의 요르단 암만은 그래서인지 더욱 고대 도시의 아우라를 짙게 뿜어냈다. 

시타델에서 내려다 본 암만 시내.

요르단은 도시 곳곳이 고고학 박물관을 방불케 했다. 요르단 북쪽에 위치한 수도 암만 인근부터 남쪽 아카바(Aqabah)까지 BC, 혹은 AD 몇 세기에 세워졌다는 유물 유적이 도처에 널려 있다. 특히나 유럽 역사의 근간을 이루는 다양한 종교 유적지들은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그대로 끌어안은 채 남아 있었다. 

시타델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우마야드(Umayyad) 모스크’.

고대 요르단 지도는 암몬, 모합, 에돔으로 크게 나뉜다. 기독교 성경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그 딸들과 근친하여 나은 아들 중 하나가 암몬(Ammon)이고, 그 암몬족의 수도가 바로 암만이었다. 헬레니즘 시대 필라델피아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로마의 10개 위성도시(데카폴리스) 중 하나로 번창했다.

암몬성 유적지 시타델(Citadel)은 암만의 대표적인 고대 유적지다. 시타델 언덕에 오르니 킹압둘라스트리트 너머 로마식 소극장 오데온(Odeon)과 AD 2세기 건립된 로마 원형극장, 이슬람 모스크까지 암만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시타델에서 만난 세 명의 요르디니언(Jordanian) 소녀들. 웃는 모습이 예뻐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까르르 웃어 제치며 포즈를 취해 주더니 아랍어로 뭐라 얘기하곤 떠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욕이다. 언어가 안 통하는 상대에게 욕으로 장난치는 건 동서고금이 같은 모양이다.

로마 상인들의 흥정소리 생생한 제라시=암만 북쪽으로 45㎞. 제라시(Jerash)로 향했다. 역시 로마 데카폴리스 중 하나였던 도시다. ‘동양의 폼페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그리스 로마 문명이 잘 보존돼 있다. 

제라시 유적들.

제라시는 기독교 성경에서의 ‘거라사’다. 예수가 군대 귀신 들린 거라사인을 치유했다는 누가복음 8장 26절의 기록이 바로 이곳 제라시에서 나왔다.

제라시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적지가 혼재돼 있다. AD 6세기경에는 기독교가 융성했고, 이후 이슬람교도에 의해 점령됐다가 8세기경 지진으로 폐허가 됐다. 1806년 독일인에 의해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발굴작업이 계속되고 있는데, 현지인 얘기로는 아직 20% 정도 밖에 발굴이 안됐다고 한다. 더 많은 고대 유물과 유적이 아직 발밑에 남아 있을 것을 생각하니 움직이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제라시 유적지 ‘로만 포럼(Roman Forum)’. 모양이 계란을 닮았다 해서 계란 광장(Oval Plaza)라고도 불린다.

AD 2세기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돌아가는 아드리안 장군을 기념해 만든 개선문을 시작으로, 필라델피아게이트, 다마스쿠스게이트 등이 솟아 있다. 56개 기둥으로 만들어진 광장, 5000석 규모의 로마식 극장과 함께 제우스 신전, 아르테미스 신전 등 그리스 유적지와 비잔틴 교회 유적지가 곳곳에 펼쳐져 있다. 열주(列柱) 사이로 움푹 들어간 흔적은 이곳에서 상업행위가 성행했음을 짐작케 한다. 로마 상인들의 흥정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제라시에서 만난 피리 장사꾼 하나. 젊은 베두인(Bedouinㆍ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일대의 아랍계 유목민) 총각이 1JD(요르단디나르ㆍ약 1.4USD)짜리 피리를 공짜로 주겠다며 사진을 찍자고 다가온다. 사진 몇 장 더 찍자며 다가오는 이 총각. 나쁜 뜻은 없어 보이는데 이상하게 끈적한(?) 느낌이다. 요르단 사람들은 동양인 관광객들과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데, 혹시라도 불쾌하다고 느꼈을 땐 단호하게 “노(No)” 해야 한다는 게 현지 가이드의 충고다.

박제된 고대도시 페트라=암만 남쪽으로 260여㎞.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7대 불가사의 페트라가 있다. 지명은 고대 그리스어 ‘바위(Petros)’에서 비롯됐다. 예수의 제자 베드로와도 어원이 같다.

페트라는 요르단 남서부 내륙 사막지대 해발 1000m쯤 되는 바위산에 유목생활을 하던 나바테아인(Nabateaean)이 기원전 7세기 무렵 건설한 고대 도시다.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 연안까지 2500㎞ 향료길을 잇는 관문이기도 했다.

고대 아라비아 무역로의 중심지였던 페트라는 AD 2세기 로마에 함락된 이후 동서무역로의 중심이 비단길로 옮겨가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옛 로마 극장 관중석에 앉아 있는 관광객들.

따각따각 마차 끄는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지는 좁은 협곡을 따라 20여분 걷다보니 마침내 눈에 익은 황금빛이 꿈인 듯 비친다. 알 카즈네다. 성배를 삼켜버린 알 카즈네 앞에서 존스 박사가 말했었다. 영생의 길로 안내할 성배 대신 얻은 건 ‘빛(Illumination)’이라고. 아마도 영원히 빛날 저 황금빛 신전을 두고 한 말인가 싶다. 

페트라 협곡을 지나는 관광객들.
협곡 끝에서 황금빛 신전인 알 카즈네가 보인다.

로마 병정처럼 전투복을 입은 두 사내가 알 카즈네 입구를 지키고 있다. 신전 안은 출입금지다. 페트라 투어의 시작은 사실상 여기서부터다. 로마 노천극장과 숙소, 무덤, 신전, 교회터 등을 지나며 옛 도시의 끝까지 걷고 또 걷는다. 

인디아나 존스 이후 페트라에는 ‘동키(Donkey)꾼‘들이 생겨났다. 당나귀, 조랑말, 낙타 등을 태워주는 이들이다. 마치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잭 스패로우처럼, 검은색 눈화장을 짙게 한 베두인들이 협곡 입구에서부터 쫓아온다. 투어가 끝나고 돌아나갈 때를 노리는 것이다. 지친 동키의 등에 올라타 그랜드캐넌 언덕으로 오르니 왕가의 무덤들부터 대신전, 열주거리, 로마극장까지 고대 도시의 풍경이 느린 화면으로 재생된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처럼 눈화장을 한 페트라의 베두인 동키(Donkey)꾼들.

삶에 갈증날 땐…떠나라 사막으로=붉은 사막 ‘와디럼(Wadi Rum)’은 요르단 최고의 볼거리다. 볼거리가 많아서가 아니라, 볼거리가 아무 것도 없는 드넓은 광야여서 그렇다. 페트라에서 남쪽으로 60㎞ 쯤 더 내려가면 있다.

와디럼 사막캠프로 가는 길. 반대편 도로로 버스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나간다.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로 이슬람 성지 순례를 떠나는 버스들이다. 마침 하지(Hajiㆍ이슬람력으로 12월 7∼12일)를 앞두고 있었다. 

와디럼 사막으로 가는 길 모래 폭풍을 만났다.

급작스러운 모래폭풍이 불었다. 모래폭풍 한 가운데를 뚫고 들어간다는 건 상상처럼 낭만적이지 않았다. 영화 ‘매드맥스’처럼 감탄을 자아내는 그림도 아니었다. 오히려 공포 그 자체였다. 30만㎞를 달린 폐차 직전의 군용 미니버스가 누런빛에 딱 갇혔다. 사방 경계가 사라져 도로 위를 달리는 것인지 공중으로 날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가 됐다. 그러기를 약 5㎞쯤. 시야가 걷히고 드디어 붉은 사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배경이 된 와디럼 사막 역시 유네스코 자연 및 문화 복합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협곡과 절벽, 동굴 등이 사막 경관을 이루는 가운데, 1만2000년 전 암각화가 사암 여기저기 새겨져 있다.

사막 곳곳에는 베두인 캠프들이 자리잡고 있다. 모래 위에 천막을 치고 침대를 놓아 숙박을 할 수 있게끔 만든 사막의 ‘호텔’들이다. 공동 샤워시설도 갖췄다. 모닥불을 가운데 놓고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밤새 이야기꽃을 피운다. 낭만적인 곳이다. 단 건조한 사막기후나 식사시간에 불어닥치는 모래바람도 괜찮다면 말이다.

사막 한 가운데 캠프.

와디럼의 최대 액티비티는 캠프에서 캠프로 이동하는 지프 투어다. 모래 구릉을 달리는 재미가 매드맥스의 스릴 못지 않다. 낙타에 올라타 석양을 등지고 그림 속 주인공이 되는 건 일단 구경만 하는걸로. 

아라비아 로렌스의 배경이 된 와디럼 사막을 달리는 지프차.

이슬람 국가인 요르단에 독주 같은 건 당연히 없다. 관광객들 상대로 술 장사를 했더라면 떼돈을 벌 수도 있었으련만, 베두인 캠프에서는 절대로 술을 팔지 않는다. 종교적 신념 때문이다. 

와디럼 사막 한 가운데 기차길이 남아 있다.

대신 은하수가 있다. 사막 지평선 끝으로 별이 쏟아진다. 별빛에 취한다. 메마른 사막이 삶의 갈증을 해갈해주는 순간이다.

amigo@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