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뒤로 대나무 숲이 비친다. 공기 흐름에 따라 이따금 흔들리는 댓잎이 고요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대나무는 철을 깎아 만들었다. 그림자로 형상화 된 대나무 숲 풍경이 말 그대로 수묵화 같다. 한국화가 조환(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 교수)의 작품이다.
작가는 1980~1990년대 수묵 인물화를 그리다가 2000년대부터 철을 재료로 작업하고 있다. 붓을 운용하는 대신 강판을 갈고 용접해 한국적 정서와 정신성을 표현하고 있다. 먹이 지니는 깊이를 철판의 양감과 무게감으로 대신해 사군자나 산의 모습을 형상화 한 이른바 ‘철판산수’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한국화의 지평을 확장했다.
그는 작업 노트에서 밝힌 것처럼, 입력된 도식에 맞춰 레이저로 깎는 것이 아닌, 손의 감각에 의지해 철을 깎는 방식으로 오브제를 완성했다. 그 단순하고도 즐거운 노동의 대가로 얻은 것은 손 발 여기저기 ‘불침(불똥)’ 자국이다.
조환 초대전이 오는 10월 16일까지 재단법인 한원미술관(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에서 열린다. 전시에서는 대형 대나무 설치 작업을 포함해 총 18점의 신작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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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Untitled, 혼합매체, 290×578㎝, 2015 [사진제공=한원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