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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트홀릭] 한국화의 재발견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철판으로 대나무 잎을 무수히 자른다. 모양새가 제각각이다. 바야흐로 손을 예찬한다. 이는 흉죽지죽(胸竹之竹)이 아니다. 완성의 전체를 고려하지 않으려 한다는 게 옳은 말일 게다. 작업하는 자의 주관적인 의식이 고집부리지 않는다. 단순하고 즐거운 노동이다. 붙였다 떼었다를 반복한다. 작업이 얼추 된 것 같다. 상처투성이인 물건을 작업장 구석에 던져 놓는다. 자연스레 비를 맞고 이슬을 맞으며 부식되어 간다. 나는 가끔 가서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세월의 흔적이 더께처럼 쌓인다. (중략) 훗날 그 보잘 것 없는 물건을 벽에 걸고 빛을 비추면 벽과 물건 사이의 공간에서 그림자가 생긴다. 그 그림자와 물건은 중첩되는 또 다른 선들을 만들어 내면서 서걱거리는 바람 소리를 들려준다. 한 폭의 수묵화 같이 보인다. 아니, 그 물건이 오롯이 실체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의 작업이 비로소 생성되었다.” - 조환 자서(自序) 중

스크린 뒤로 대나무 숲이 비친다. 공기 흐름에 따라 이따금 흔들리는 댓잎이 고요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대나무는 철을 깎아 만들었다. 그림자로 형상화 된 대나무 숲 풍경이 말 그대로 수묵화 같다. 한국화가 조환(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 교수)의 작품이다. 

작가는 1980~1990년대 수묵 인물화를 그리다가 2000년대부터 철을 재료로 작업하고 있다. 붓을 운용하는 대신 강판을 갈고 용접해 한국적 정서와 정신성을 표현하고 있다. 먹이 지니는 깊이를 철판의 양감과 무게감으로 대신해 사군자나 산의 모습을 형상화 한 이른바 ‘철판산수’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한국화의 지평을 확장했다.

그는 작업 노트에서 밝힌 것처럼, 입력된 도식에 맞춰 레이저로 깎는 것이 아닌, 손의 감각에 의지해 철을 깎는 방식으로 오브제를 완성했다. 그 단순하고도 즐거운 노동의 대가로 얻은 것은 손 발 여기저기 ‘불침(불똥)’ 자국이다.

조환 초대전이 오는 10월 16일까지 재단법인 한원미술관(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에서 열린다. 전시에서는 대형 대나무 설치 작업을 포함해 총 18점의 신작을 볼 수 있다.

amigo@heraldcorp.com



*사진 : Untitled, 혼합매체, 290×578㎝, 2015 [사진제공=한원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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