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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정재욱] ‘헬 조선’ 탈출하기
“대한민국은 지옥이다”.

적어도 일부 청년들은 우리 사회(조선)에서 살아가는 것이 마치 불바다 지옥(地獄, hell)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헬 조선’, 올들어 온 라인을 달군 가장 핫한 단어가 아닌가 싶다. 한 빅데이터 분석업체 조사에 의하면 이달 초까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헬 조선’이 언급된 게 10만건을 훨씬 넘었다고 한다. 아무리 ‘노오~력’해도 높은 벽만 절감할 뿐 되는 게 없다는 청년들의 상실감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 가늠이 간다. 변변한 일자리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고, 미친 전세값에 결혼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3포’, ‘5포’ 청년들이 부지기수니 그럴만도 하다.

청년들이 지옥을 헤매고 있다면 이들을 구하는 건 기성세대들의 몫이다. “왜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느냐”고 다그칠 일은 아니다. 청년들이 마주한 거대한 벽은 더 이상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불투명한 경제 환경, 불합리와 모순으로 가득한 사회 구조 등 근원적 난제를 풀어야 해결될 일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일궈낸 유일한 국가’라는 평가를 훈장처럼 달고 있지만 어쩌면 그 후유증을 청년들이 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0년 가까이 2만달러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국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도 반드시 청년들을 구해야 한다.

때 마침 근육질 전사들로 구성된 ‘지옥 구조대’가 속속 결성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주도로 엊그제 시작된 ‘청년희망펀드’가 우선 이를 자처하고 있다. 정부 예산과 정책만으로는 청년실업 극복이 난망하니 별도의 우회로를 마련하겠다는 전략이다. 새정치연합도 ‘0%’ 학자금 융자 금리 등 ‘청년희망 종합대책’로 대응하며 뒤따르고 있다. 집안 분란으로 내 코가 석자지만 수권능력을 보여줘야 하니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요 대기업들은 고용 확대 방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사회공헌기금을 활용한 청년지원 프로그램들도 이미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정도로 청년들이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대통령과 각료들이 펀드 모금에 앞장서고, 정치권의 포퓰리즘적 구출 시늉으로는 어림도 없다. 정부와 기업을 포함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무한 책임을 느끼며 기꺼이 기득권을 내려 놓는 진정성을 보일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개혁이다. 노사정이 어렵사리 합의안을 도출한 노동시장 구조개혁도 따지고 보면 ‘청년 실업’ 해소에 방점이 찍혀있다. 개혁에는 가혹한 고통이 따른다. 정규직의 특권을 과감히 양보하고, 교사와 공무원의 철밥통을 양보하는 그런 고통을 이겨내야 우리 청년들은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무엇보다 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이 그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100년전쟁 당시 영국왕 에드워드 3세에 프랑스 깔레를 점령한 뒤 이 도시 명망가 6명의 목숨을 내놓으면 나머지 주민들의 살려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깔레의 최고 부자 생피에르를 비롯해 귀족들이 아무런 조건없이 죽음의 길을 자청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된 깔레의 6의인(義人)이다. 사회지도층의 사회적 책무는 시간이 지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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