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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죄의 재구성] 박경위가 권총을 겨눈 순간, ‘장난’이 아니었다
[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이런 XX놈들 나 빼고 맛있는 거 먹냐. 다 없애야겠다. 일렬로 서.”

서울 구파발 검문소 생활관에서 간식을 먹고 있던 의경들을 향해 박 경위(54)가 흥분해 소리를 질렀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 경위는 자신의 권총집에서 권총을 빼들고 방아쇠에 검지 손가락을 넣었다.


처음엔 놀라서 멀뚱히 쳐다보던 박 상경(21)등 의경 3명은, 박 경위가 총구를 좌우로 겨누고 다가오자 공포감에 휩싸였다.

“살려주세요”, “그러지 마세요.”

박 상경과 동료 의경들은 소리치며 생활관 내에서 각기 몸을 피했다.

동료 의경 둘은 관물대 쪽으로, 박 상경은 침대 쪽으로 몸을 피했다.

의경들은 ‘설마 진짜 쏘지는 않겠지’라고 믿고 싶었다. 박 경위가 이전에도 의경들에게 총을 겨누는 일이 몇번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박 경위는 흥분해 있었고 그의 눈빛에서 ‘장난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박 경위는 침대 쪽으로 가 몸을 제대로 숨기지 못한 박 상경 쪽으로 다가가 권총 방아쇠의 안전 장치를 제거했다.

이를 본 박 상경은 “진짜 뺐다”라며 소리쳤다.

몸을 숨기느라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없던 나머지 두 의경은 ‘안전 장치를 제거했다’는 동료의 외침을 듣고서도 공포감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박 상경에게 손이 닿을 정도로 다다간 박 경위는 38구경 권총을 잡은 오른손이 흔들리지 않도록 왼손으로 받치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발사된 총알은 박 상경의 왼쪽 가슴을 관통했고, 국방의 의무를 하러 온 스물한살 청년은 아무 죄 없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8월 25일 오후 발생한 이 충격적 사건 이후, 경찰은 ‘장난’치다 일어난 ‘오발 사고’라고 발표했다. 가해자인 박 경위의 진술이 그 토대였다.

“설마 진짜 쏠 줄은 몰랐다”는 의경들의 진술은, 마치 당시 상황이 웃으며 ‘장난’치다 실수로 일어난 일인 것처럼 포장됐다.

군인권센터는 이를 두고 “제식구 감싸기식 수사를 중단하라”며 강하게 비판했지만 경찰은 박 경위를 ‘살인’이 아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20여일간 집중 수사를 벌인 뒤 ‘업무상과실치사’가 아닌 ‘살인’ 혐의로 박 경위를 기소했다.

여러 정황상 ‘살인에 대한 고의’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검찰의 프로파일러 심리분석 결과에 따르면 박 경위는 따돌림을 당하면서 의경들에 대한 의도적 공격성향을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됐다.

박 경위가 자신만 빼고 따로 모여 간식을 먹고 있는 것이 자신에 대한 무시라고 생각했고, 의경들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이같은 범행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검찰은 판단한 것이다.

박 경위는 우울증과 중증불안증을 앓고 있었다.

8년 동안 약을 복용해 왔지만 박 상경을 비롯한 의경들은 이같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검찰은 그날의 사건을 재구성한 뒤 “장난이 아니었다”고 결론냈고, 이제는 법원의 판단만 남게됐다.

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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